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채색화연구회 – 전통그림에 시대적 미감 새로이 담아내다

고광준 작가가 지도하는 한국전통채색화연구회는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전통민화부터 궁중화까지 다양한 우리 전통그림을 동시대에 맞는 감성으로 선보이고 있다. 오는 3월에는 세 번째 회원전을 통해 그간 공들여 준비한 작품들을 대대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한국전통채색화연구회가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일까?


한마음 한뜻으로 모이다

영역을 불문하고 실력파의 근거지根據地는 항시 붐비는 법.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고광준 작가의 화실은 일명 민화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인사동과 널찍이 떨어진 곳이지만,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민화인이 모여든다. 그간 그가 가르친 제자만도 1백여명을 훌쩍 넘으며, ‘한국전통채색화연구회(이하 한채연)’라는 한지붕 아래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한채연의 창립전은 2013년에 개최됐지만, 그 원류를 살펴보자면 그보다 10여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고광준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색채디자인연구소에서 전통채색화 강의를 시작했으며 이곳에서 수업을 받은 제자들이 2006년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첫 전시회 <공간 속의 민화전>을 개최했다. 이후 2년에 한 번씩 정기전을 개최하며 2012년까지 4회의 전시를 치루는 동안 이대 색채디자인연구소 과정을 졸업한 강은명 작가가 설립한 단체 오색채담이 2회의 전시를 성료했다. 제자 간 전시가 빈번히 개최됨에 따라 고광준 작가의 제자 그룹을 통합하고 전시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새로운 모임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고광준 작가의 개인화실 제자는 물론 오색채담과 이대 색채디자인연구소 학생들도 이에 동의하면서 제자들을 총집합한 한채연이 탄생됐다. 모임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광준 작가는 줄곧 자신이 그리는 그림을 ‘전통채색화’라는 말로 표현해왔다.
“‘채색화’라는 말은 전통그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민화를 포함해 궁중화, 불화, 산수화 등 채색을 기본으로 하는 모든 그림을 일컫습니다. 폭넓은 영역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어요. 모임의 앞글자에 ‘조선’ 대신 ‘한국’을 사용한 이유는 전통을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작품을 그려나가고자 하기 때문이지요.”

차별화된 접근에서 탄생한 현대 민화

한채연의 구심점이 고광준 작가이기에, 그의 교육철학이야말로 단체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국 각지의 민화인을 한데 불러 모은 그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고광준 작가의 남다른 교육열과 학구적인 자세를 들 수 있다. 그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친다’는 일념으로 지도하며, 오랜 세월 연구한 내용을 데이터화, 자료화하여 제자들이 민화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광준 작가의 수업을 6년째 듣고 있는 박정원 씨는 체계적인 수업 방식을 스승의 강점으로 꼽았다.
“선생님께서는 실기에 대한 이론을 잘 정립하셔서 무엇이든 명확히 설명해주시죠, 수업을 듣다보면 ‘이렇게 그리면 되겠구나’라는 감이 금방 잡혀요. 특히 원하는 색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경북 예천에서 고광준 작가의 화실을 오가며 4년 동안 수업을 들었다는 이병기 씨는 고광준 작가의 색감이 현대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선생님이 사용하시는 색감은 굉장히 모던합니다. 차세대가 우리 전통민화를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요소죠.”
이처럼 그의 제자들이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부분이 바로 ‘색감’인데, 이는 민화에 대한 그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민화는 선조들이 자신의 생활공간을 소박하게 장식하면서도 행복을 염원하며 활용한 그림입니다. 본래부터 아름답기 때문에 선이나 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현대적으로 그릴 수 있지요.”

한채연을 관통하는 교육철학

고광준 작가는 옛 민화와 마찬가지로 현대 민화 역시 공간을 장식하는데 사용되므로, 보는 사람이 편안하고 사무실이든 침실이든 때와 장소와 어울리도록 그리는데 중점을 둔다. 이를 위해서는 그림의 선과 색이 부드러워 온화한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민화의 기본색인 오방색은 강렬하지만 자칫 부담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오랜 세월 무수히 많은 연구와 실험 끝에 밝고 은은한 파스텔톤의 색감을 개발해냈다.
“저는 원색을 거의 쓰지 않고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색을 섞어 사용합니다. 현대인들이 봤을 때 누구나 ‘곱다’, ‘예쁘다’고 느낄 만큼 조화로운 색상을 내기 위해선 단순히 이것저것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궁합이 맞아야 하죠. 무엇보다 색감 간 조색과 배색의 원리는 그저 감으로 익힐 것이 아니라 몇 대 몇의 비율로 섞을 것인지, 이 색 옆에는 어떤 색이 위치하는 것이 좋은지 일종의 공식으로 남겨 데이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특정 색이 필요할 때 곧바로 똑같은 색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는 색감에 대한 결과를 꼼꼼하게 데이터화하여 가르치며, 제자들에게도 이를 기록하도록 한다. 이 때문에 한채연 회원들의 작품 옆에는 색의 샘플과 비율이 꼼꼼히 기록된 노트가 항시 놓여있다.
더불어 초본을 모사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그림도 원래의 그림과 완전히 똑같지 않도록, 회원들이 자신만의 시각에서 그릴 것을 조언한다.
“‘모사’라고 해서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이의 머릿속을 거쳐 형태나 재료, 채색법이 다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통민화라 하더라도 현대적으로 거듭날 수 있어요. 저는 도록에 있는 그림이든 초본이든 결코 그대로 옮기지 않습니다. 무슨 그림이든 자세히 관찰하고, 갖고 있는 자료를 더해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지요.” 울산에서 민화를 강의하는 김언영 작가는 스승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며 미소 지었다. “선생님께 배우면서 어떠한 사물이든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새를 그릴 때 진짜 새의 모습은 어떠한지, 실제 잎맥은 어떻게 생겼는지 유심히 보게 됐죠. 좋은 스승님을 만나 기쁘고 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고광준 작가는 제자들에게 옛민화를 가급적 많이 볼 것을 권유한다. 그가 과거 옛그림을 보수하면서 깨달은 바이기도 한데, 원화를 통해 그림을 처음 그렸던 사람의 의도나 묘사 방법 등을 공부하며 안목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3월 세 번째 회원전 개최

한채연은 3월 13일부터 일주일 간 갤러리라메르에서 제3회 회원전을 개최한다. 고광준 작가의 독창적인 화풍을 이어받은 한채연은 매 전시마다 성황을 이루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지난해 고광준 작가의 개인전 일정으로 다소 늦게 열게 된 전시지만, 참여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고. 전시에 참여하는 50여명의 회원들이 각 1점씩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며 고광준 작가는 지난해 개인전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백선백접도>를 찬조 출품할 예정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작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금, 석채 등 기존에 활용하던 재료들을 실험적으로 조합한 색감과 동양화 기법 등을 적용해 획기적인 전통민화를 선보일 겁니다. 회원들이 1, 2회때 보다 완숙된 그림들을 많이 그렸어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한채연은 향후 2년에 한 번, 매년 3월마다 정기 회원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고광준 작가는 나날이 외형이 확대되는 한채연을 보다 탄탄하고 결집력 있는 단체로 성장시키기 위해 조만간 사단법인체로 출범시킬 계획이다. 더불어 오는 5월 무렵에는 그동안 전시했던 한채연의 작품과 그의 작품을 총망라한 도록을 펴낼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채연의 회원들 모두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 높습니다. 단순한 취미를 너머 전통채색화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도 강하지요. 한채연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저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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