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등기구 古燈器具 ⑬ 벽조목등잔대 霹棗木燈盞臺

<벽조목등잔대>, 조선시대, 26×18×50㎝, 고은당 소장



이번에 소개할 벽조목등잔대는 조선시대의 목조 등잔대로는 아주 귀한 등잔대라 할 수 있다.
대추나무로 등잔대를 만들기가 쉽지 않기도 하거니와 특히나 벼락을 맞은 대추나무를 찾기도 어렵기 때문.
아직까지 이번 호에 소개되는 등잔대 외에 벽조목으로 만들어진 등잔대를 본 적은 없다.

글 정하근 (고은당 대표) 사진 고은당 제공


선비의 소망을 환히 밝히던 벽조목등잔대

지면에 소개된 벽조목등잔대霹棗木燈盞臺는 벽조목 특유의 붉은 색상과 은은한 광택을 띠며 고급스러운 미감을 자랑한다. 하단부를 장식한 거북이부터 맨 상단부에 위치한 연밥까지 각 도상들은 동글동글 완만한 곡선으로 장식돼 전반적으로 온화한 분위기다. 등잔대의 하대에는 거북이가, 거북이와 맞닿은 등잔대 부분에는 연꽃잎 받침으로 제작됐고 거북이 등껍질과 연꽃잎이 서로 맞닿아 포개어진 모양이다. 거북은 오래 산다는 의미에서 예로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되었으며 십장생十長生 중 한가지로 민화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등갑이 갑옷 같이 딱딱해 무관武科을 의미하기도 한다.
곡선으로 이어진 등잔대 끝에 달린 연밥의 경우 연열매인 연과蓮果가 연속등과한다는 의미의 연과連科와 독음이 같아 향시와 전시 두 번의 과거에 연속해서 합격하라는 의미로 추정된다. 이 등잔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등잔대에 매달린 개구리이다. 단지 보기 좋도록 장식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터, 굳이 개구리를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개구리는 예로부터 문인들이 애용하는 연적 등 문방구류에 즐겨 쓰인 도상이다. 개구리가 밤새 개굴개굴 우는 모습이 선비들이 밤새 글 읽는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학문에 정진하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비슷하게 생긴 두꺼비와 같은 맥락에서 ‘달’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두꺼비와 관련된 항아 설화(항아가 불사약을 훔쳐 먹고 신의 노여움을 사 달의 정령인 두꺼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처럼 달이 휘영청 뜬 밤, 학문에 묵묵히 정진하라는 뜻이리라.
이 벽조목등잔대와 관련해 임영주 한-명품 미술관 관장은 “등잔대에 장식된 거북이는 무관武官, 개구리는 문관文官, 연밥은 두 번의 과거에 연달아 합격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도상들을 두루 종합해 봤을 때, 해당 등잔대는 ‘문과든 무과든 과거에 연달아 합격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과거를 준비하던 선비의 방에 놓여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기품은 물론, 길상적 의미까지 갖춘 벽조목등잔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벽조목등잔대> 부분

귀신도 쫓아낸다는 벽조목

벽조목이란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대추나무가 벼락을 맞을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에 벽조목 자체가 매우 귀하다고 볼 수 있다. 나무 중에도 어린 나무보다 큰 나무가 벼락 맞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아무튼 수많은 나무 중에 특정 대추나무가 벼락 맞을 확률은 매우 낮다. 벼락은 공중의 전자와 지상표면의 양전하가 서로 접촉했을 때 발생하게 된다. 공중의 전하를 끌어당기는 지상의 양전하는 보통 주위보다 높은 곳으로 모이게 되는데 이 때문에 벼락은 높이 서 있는 나무나 철탑 피뢰침 등에 떨어진다.
벼락이 한 번 칠 때의 전기량은 보통 전압 10억 볼트, 전류는 수만A(암페어)에 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약한 5천A(암페아)의 벼락의 경우 100W의 전구7000개를 켤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만약에 이런 양의 벼락이 떨어지게 되면 나무는 폭발하듯 갈라지고 불타게 되는데 이는 수억 볼트의 전류가 나무속 수맥을 따라 흐르면서 나무가 가진 전기 저항으로 인해 엄청난 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 수천 도까지 올라가는 열기로 인해 나무가 가지고 있던 수분은 순식간에 증발되어 수축하게 된다. 이 때문에 나무는 속까지 검게 타며 아주 단단해진다.
모질고 단단한 사람을 대추나무 방망이라고 비유하듯 대추나무로 만든 것은 단단하기로 이름나있었다. 대추나무는 본래도 생명력이 강해 고목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나무에 비해 밀도가 높지만, 벼락을 맞으면 더욱 단단해져 도끼나 톱으로 쉽게 쪼개거나 자를 수 없다. 벽조목을 지니고 있으면 악귀를 쫓아 준다는 전통적인 믿음 때문에 도장 재료로도 인기가 있다고 한다. 대추나무 방망이를 문에 걸어놓으면 잡귀신을 쫓는다는 민속도 있다. 대추나무는 떡매, 떡살, 도장 등으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떡매나 떡살 같은 민예품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벽조목등잔대> 부분

대추, 우리네 삶 깊숙이 자리 잡아

중국에는 많은 종류의 대추가 있어 34종이나 되었다고 한다. 중국 식물학 서적인 《광군방보廣群芳譜》에 따르면 ‘안기 지역에서 나는 큰 대추를 삶았더니 그 향기가 십리나 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으며 병자가 일어나 났다’고 한다. 약재로 쓰인 대추의 효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약을 제조할 때 통상 대추 두세 알을 넣고 달여 사용했다. 대추는 산후바람, 불면증, 신경통, 감기, 냉증, 체증, 열사병, 화상, 산후복통 등에 효과가 있었다. 풋대추를 많이 먹을 경우 위장에 장애를 일으키므로 주의해야 한다.
대추는 생식生食외에 건과乾果로서 저장해 두고 이용했으며 밥에 넣어 대추 밥, 대추인절미, 대추전병, 약밥 등에 넣기도 하였다. 이렇게 중요한 과일이었기에 풍산豊産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는 풍속도 생겨났다. 정월대보름날과 오월 단오에 대추나무의 줄기가 양 갈래로 갈라진 틈에 돌을 끼우는 것이다. 이를 대추나무 시집보낸다고 했으며 이렇게 하면 대추가 많이 열린다고 믿었다. 충청도의 청산과 보은이 옛날부터 대추의 명산지였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생계와 딸의 결혼비용도 모두 대추에 의존하여 속담에 삼복에 비가 오면 보은처녀의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대추가 열리는 삼복에 비가 오면 대추농사를 망친다는 얘기다. 과일이 많이 달리기를 비는 민속으로 8월 추석날 조밥을 해서 과일나무에 얹어 놓으면 다음해에 조밥 수만큼 과일이 많이 달린다고 믿는 애처롭기까지 한 간절한 소망을 엿보게 하는 민속도 있다.
역사가 오랜 나무인 반면에 수명이 길지 않아 노거수는 드문 편이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대저동에 있는 400년 된 노목은 영험을 지닌 나무로 알려졌다. 높이가 6m, 둘레가 2m나 되는데, 옛날에 가마가 이 나무 밑을 지날 때 나뭇가지가 걸리게 되어 거두려 했더니 나뭇가지가 스스로 비켜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선이 준 과일

대추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있었던 과일이다. 고려시대에는 영으로 재배가 권장된 과수의 하나였으며 진상품목에도 쓰였다. 약제나 과실 외에 구황식량 및 군량으로도 활용됐다. 대추는 밤과 함께 삼색三色 과실果實의 하나로 오래전부터 우리와 친숙한 과실이다. 관혼상제에 빠트릴 수 없는 귀한 재물로써 제사 때 제물을 진설하는 위치까지 조동율서라고 정해져 있을 정도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폐백 풍속에도 대추가 등장한다. 대추를 다홍실에 꿰어 사려담은 그릇을 놓고 새댁이 큰 절을 올리면 시부모는 대추를 뽑아서 새댁에게 던져주며 아들 낳기를 축원한다. 폐백 때 대추를 쓰는 이유는 대추가 신선이 준 과일이라는 중국의 전설에서 비롯됐다. 대추가 등장하는 중국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원왕 중덕이 젊었을 때 전란을 만나 2일간이나 굶고 헤매다 쓰러졌는데 비몽사몽간에 어린 신선 동자 한 사람이 나타나 ‘누워 있지만 말고 어서 일어나 대추를 먹어라’며 이르고는 사라졌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마른 대추 한 봉지가 눈앞에 있으므로 그것을 조금 먹었더니 기운이 나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며 대추가 신선이 준 과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정하근 | 고은당 대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50여년간 고미술품 및 등잔을 수집했다.
수집한 국내외 전통 등기류만 수천여점에 달한다.
블로그(blog.naver.com/eunam-collection)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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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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