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수 자수의 세계 궁수宮繡의 진수眞髓

성북선잠박물관(관장 한형주)은 오는 12월 27일까지 한상수자수박물관 초대 기획특별전 <한상수 자수의 세계>를 개최한다. 한국 전통 자수의 명맥을 되살리고, 이를 현대 예술로 승화시킨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한상수 자수장(1932-2016)의 작품세계, 그리고 삶에 대하여.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한평생 한국 자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한상수 자수장刺繡匠의 값진 작품과 발자취를 많은 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전시의 테마는 ‘조선의 궁중자수’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한상수 자수장의 작품이 많은 분들께 영감과 감동을 선사하리라 기대합니다.”
전시를 기획한 오민주 성북선잠박물관 학예연구사의 설명처럼 전시장에는 <자수 모란괴석도>, <자수 운학문 금사 흉배>, <자수 연지문 방석>, <적의> 등 한상수 자수장의 공력이 집결된 궁중자수 작품들이 대거 공개된다.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자수 봉황도 8폭 병풍>은 회화작품으로 착각할 만큼 세밀한 묘사가 압권이다. 오묘히 빛나는 괴석부터 하늘거리는 봉황의 깃털까지, 바늘을 붓 삼아 수놓은 소재마다 생동하는 모습이다. <자수부금 활옷>의 경우 미국 시카고 필드 자연사박물관 소장 활옷을 참고해 제작한 작품으로, 한상수 자수장은 본래 석채로 그려진 한삼을 채색자수로 표현했으며 원단에는 부금과 자수를 직접 가공하여 독창적 미감을 선보인다.

<자수 책거리> 부분. 서로의 시선이 어긋난 새 부부, 선글라스 등이 묘사돼 한상수 자수장의 위트를 엿볼 수 있다.
책갑의 그늘진 부분은 과감히 보색으로 처리한 부분에서 자유로이 색을 운용하는 그의 대범한 면모가 돋보인다.



왼쪽부터 <자수 길상문 모직활옷>, <자수 연지문 방석>, <적의>

전통의 바탕 위에 선보이는 현대美

전시에서는 궁중자수 작품 뿐 아니라 한상수 자수장의 창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일례로 <자수 책거리>의 경우 궁중에서 사용하던 책가도 형식이 아닌, 책장이 없는 책거리 형식으로 작품 구성이나 기법 면에서는 전통 방식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선글라스, 서로의 시선이 어긋나는 새 부부 등을 묘사해 그만의 위트를 드러낸다. 1985년작 <은애>는 자색의 목련화를 은애恩愛에 빗대 수놓은 작품으로 푸른 이끼가 낀 나뭇가지의 색채, 표면의 거친 질감 등이 실감나게 표현됐다.
별도로 마련된 아카이브 코너에서는 1971년 한상수가 설립한 노동청 공인 수림원 직업훈련소의 교과서로 활용된 《기본자수》, 1976년 <조선조의 수·흉배 展>에 출품되었던 유물을 바탕으로 발간한 《흉배》 등 주요 전시 리플릿과 도록들이 전시돼 주요 연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장르를 불문하고 전통의 올바른 계승에 대해 성찰케 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MINI INTERVIEW


오민주 | 성북선잠박물관 학예연구사

조선왕실의 선잠제와 사적83호 선잠단을 근간으로 건립된 성북선잠박물관은 국가의례, 전통의생활 등의 전통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꾸준히 전시를 열어왔다. 이에 한국 자수의 원형原形을 찾고자 궁중자수·불교자수 복원 및 계승 분야에 일가를 이룬 한상수 자수장의 작품전을 개최함으로써 많은 분들과 전통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감동을 나누고자 한다.

<한상수 자수의 세계>
일시 8월 11일(화) ~ 12월 27일(일)
장소 성북선잠박물관 기획전시실
문의 02-744-0025~27
*코로나19로 인한 휴관 및 관람예약 여부는 홈페이지나 전화 문의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한상수, <자수 봉황도 8폭 병풍>, 200×470㎝, 90년대 중엽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한 상 수
“창작 역시 전통예술인의 시대적 소명”

1984년 자수 부문 최초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된 故한상수 자수장. 그는 자수 외길을 걸어오며 한국 자수 분야를 개척하고 전통의 명맥을 잇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통문화에 대한 그의 철학과 업적을 들여다본다.


한상수 자수장

수림 한상수(繡林 韓尙洙, 1932-2016) 자수장은 근대기 이후 맥이 끊어져가던 한국 전통 자수 부문을 복원, 개척하였으며 과거 ‘조선수朝鮮繡’로 불리던 우리네 자수에 대해 70년대 최초로 ‘전통자수’라 명명한 선구적 인물이다.
으레 장인이라면 재현에 방점을 둘 것이라 예상하지만, 한상수 자수장은 생전에 ‘창작’을 강조했다.
“전통예술 계승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는 것도 이 시대 전통예술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전통의 맥을 올바로 잇기 위해서는 기술적 측면 못지않게 전통문화의 예술성과 학문성을 확고히 확립함으로써 그 가치를 높이는 일이야말로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 실제로, 한상수 자수장의 작품 면면에서 법고창신을 주창했던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왕성한 창작활동은 물론 학문적 내용까지 체계화

제주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수놓는 솜씨가 남달랐던 한상수 자수장은 자수 연구가인 조정호 이화여대 가정과 교수를 사사하며 본격적으로 자수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서울문리사범대(현 명지대) 가정과 재학 무렵인 1952년부터 10여년간 3회의 국전 입선, 10여회의 개인전을 열며 활발히 창작 활동을 펼쳤다. 자수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1963년에는 한국수공예학원을 세웠으며 노동청 공인의 수림원 자수연구소로 개칭하여 천여 명의 자수 인력을 양성했다.
70년대에는 한국 자수의 원형을 찾기 위해 전국에 흩어진 자수유물을 수집하고 옛 장인들을 만나 조선시대 궁수, 안주수 등 전통기법을 계승했다. 또한 방대한 연구 자료를 토대로 《기본인형》(1972), 《기본자수》(1972), 《이조자수》(1974) 등 전문 자수서적을 발간하여 한국 수예 60여 가지 자수기법을 체계화하고 전통 자수 교육의 기본 토대를 마련했다. 일례로, 현재 자수침법 명칭의 상당수는 한상수 장인이 수무늬 형태를 본따 지은 것이다. 돗자리 무늬결을 닮은 ‘자리수’, 징검다리식 모양의 ‘징검수’, 고리모양의 ‘고리수’ 등이 그 예다.
뿐만 아니라 한상수 장인은 동시대의 다른 미술, 공예와 접목한 실험적인 자수 양식도 끊임없이 시도하여 ‘사의寫意 자수’, ‘부조浮彫자수’, ‘직수織繡자수’ 등을 개발하고 혁신적인 기법의 신작들을 꾸준히 선보였다. 80년대에는 불교 자수품에 대한 재현작업까지 섭렵하며 전통자수의 영역을 확대했고, 1984년 궁중자수와 불교자수를 복원한 공로를 인정받아 자수 부문 최초 인간문화재로 지정됐다.

한상수, <천수국수장天壽國繡帳> 재현작, 2007년, 3차 시수
7세기 일본 아스카시대 쇼토쿠태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한 불화자수로 제작과정에 고구려 장인 가서일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의 자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상수 장인은 일본을 수차례 오가며 유물을 관찰하고 관련 연구자와 교류하며 수를 연구한 뒤 장녀 김영란 관장이 직조한 자색능문라지 바탕천에 수를 놓아 완벽히 재현해냈다.

전통자수에 담아낸 현대적 미학

한상수 자수장은 해외 8개국 초대전과 50여회에 이르는 전시를 통해 한국 자수 문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으며 2005년에는 북촌한옥마을에 한상수자수박물관을 설립하여 대중과 소통하고자 힘썼다. 한상수자수박물관은 2016년 문을 닫았다가 2019년 성북동으로 이전해 재개관하여 한상수 자수장의 작품 보존 및 전시, 국내외 섬유관련 자료 연구 및 유관 기관과의 교류 활동 등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한상수 자수장의 딸이자 이수자인 김영란 한상수자수박물관 관장은 어머니가 전통복원에 그치지 않고 늘 창작에 매진해왔던 작가였음을 강조했다.
“대개 ‘전통자수’라고 하면 재현, 복원 위주의 작품을 떠올리지만 어머니께서 창시한 ‘전통자수’라는 단어 속에는 현대적 요소가 포함돼 있어요. 어머니는 조형에 대한 이해력과 미적 감각이 뛰어난 멋쟁이이자 신여성, 그리고 현대적인 작가이셨습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