한선학 관장의 고판화 특강 ① 고판화의 연원과 발전

민화는 손으로 직접 그려낸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민화의 대표 화목 중 하나인 세화만 하더라도 판화기법으로 제작 됐으며 중국의 연화나 일본의 우키요에 역시 판화 기법으로 제작됐다. 이 때문에 고판화를 이해하는 것은 각 나라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번 달부터 시작하는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한선학 관장의 특강을 통해 고판화에 대한 모든 것을 공부해보도록 한다. (편집자주)


판화는 ‘판을 활용해 찍어낸 그림’이라고 정의하고 있듯이 인쇄와 그림의 복합성을 띠고 있으며, 그 연원은 인쇄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인쇄는 불경의 전파를 위해 중국에서 목판을 새겨서 찍어낸 글씨를 새긴 목판 인쇄술로부터 출발했으며, 판화는 글씨가 아닌 부처님의 모습을 나무에 새겨 찍어낸 인불印佛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부처님의 도상이 범어 다라니와 결합되면서 다라니경주(도1)가 수·당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다수의 유물들이 현존하고 있다.
판화의 본격적인 발전은 불경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삽화가 불경의 맨 앞부분을 장식한 변상도變相圖로부터 시작하여, 글씨의 위쪽에 삽화를 넣는 방식인 상도하문식上圖下文으로, 글씨와 그림이 한 면을 당당히 장식하는 1도圖1문文식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삽화의 등장은 불경을 더욱 풍요롭게 했을 뿐 아니라, 그림책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불경의 전파로 불교는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으며, 불교의 발전은 생활 속에서 예배 활동을 하는데 사용되는 불화의 수요도 유도했다. 이들 수요에 부흥하기 위해 판화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불화 판화도 제작되면서 판화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삽화가 들어간 그림책은 유교와 도교 등 다른 종교의 전파를 위해서도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소설이나 희곡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삽화판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하여 나아갔다. 뿐만 아니라, 그림 공부를 하는데 사용되었던 미술교과서의 역할을 하는 화보畫譜류 판화도 발전했으며, 명 시대에 호정언胡正言에 의해 칼라 목판화 화보인 십죽제서화보十竹齋書畫譜가 만들어지면서 칼라인쇄문화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칼라 목판화의 발전은 중국의 민화판화인 연화年畵의 발전으로 이어져 왔으며, 일본의 민화 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국이나 베트남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본격적인 다색 목판화가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목판으로 테두리를 인출한 후에 붓으로 색깔을 입히는 반인반회半印半繪 기법의 민화 판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중국에서 불교의 전파 수단으로 발전한 목판화는 유불선 등 모든 종교의 발전에도 기여했으며 소설, 희곡, 화보류 등 문화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 시작한 고판화는 한국, 일본, 베트남, 티벳, 몽골 등 동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어 발전했으며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도 전해져 서양 판화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판화는 종교, 사상, 교육, 의례, 풍속, 예술 등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어 동아시아 문화의 원동력으로 보편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각 나라의 민족정신이 가미되면서 자국만의 독자성 내지 고유성을 도출하는 차별성도 확보하게 되었다.

중국의 고판화

인쇄 문화의 꽃인 판화의 기원은 중국에서 목판 인쇄술과 함께 발전했으며, 중국 수대(隋代:581-617), 당대(唐代:618-906) 시대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기원은 부처님의 모습을 판각하여 찍어낸 인불이며 이 인불은 다라니와 결합되면서 《다라니경주陀羅尼經呪》로 발전했다.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판화인 함통 9년(868)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도2)에서 볼 수 있듯이 당나라 시대에 벌써 다양한 판화가 발전했음을 알 수 있으며, 오대시대에 이르러서는 독폭獨幅의 다양한 불화 판화가 제작되어 남아 있다. 북송시대 초기에 제작된 불화 판화의 초기 명품으로 일컬어지는 미륵보살상(도3)이 교토 세이료지清涼寺에 소장되어 있으며, 북송 순화 원년(990)무렵에 간행된 송 태종의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20권의 삽화는 산수화의 요소가 반영되어 본격적인 산수판화시대를 열게 되었다. 북송 시대의 판각술은 남송시대까지 이어져 다양한 불교판화가 제작되었고 원시대의 불교판화는 삽화에 더욱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경향을 보이며 그림책에 더욱 가까운 모습으로 발전했다. 원시대부터 시작된 문학과 판화의 결합은 명대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소설과 희곡의 삽화판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기틀이 되었으며 명 말에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서상기西廂記》(도4) 등 다양한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용도서의 삽화판화도 발전하여 도설 백과사전인 《삼재도회三才圖會》, 과학서적인 《천공개물天工開物》등이 생산되었으며 청나라에서는 《경직도耕織圖》가 발행되기도 했다. 그림의 교본으로 복제 명화집으로 발전한 화보류 삽화판화도 중국 판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들이며 《고씨화보顧氏畫譜》를 비롯하여 《팔종화보八宗畫譜》 등 다양한 화보가 남아 있다. 특히 명 말 호정언胡正言에 의해 제작된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畫譜》는 칼라인쇄의 첫걸음으로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다. 《십죽재서화보》에 사용된 칼라 인쇄법은 분판분색에 의한 다색중쇄기법으로 ‘두판채색투인餖板彩色套印’이라고 불린다. 명시대의 화보류는 청시대까지 이어져 화보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도5)의 완성으로 이어졌다. 칼라인쇄의 발전은 중국 민간 판화인 연화의 저변 확대에 기폭제가 되었으며 천진 양류청楊柳靑, 소주 도화오桃花塢, 산동 양가부楊家埠, 하북 무강武强 등 다양한 지방의 특색에 맞추어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소주 도하오 판화는 서양의 원근법과 동판화 기법을 받아들여 세계 판화사의 빛나는 유물로 자리매김했으며 고판화박물관도 명나라 때 제작된 수성도(도6)를 비롯하여 당시선화보 등 소주판화 10여점을 비롯해 다양한 지방의 중국 연화 작품 1,5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의 고판화

현존하는 한국의 가장 오래된 판화는 1007년에 간행된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도7)으로 고려 시대부터 목판화가 발전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교토 난젠지南禪寺에 남아 있는 고려 11세기에 제작된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도8)판화는 송대 판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나 고려적인 특색을 갖춤으로써 고려시대의 판화를 대표하고 있다. 해인사에 판목 원판이 남아 있는 화엄경 변상도 주본과 진본도 빼놓을 수 없는 고려 판화의 백미이며 이외에도 《화엄경》과 《법화경》(도9), 《금강경》의 변상도류가 다수 제작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 경전들이 세조를 비롯한 호불왕好佛王들과 인수대비 등 왕족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사찰에 의해서도 다양한 판본들이 제작되어 그 책머리를 장식한 변상도에는 아름다운 판화의 전통이 이어졌다. 더불어 국가에서 국민을 개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삼강행실도》를 비롯한 행실도류 판본들이 백성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다양한 삽화를 채용하면서 조선시대 판화 발전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정조에 이르러 《오륜행실도》(도10)가 제작되면서 조선시대 판화의 정점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왕실에서 만들어진 의궤류 판화인 《을묘정리의궤》, 《진찬의궤》 등이 정교한 판각술板刻術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일반 사대부층에서 개별적으로 문집을 간행하면서 문집 속에 초상화나 삽화가 등장하여 판화 발전에 한 축을 형성하기도 했다. 말기에 이르러서는 기산 김준근이 그린 《천로역정》을 비롯하여 《회상영적실기》등 기독교, 천도교의 전파를 위한 삽화 판화도 등장하는 등 다양성이 강화되었다. 조선시대의 책 장정은 크고 아름답게 제작되었으며 아름다운 책표지를 만들기 위해 색깔을 입힌 배접된 한지를 압인하여 문양을 장식했던 능화판菱花版 판목들이 많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책표지의 문양을 건탁乾拓으로 자료를 수집한 경북대 남권희 교수에 의해 알려진 다양한 조선시대 능화판 문양은 판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들이다. 능화판 판목들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이불보 등에서도 흑백 판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며 앞으로 조명 받아야 될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이밖에도 편지지를 찍은 시전지판과 금박판, 수본, 떡살 등이 만들어져 조선시대 민중의 삶을 풍요롭게 했을 뿐 아니라 현대 디자인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문양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민화는 주로 판화 기법을 이용하여 제작되었고 한국의 민화는 주로 그린 민화가 많은 편이지만 판화로 제작된 민화도 다수 남아 있다. 호작도虎鵲圖를 비롯하여 삼재부三災符 판화(도11)와 단순하지만 기초적인 다색판화의 기법이 보이는 십장생도十長生圖 등이 남아 있으며 판목으로 테두리 선을 찍은 후 붓으로 색깔을 입힌 세화歲畫와 화조도花鳥圖판화들도 발견되었으며 일제 감정기에는 석판화로 만들어진 다양한 다색 판화들이 존재한다.

일본의 고판화

일본의 판화도 불교 판화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헤이안(平安:794-1185)시대부터 발전하여 가마쿠라(鎌倉:1185-1333)·무로마치(室町:1336-1573)시대에 걸쳐 크게 발전했다. 불교판화는 12세기 중기 이후 많은 작품이 출현했으며 일과공양日課供養으로 개인이나 일족 등의 소원을 빌어 공덕을 성취하기 위해 매일 일정한 인불印佛의 숫자를 정해 존상을 날인하는 것을 일과로 불교 판화를 제작하는 공양법이 행해져 많은 인불이 현존하고 있다. 그 후 민중들에게 보시를 권하는 데 사용된 권진勸進판화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추선追善 공양을 위해 고인의 생전에 남긴 편지에 불교 판화를 찍은 소식판화消息版畫를 비롯하여 벽사용으로 사용되었던 부적판화와 문자도 판화가 유행했으며 많은 유물이 현존하고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 오면 독폭獨幅의 대형 불교판화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융통염불연기融通念佛緣起》(도12)등 삽화가 들어간 대형 목판본들이 등장하면서 불교판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에도江戶시대인 1657년 명력대화재明曆大火이후 수많은 서적이 소실돼 출판 사업이 성행하였으며, 출판업의 성행으로 불교판화 뿐 아니라 소설이나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삽화 판화가 들어간 목판본이 출판되었으며 중국의 화보류나 불교판본들이 다양하게 번각翻刻되기도 했다. 히시가와 모로노부菱川師宣에 의한 우끼요에浮世繪 판화가 출현한 이후 삽화형식의 판화는 낱장의 목판화로 인쇄됨으로써 판화 자체가 독립 미술로 성장했다. 에도시대 후기에는 니시키에錦繪로 불리는 다색판화가 출현해 황금기를 맞이했으며 19세기에 유럽에 전해져 인상파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티베트의 고판화

티베트의 목판화도 불교와 관계가 깊어서 ‘칸쥬르(경장經藏)’와 ‘탄쥬르(논장論藏)’라 불리는 불경 속에 첫머리, 또는 각 단락마다 삽입되는 삽화용 그림인 ‘변상도變相圖’를 제작하기 위해 보급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불교도상을 후세에 올바르게 전하기 위해 중요한 화제畫題를 목판에 새긴 목판 불화가 개판되었으며 현재 동 티베트 델게(Derge, 德格)의 덕격인경원에는 불화 판목 300여장이 남아 있다. 한국 고판화박물관은 2018년 7월 덕격인경원을 방문하여 200여점의 불화판화 인출본을 수집했는데 여기에는 유명 화사畫師인 풀부체링竹巴普布의 불전도 9폭 세트 등이 포함되어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티베트의 목판화는 주로 흑백의 선묘법線描法으로 단색판화로 제작되었지만 반인반회半印半繪의 다색판화기법이 사용된 예도 많이 남아 있다. 티베트에서 목판화의 또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은 기도 깃발, 즉 ‘따루촉’(도13)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번역하면 ‘경번經幡’이 되는데 오색 깃발로 오색五色천에 불보살상, 호법상, 또는 불경구절을 새겨 찍어서 벽사용이나 기원용으로 대문, 동네어귀, 산마루턱, 나루터, 지붕 위, 갈림길 등 영혼이 다니는 길목마다 걸어놓는 풍속에서 기원했다. 이러한 풍속은 원래 불교 전래 이전부터 펴졌던 티벳 전통 종교인 뵌뽀교의 무속巫俗에서 기원했다. 현재도 이 ‘따루촉’을 다른 말로 ‘롱따’라고 부르며 깃발 천에다 기원의 뜻이 담긴 주문呪文이나 영혼을 실어 나르는 ‘바람의 말(롱따)’를 찍어서 사용한다. 서양 사람들에게도 Wind Horse(바람의 말)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글·사진 한선학(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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