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등기구古燈器具 ⑲ 궁宮 좌등坐燈

도1 궁중 좌등, 조선시대, 111×34.5㎝, 고은당 소장



한 곳을 집중적으로 비추는 등잔이나 초와 달리 좌등은 문 쪽과 실내 전체를 은은하게 비추는 실내 등기구이다.
선조들은 좌등에 길상문을 조각하거나 화창에 청사, 홍사 등을 덧대어 행복을 염원했다. 집 안은 물론 마음까지 따듯이 밝혀준 좌등을 살펴보도록 한다.

글 정하근 (고은당 대표) 사진 이주용 기자


좌등坐燈은 등가燈架 또는 장등長燈이라고도 불리며 바닥에 두고 사용하는 등 기구를 말한다. 좌등은 아무나 흔히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고 왕궁이나 귀족 사대부집안에서나 쓸 수 있는 특별한 등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궁전의 등촉류는 내시부內侍府에서 관장하였다. 내시부 관원 중 종6품의 상촉원尙燭員 4명이 대전문大殿門, 왕비전문王妃殿門, 세자궁世子宮 등 등촉방燈燭房을 담당하여 궁중의 등불과 촛불을 켜고 끄는 일과 같이 등과 관련된 일을 도맡았다.
공전항工典項에는 촉장 4명을 두고 유구장油具匠은 각도 관찰사 이하 지방 관영에 한명씩 두었으며 등구류는 야장冶匠, 유장鍮匠, 목장木匠, 지장紙匠, 칠장漆匠, 사기장沙器匠등에 명하여 분담 제작하였다. 또 의영고義盈庫는 유밀, 황랍, 소물素物등을 관장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각 궁전이나 관아의 등촉방燈燭房에 필요한 등유나 납촉류蠟燭類는 의영고와 사재감四宰監에서 제작, 조달하였다고 한다.
각 도에도 유구장油具匠등이 배치되어 있어 중앙관서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각 도의 산물을 수집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초기에는 목제, 철제, 사기제 등 많은 종류의 등촉기구가 제작되었다. 조선 초기 촉장만 4명에 달한다는 점만 보더라도 당시 촉(燭, 초)의 제조술이 상당히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각 부문별로 전담하는 장인들이 모여서 등구
류를 제작했던 것을 감안하면 고급스러운 등촉기구가 제작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쉬운 점은 잦은 전란으로 인하여 현재까지 조선초기의 등구류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도1 부분 머름칸(상)과 하부 서랍(하)

주변을 은은히 밝히는 좌등

한 곳을 집중적으로 비추는 등잔이나 초와 달리 좌등은 문 쪽과 실내 전체를 은은하게 비추는 실내 등기구이다. 주로 나무를 재료로 사용해서 장방형으로 제작하였다. 내부에는 촛대나 등 기구를 넣어 방 한편에 놓아두었다.
좌등은 다른 등기구와 비교해볼 때 매우 큰 편이며 크기는 다양하다. 천판에는 구멍이 뚫려있어 환기통 역할을 한다. 또한 머름칸에는 국화문, 당초문, 구름문, 여의문등이 투각되어 있어 천판의 환기통으로 빛이 투영될 때 다양한 빛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하부에는 소등기구 및 인광노(성냥), 초 등 소도구를 넣기 위한 서랍이 있고 머름칸 부분과 같은 문양 형태를 음각 또는 투각으로 조각하였다. 상부의 무게를 받칠 수 있도록 다리부분은 중심부보다 돌출되도록 제작돼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좌등은 주로 탄력성이 좋고 조각이 잘되는 은행나무와 가래나무로 제작됐다. 표면에는 주칠 또는 흑칠을 하였다.
좌등에는 흔히 화문, 당초문, 석류, 포도 등의 식물 문양과 학, 매미, 나비, 다람쥐, 사자, 용 등의 동물문양이 운문 등과 혼합되어 조각되었고 청사나 황사의 바탕 위에 격자문과 부富, 귀貴, 수壽, 복福, 희囍 등의 길상문이 새겨졌다. 밑 부분의 마족형 다리는 실내공간에서의 다른 가구와 크기와 조화를 잘 이룬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좌등은 장등, 혹은 서등으로 불린다. 장등은 다리가 달려있는 화려한 가구 양식의 등이다. 간접조명 효과를 줄 수 있도록 등경이나 촛대 위에는 청사나 황사, 또는 한지를 대었다.

(좌) 도2 좌등, 조선시대, 74×29㎝, 고은당 소장 / (우) 도4 백자청화죽문서등, 조선시대, 28吊㎝, 고은당 소장

길상문 더해 소망을 비추다

이 좌등(도1)은 전형적인 궁중좌등으로 다른 좌등에 비해 높이나 화창(火窓, 불을 켜 놓는 부분에 뚫은 창)이 매우 큰 편이다. 검붉은 색으로 주칠이 잘 되어 고급스럽다. 이 같은 좌등 일부에는 내부에 촛대燭臺를 설치하여 초나 등잔을 올려두기도 한다. 구멍이 뚫린 천판은 환기통 역할을 한다. 등에는 8괘문(주역의 8괘는 천지만물의 현상이 되는 일종의 길상문이다. 특히 가구에 쓰이는 각종 금석장식이나 문양 중에 8괘 문양이 장식된 것이 많이 나타난다), 머름칸에는 구름문양이 투각되었다. 하부에는 인광노(引光奴, 성냥), 밀초 등 소도구를 넣기 위한 서랍이 있고 머름칸 부분과 같은 문양으로 여의문과 구름문양이 이중으로 조각되어있다.
좌등에는 흔히 화문, 당초문, 석류, 포도 등의 식물문양과 학, 매미, 나비, 다람쥐, 사자, 용등의 동물문양이 운용문과 혼합되어 조각되었고 격자문과 富, 貴, 壽, 福, 喜등의 길상문이 청사나 홍사의 바탕 위에 새겨졌다. 화창은 청사靑紗와 홍사紅紗로 되어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청사와 홍사는 부식되어 거의 없어졌지만 머름칸 내부 4방과 구름문양 사이에 남아있는 것이 조금 있다. 좌등에 청사와 홍사로 등을 사용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조선후기 일반인들은 혼례식 날에만 청사초롱을 사용했기 때문에 청사초롱은 곧 혼례식을 의미했다. 선조들은 예로부터 우주만물이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졌다고 믿어 음양을 상징하는 청홍을 배색한 초롱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풍습으로 볼 때 이 좌등은 궁에서 왕과 비빈이 합방한 방에서 사용된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좌등(도2, 도3)은 실내나 대청의 한쪽에 놓아 주변을 밝히는 데 사용한 등이다. 조금 더 넓고 멀리 비추기 위해 등은 크게 제작하고 창은 넓히고 높게 제작하였다. 옛날 궁에서는 서등(도4)이나 촛대를 좌등 안에 넣어서 사용하였다. 천판에는 환기구멍과 이동에 편리한 들쇠가 부착돼있으며 창에는 실내의 창호무늬와 조화되도록 창살을 만들거나 청사와 홍사 또는 한지를 발라 조명을 부드럽게 연출했다.

도3 좌등, 조선시대, 76.5×32㎝, 고은당 소장


[참고자료]
《한국의 박물관5》 (한국박물관연구회, 2005)


정하근 | 고은당 대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50여년간 고미술품 및 등잔을 수집했다.
수집한 국내외 전통 등기류만 수천여점에 달한다.
블로그(blog.naver.com/eunam-collection)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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