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등기구古燈器具 ㉑ 고구려 토기오행등土器五行燈

도1 고구려 토기오행등, 3-4세기, 21×17(H)㎝



이번 연재에서 소개하는 토기오행등은 고대 한반도에서 출토된 전형적인 고구려시대 왕실에서 사용한 제식용祭式用 등燈으로 추정된다. 이 오행등은 고대종교와 문화의 동북아로의 이동상황을 보여주는 고대유물임과 동시에 초기 고구려의 제식 등으로서 등기류로서는 가장 연대가 앞서는 등이라 하겠다.

글 정하근 (고은당 대표) 사진 이주용 기자


흔히 ‘신라 토기 등잔’하면 등잔이 5개 매달린 토기오행등(다등식 토기등잔)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이 지면에서 공개하는 고구려 토기오행등土器五行燈은 신라 토기오행등과 형태는 같으나 방법과 재료가 다르다. 우선 재료부터 살펴보면, 고구려 토기 특유의 재질인 적토임을 알 수 있다. 적토 위에 백토 분장을 한 고구려 초기의 제작기법이다. 또한 신라 토기 등잔의 경우 기름 저장 공간이 다 연결되어 있으나 이 등잔은 5개로 분리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초기 고구려 땅인 중국 집안지역은 고구려 초기 수도 국내성이 위치한 곳이었다. A.D.427년 장수왕이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는 우리 고구려의 땅이었다. 당시 고구려는 지역 특성상 모든 생활도구를 거의 적토로 제작해 사용했다. 이 오행등은 고대종교와 문화의 동북아로의 이동상황을 보여주는 고대유물임과 동시에 초기 고구려의 제식 등으로서 등기류로서는 가장 연대가 앞서는 등이라 하겠다.


도4 삼국시대 토기오행등, 12×16(H)㎝


중국 도교 문화에서 비롯된 고구려 오행등

토기오행등은 오행사상五行思想에 의거하여 제작된 제식등祭式燈이다. 여기서 오행사상이란 중국 도교道敎에서 주역周易 태극太極이론과 함께 시작된 사상이다. 도교에서는 만물이 오행의 법칙(火生土, 土生木, 木生火, 金生水, 水生木)으로 순환한다고 해석하는데 이러한 이치는 한의학에서 약의 처방과 침술치료는 물론이고 점술에서도 근본으로 삼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오행으로 만물의 순환이치를 설명하는 이론체계를 확립한 도교는 언제부터 성립되었는가? 그 시원은 오랫동안 화북지역을 지배하며 선진문명과 문화를 창출하여 이를 중국대륙에 전파한 동이족의 주역과 오행이론으로 추정한다. 황하지역에서 발흥한 황하족(중국인들은 한족漢族이라 부르며 자신들의 선조로 받든다)은 이를 계승하여 도교라는 사상과 종교를 만들었다. 일례로, 유대교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파생된 것과 다를 바 없다.
앞선 시대의 학문적 토대 위에서 도교는 그 기본사상을 가다듬는 데만 천년 하고도 수백 년이 걸렸다. 주왕조(B.C1046-B.C771)가 중국대륙에서 종주국의 패권을 행사하던 춘추시대(B.C 770~)에 도교의 체계가 거의 완성된다. 그러나 공자를 정점으로 하는 유교가 왕조통치의 가장 실용적인 도구로 널리 채택되면서 도교사상은 세력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유교가 득세했던 이 시기가 도교에겐 ‘숙성의 시간’이 되었다. 이후 도교는 사상체계를 가다듬은 뒤 민족종교로자리잡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종교학자들은 도교의 숙성시대를 춘추시대로부터 전국시대를 거처 한제국의 초기까지로 본다.
한제국漢帝國은 적극적으로 주변국에 자국의 존재를 알렸다. 이들은 대진국大振國이라고도 불리던 로마제국에까지 사신을 보내고 외교관계를 갖기도 했다. 한무제漢武帝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팽창정책은 한반도 북방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 지역에서 고구려의 적대세력이 되는 한제국의 거점도시가 생겨났다. 이때부터 중국대륙의 문화가 한반도 북방으로 침투하여 고구려 초기에는 도교가 널리 퍼졌고 본래 지역 내 민족종교인 칠성교와 더불어 양대 종교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중국의 북조국가들로부터 불교가 밀려오자 동북아의 도교세력은 쇠락하고 만다.


도2 삼국시대 토기오행등, 15×12.5(H)㎝



도2-1 삼국시대 토기오행등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모습


토기오행등, 지신에게 감사제 지낼 때 사용

때문에 도교의 오행사상을 제식등으로 표현한 이 고구려유물은 제작 연대가 고구려 초기이며 그 연대를 낮게 잡아도 A.D. 300년 이상이 되는, 약 1,700년 이상 된 유물이라고 주장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 고구려의 제식등인 토기오행등의 용도는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앞서 말했듯, 이 등이 오행사상의 결과물이라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즉, 고구려 왕조가 지단地壇 제사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단 제사란 조정(왕실)이 갖가지 곡물과 과일 등을 수확할 수 있도록 땅을 베풀어준 지신地神(여기서는 대자연)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지내는 감사제를 뜻한다. 지신에게 감사제를 지내는 예법은 다섯 방위에 각각 제물과 술을 바치는 것이었다. 오행사상을 기하학적으로 해석하면 땅은 다섯 방위인 동서남북과 중앙(동방은 청, 서방은 백, 남방은 적, 북방은 흑, 중앙은 황색)으로 이루어진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피라미드(PYRAMID)를 공중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네 방향의 꼭짓점과 중심부(피라미드의 중앙)의 꼭짓점을 합쳐서 다섯 개의 꼭짓점이 나오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인간이 대지 위에서 3차원 공간 속에 살아가는 것을 법수(法數, 기독교의 3위 일체(TRINITY)니 불교의 8정도定道와 같이 진리를 수로 해석하는 것)로 나타낸 것이다.
왕조시대에 중앙정부가 만백성을 대신하여 지내는 공식제사에는 지단제사 이외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천단제사天壇祭祀가 있다. 천단제사는 지단제사와는 달리 천궁(ZODIAC)에 제물과 신주를 바치는 의식이다. 이같은 문화적 흐름 속에서 고구려 초기 왕조는 지단제를 지낼 때 이 토기오행등을 사용했던 것이다.

(좌) 도3 중국 동진 원시청자오행등, 4-5세기, 16×21.5(H)㎝ / (우) 도5 중국 요삼채오행등, 10-11세기, 12×17(H)㎝


정하근 | 고은당 대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50여년간 고미술품 및 등잔을 수집했다.
수집한 국내외 전통 등기류만 수천여점에 달한다.
블로그(blog.naver.com/eunam-collection)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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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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