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등기구古登器具⑩ 부엌등Ⅰ

우리는 부엌의 용도를 그저 밥을 짓고 반찬을 조리하며 아궁이를 통해 난방을 하는 역할 정도로 여기고 있지만 선조들은 부엌을 매우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다. 선조들은 부엌의 벽면이나 기둥 혹은 부뚜막이나 찬장에 부엌등을 올려두고 사용하며 건강과 행복을 염원했다.
글 정하근 (고은당 대표) 사진 이주용 기자


벼슬을 곧추세운 두 마리의 수탉이 조각된 이 등은 부엌에서 사용되던 것이다(도1). 돌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고난도의 기술력과 기품 있는 모양으로 미뤄보아 궁의 수라간에서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예부터 수탉은 어두운 밤을 물리치고 새벽을 연다하여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서조瑞鳥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정초에 선조들은 대문에 닭그림을 붙여 잡귀를 내쫓고, 혼례 초례상에 닭을 놓아두기도 했다. 닭을 조상신의 영혼으로 믿어 종묘 제례시 닭을 새겨 넣은 술잔을 조상신께 올리며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닭의 볏이 마치 관을 쓴 선비들의 머리 모양과 같아 부귀공명과 입신출세를 염원할 때 활용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유학자 하달홍은 “닭이 머리에 관(볏)을 썼을 뿐 아니라(문文) 날카로운 발톱으로 공격하고(무武), 적을 보면 싸우고(용勇), 먹을 것을 보면 서로를 부르며(인仁), 어김없이 때를 맞춰 운다하여(신信) 오덕을 지녔다”고도 표현하기도 했다. 부엌등에 닭 문양을 새겨 넣은 이유도 닭이 지닌 벽사와 길상의 기운을 만인과 나누고자하기 위함일 것이다.
닭 문양이 새겨진 등의 아랫부분에는 동그란 구멍이 나 있다. 등을 벽에 걸고자 못을 박기 위해 뚫어놓은 것이다. 앞쪽은 둥그런 그릇 모양이 달렸는데, 등을 사용할 때는 여기에 기름을 가득 붓고 한지 심지를 넣어 불을 붙였다. 닥섬유로 된 한지는 기름을 빨아올리면서 등불을 환히 밝히며 부엌을 비추게 된다. 이번 시간에는 부엌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도1-1 도1 부분



도2 <질그릇등>, 조선시대, 14.5×15㎝, 고은당 소장

가족의 식생활을 담당하는 부엌

부엌등이란 말 그대로 부엌에서 사용하는 등잔을 말한다. 이 등잔을 주등廚燈이라고 한다. 부엌의 벽면이나 기둥에 걸어서 사용하기도 하며 부뚜막이나 찬장에 올려두고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엌등의 원형으로는 토기나 석기, 도자기, 목제 등이 있으며 세월이 흐르며 그 모양과 기능이 계속 발전하여 후에는 철제나 유제품으로도 만들어졌다. 일례로, 조선시대 사용했던 질그릇등(도2)과 목기등잔대(도3)을 들 수 있다. 질그릇등은 잿물을 덮지 않고 진흙만으로 구워낸 것으로 표면에 윤기가 없는 투박한 모양이다. 목기등잔대의 경우 부엌 부뚜막 위에 놓고 사용하거나 벽에 걸어 사용하던 등잔대로 민가에서 서민들이 제작하여 사용하던 것이다. 이처럼 선조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등과 등잔대를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부엌구조는 일반적으로 취사와 난방을 겸할 수 있는 온돌 구조를 이루고 있다. 주거에서의 부엌은 가족의 식생활을 담당하는 장소로 여성생활의 중심이 되는 안채와 여주인의 생활공간인 안방과 매우 가깝다. 우리나라 주거구조상 부엌은 다른 공간에 비해서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농경주의를 위주로 한 생활양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땔감과 부식류를 저장하기 위해 부엌 안쪽에는 장작이나 나뭇가지 또는 볏 집 등을 쌓아둔다. 또 다른 한편에는 부식류, 고구마, 감자 등을 보관할 수 있게 했다. 그밖에 커다란 오지독을 두어서 식수용 물독으로 사용했다.
부뚜막 좌우에는 선반을 매달거나 찬탁을 놓아 식기류나 반찬들을 보관했다. 부엌 가까이에는 조리를 돕기 위한 곳으로 음식물의 세척을 위한 우물과 저장 음식을 두는 장독대가 반드시 필요했다. 부엌에는 앞마당과 뒤뜰로 통하는 문 2개가 서로 통하게 되어있어 뒷문은 장독대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어있다. 그릇들을 보관하고 반찬을 보관하는 찬장 및 찬탁도 만들었다.

도3 <목기등잔대>, 조선시대, 25×20×28(H)㎝,
고은당 소장

부엌 바닥은 안방보다 한 두 계단을 낮게 내려가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부뚜막 아궁이에서 불을 때는 불길이 안방의 구들장을 지나 방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부엌 천정은 안방에서 통하는 다락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며 부엌의 기능도 발전하여 아궁이도 2~3개로 확장하여 솥도 여러 개가 걸리게 된다.

조왕신을 모시는 신성한 공간이자 정화의 장소

우리는 부엌의 용도를 그저 밥을 짓고 반찬을 조리하며 아궁이를 통해 난방을 하는 역할정도로 여기고 있지만 선조들은 부엌을 매우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다. 부엌은 조왕을 모시는 신앙공간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물질적인 장소일 뿐 아니라 신령神靈이 내재한 신성공간이며, 부정을 씻는 정화淨化의 장소이다. 조왕신은 부엌을 관장하고 있는 가신으로 ‘부뚜막신’이라고도 한다. 본질적으로 화신인 조왕신은 성격상 부녀자들과 밀접하다. 선조들은 조왕신이 아궁이의 밥솥을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아궁이의 불을 지펴지느냐 못하느냐가 조왕신의 신력에 달려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조왕신이 음식맛을 관장하고, 화재를 막아주며 나아가서는 가족의 건강, 무사고, 자손의 무병장수까지도 살펴준다고 생각했다. 부녀자들은 불을 때면서 나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부뚜막에 걸터앉거나 발을 디디는 것 또한 금기사항이었다. 부엌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야 했다.
지방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조왕을 모시는 장소는 대체로 부뚜막 뒤쪽 벽면에 조금 높게 흙으로 제비집모양의 단을 만든 곳이었다. 그 위에 조왕중발(물사발)을 올려놓았다. 주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샘에 가서 물을 길어다 조왕물을 중발에 떠올리고 가운이 일어나도록 기원하며 절을 했다. (4월호에 계속)


[참고자료]
《한국전력 : 한국의 고등기》
신영순, <불과 조왕신앙>, 《불의 민속》, 국립민속박물관, 199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정하근 | 고은당 대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50여년간 고미술품 및 등잔을 수집했다.
수집한 국내외 전통 등기류만 수천여점에 달한다.
블로그(blog.naver.com/eunam-collection)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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