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단이 줄곧 고민해온 ‘우리 그림’, 민화가 그 해답 줄 수 있을 것”

오는 8월부터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동덕여자대학교 미술관 인사동 전통미술강좌>에서 김상철 동덕여자대학교 교수가 민화이론 강의를 진행한다. 갤러리 관장부터 미술평론가, 대규모 전시 기획자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화의 발전을 모색해온 그는 민화가 국내 미술계에 큰 영감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바라보는 민화화단, 그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하여.


한국 현대미술사에 전면 등장한 민화에 주목

“민화를 그저 특정 장르로만 볼 것이 아니라 미술계가 오랜 기간 찾고 있던 ‘우리 그림’으로 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일정한 형식이나 내용을 갖춰야 한다는 식으로 제약하는 것은 민화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김상철 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교수(61)는 민화가 유행하는 현상을 정통미술의 흐름과 같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민화붐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한국화 정체성 찾기 운동과 관련하여 미술계 해류가 바뀌는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 이러한 맥락에서 민화가 최근 각광 받는 표면적인 현상보다는 권위적이고 정형적인 미술 학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화를 그리는 사람들 상당수가 미술 대학에서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배우고 연구하며 민화화단을 크게 일궈놓은데 비해 미술학계의 경우 입시라는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까지 지난 50년 동안 우리 것에 대한 방향을 모색했지만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
“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25년간 수묵화 열풍이 불었지만 쇠락하고, 이후 박생광을 기점으로 80년대 중후반 채색화붐이 일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왜색 시비가 있던 채색화를 놓고 우리 방식으로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 시작됐죠. 하지만 90년대 초중반까지 기대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서구미술에 밀릴 때 민화가 나타난 겁니다. 민화 속에는 참고하거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소스들이 참 많이 있어요.”

21세기 미술에는 지역성, 차별성 요구돼

김상철 교수는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평가 심의위원 및 미술은행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18 전남국제수묵화비엔날레 총감독을 비롯한 다수의 전시 기획, 평론 작업 등 미술계 전반에 걸쳐 활발히 활동해왔다. 오랜 기간 미술계가 변화하는 현장을 지켜보고 경험하며 한국화의 방향을 좇아온 전문가이기에 그의 지적은 예리하고도 묵직하다.
그는 앞서 언급했듯 민화가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등장했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여기에는 21세기 디지털시대를 기반으로 한 사회환경적 배경이 한몫한다고 분석했다.
국경 너머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사람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보다는 고유의 지역적 특색이나 역사가 담겨 차별화된 콘텐츠가 중요해진 것이다.
“과거에는 세계유행에 발맞춰보겠다는 미명 아래 중국이나 서양문화를 뒤쫓기에 급급했어요. 하지만 국내 작가들이 외국인들이 만든 룰에 맞추자니 생존하기 어려웠죠. 이제 시대가 바뀌었어요. ‘뉴욕의 트렌드를 어떻게 따라갈까’란 질문에서 ‘우리에게만 있고 다른 지역에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시대가 된 겁니다.”

민화재해석에 중점 둔 민화이론 강의 시작

김상철 교수는 오는 8월부터 동덕여자대학교 미술관이 주최하는 인사동 전통미술강좌에서 민화이론 강의를 도맡는다. 수업에선 ‘A는 B를 뜻한다’는 식의 도상 의미를 넘어 민화 소재와 관련된 인문학적 내용을 가르칠 예정이다.
“책거리에 요새 물건을 몇 개 갖다 놨다고 해서 현대성과 한국성을 모두 갖췄다고 보진 않아요. 현재 민화에서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이해력, 상상력입니다. 현대에 다시 민화가 등장한 이유도 사회적으로 원하는 바가 있어서일 텐데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학습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 전통도상을 그저 반복해서 그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세간에 발표된 연구 내용 중 간과된 부분이나 인문학적 상상력을 일으킬 수 있는 콘텐츠를 이야기해보려 해요.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어떻게 창작할지는 창작자의 몫이겠죠.”
한마디로, 수업을 통해 민화를 그리는 이들이 민화를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는 것. 이에 덧붙여 그는 한국인이 가진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동시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대성에 대해 언급했다.
“같은 동양문화권인데 나라마다 중점을 두는 게 달라요. 일례로 붓으로 글을 쓰는 예술을 가리켜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 한국은 ‘서예書藝’라고 하죠. 명칭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두 나라에서는 각각 법이나 형식 등을 강조했지만 한국은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했어요. 이는 틀에 얽매이지 않은 민화와도 상통하는 부분이죠. 19세기에 등장한 민화는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향유하던 대중예술입니다.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담긴 그림인 만큼 당시 민화 작가들도 ‘어떻게 사람들을 위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겠어요? 그때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현대민화에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이 들어가야 합니다.”

한국의 정체성 담은 민화, 근원적 고찰 필요

김상철 교수는 민화화단을 꽃병에 잔뜩 꽂힌 꽃으로 비유했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자면 사람들이 민화라는 꽃이 마냥 좋아서 너도나도 꽃병에 꽃을 꽂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뿌리가 없는 이상 꽃이 만개하고 나면 곧 시들어버리는 것처럼 민화화단도 내실을 다지지 않는다면 스러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민화의 출발점과 목표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예컨대 민화작가들이 최종 출구로 아카데미를 여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국내외시장에서 민화를 알리고 발전시키는데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우선 대학교 교양과목에조차 민화 과정이 없다보니 이론적인 면에서 빈곤할 수밖에 없어요. 이처럼 빈약한 토대 위에서 사람들에게 ‘민화를 네 마음대로 그려봐라’고 하면 작가에겐 쉽지 않은 일이죠. 변화를 위한 변화가 되어버리거나 전통을 탈피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죠.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이 쉽진 않겠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화가 전통적으로 담당해왔던 축원 및 축복의 메시지에 집중해 콘텐츠를 개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는 다시 한 번 민화를 경직된 틀 안에 가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책거리’, ‘문자도’ 등 특정 화목의 형식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이같은 민화가 바로 한국의 정체성을 지닌 그림이자 우리 그림의 원형이라는, 보다 큰 시야에서 바라볼 때 근원적인 탐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민화를 눈에 보이는 대로 읽기만 하면 그 안에 담긴 본질을 놓칠 수도 있어요. 지역별, 문화별 개성이 중요한 21세기에 민화야말로 한국미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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