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자부심, 고판화에서 찾다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인쇄는 글(text)과 그림(image)로 이루어진다. 세계최고의 인쇄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 고판화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사립박물관이 있다. 바로 원주 치악산 자락에 터를 닦은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판화를 주제로 템플스테이 지정을 받은 명주사에서 머물며 고판화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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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의 가치판단은 관람자의 몫

우리나라에서 세계최고(世界最古)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문화재는 인쇄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은 신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이다.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1377년), 이른바 직지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1237~1248년) 역시 세계최고의 대장경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그러나 그간 인쇄문화에 관련한 전문 박물관은 따로 없는 실정이었다. 1992년 청주에 고인쇄박물관이 개관했지만, 활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박물관이기 때문에 판화에 대해 전문적으로 수집, 전시하는 곳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고판화박물관이 문을 열기까지는 고인쇄 문화 가운데 한 분야인 판화는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고판화 박물관이 원주에 자리 잡은 것은 2004년의 일이다. 개인의 힘으로 모은 유물이 4,000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고판화박물관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고판화 전반에 이르는 콜렉션을 자랑한다. 조선 철종대 ‘오륜행실도 판목’, 중국 송대 ‘아미타래영도’와 명대 ‘불정심다라니경’, 일본 에도시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북악 36경’ 모두 높은 평가를 받는 쟁쟁한 유물들이다. 그러나 한상학 관장은 역사적인 가치를 높게 평가 받지 못하는 유물이라도 할지라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강조한다.
“박물관은 유물과 관람객이 직접 소통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물이 최우선이지요. 때로는 추하고 저급한 것에서도 영감을 얻어 기발한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지 않습니까? 유물의 가치평가에 지나치게 현혹되기보다는 일단 많이, 자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유물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관람자가 자유롭게 감상하고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박물관은 따듯한 차를 준비하고 있다.

교육하는 박물관, 미래를 키운다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라야 한다. 음악회, 연극, 미술관과 박물관 어떤 것이라도 좋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이런 인식이 널리 퍼지는 추세라 방학만 되면 문화시설들이 아이들로 북적인다. 교육정책 역시 아이들의 문화체험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방학이나 주말을 이용하여 박물관을 탐방하는 과제를 내기도 한다. 박물관을 한 번이라도 더 찾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숙제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 억지로 가야 하는 곳, 빨리 떠나고 싶은 곳이라는 부정적인 효과가 나지 않을까 한 관장은 염려하고 있었다.
“저는 반드시 박물관을 찾아야 하는 이유부터 아이들에게 설명합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라는 아이들이 많아졌어요. 그럴 때마다 박물관이 돈이 되는 보물창고라고,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돈 버는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박물관은 인류의 역사가 함축된 곳이고, 그들의 경험과 발상을 축적해놓은 유물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상품화한다면 공부해서 성공하는 것보다 쉽고 재미도 있다. 캐릭터 산업과 같은 고부가가치산업,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가 이루어지는 토대가 문화산업이며,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육자, 행정가 등 인접 분야의 전문가들도 발상의 전환으로 평생 먹고살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것.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박물관에서 창의적인 발상이 가능하도록 유물을 세밀하게 관찰하도록 전시를 구성하고, 작품의 특징이 되는 부분을 잘 설명하며, 체험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동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판화박물관의 특이한 점은 수장고 일부를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전시장을 해설과 함께 먼저 둘러보고, 수장고를 둘러본다. 아이디어의 보고(寶庫)인 유물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관람객들이 짐작해볼 수 있도록 설계한 구조다. 여기에 판화를 직접 체험해보도록 유도한다. 관람객이 머물 수 있는 시간에 따라 바로 체험할 수 있는 간단한 판화부터 1박 2일 이상 머물며 체험하는 ‘숲속판화학교’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있다.

매년 풍성하게 열리는 국제 학술행사

박물관은 유물을 토대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기관이기도 하다. 고판화박물관에서는 한국고판화학회를 창립하여 아시아의 고판화 아카이브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관련 학계의 학자들과 기관, 단체들이 참여하여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고 새로운 연구를 돌출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2011년 9월 출범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 5월 23일부터 10월 12일까지 제5회 원주고판화문화제를 열고 있다. 아시아의 도교 판화세계를 조망하는 특별전을 필두로 한·중·일의 종교판화라는 주제의 국제학술 대회가 열렸다. 국내에서는 경주대학교 정병모 교수, 경북대학교 남권희 교수가 참여했으며, 중국에서는 민간연화 최고 권위자인 보송니엔 교수, 양주 조판박물관 고영 관장, 일본은 국문학연구자료관 이리쿠치 교수, 구택대학교 고노에 교수가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전통판화를 시연하는 행사도 열어 참석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또, 제2회 원주 전통판화공모전도 열린다. 9월 23일부터 5일간 작품접수를 할 예정이며, 융경임신년(1572) 작품인 대형 수성노인도를 공개하는 아시아 도교 판화 특별전은 10월 12일까지 진행된다. 우리의 세계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유교나 불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도교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전시다.

Interview. 주지 스님이자 박물관 교육학 박사 한선학 관장

주지 스님이자 박물관 교육학 박사  한선학 관장관심을 둔 것은 종교적인 이유에서였고, 중국 지장보살 목판이 그의 첫 수집품이었다. 차츰차츰 수집의 폭을 넓혀가며 네팔과 몽골, 인도의 판화와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까지 다양한 국적과 내용의 판화가 쌓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수집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왕 운영한 박물관에 브랜드가치를 더하고 싶었던 까닭에 박물관 교육으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사설박물관의 관장들은 수집가이자 경영자, 때로는 해설사까지 동시에 맡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거기에 명주사 주지와 교육자로서의 역할, 지금은 학회의 회장까지 겸하고 있어요. 바쁜 게 사실이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끼는 루트가 많은 셈이죠. 남들보다 부족한 부분은 열정으로 보완하고자 두 배, 세 배 뛰어다녔습니다.”
그중에서도 좋은 유물을 발견할 때 느끼는 수집가로서의 기쁨이 가장 크다는 그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직접 발품을 팔아왔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편하게 유물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며 앞으로도 고판화에 관해서는 제일의 입지를 지키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 관람시간 : 하계 오전10시~오후7시 / 동계 오전10시~오후5시
  • 관람요금 : 일반(대학생 포함) 3,000원 학생(유치원 이상) 2,000원
  • 문의 : 033-761-7885 / www.gopanhwa.or.kr

 

글 : 윤나래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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