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등기구古燈器具 ⑱ 가야시대 토기

도1 가야시대 오리형 토기등잔, 18.5×16㎝, 고은당 소장



상념에 젖어있는 듯한 오리의 모습을 빚어낸 이 아름다운 토기는 가야시대 토기이다.
이토록 조형성이 뛰어나건만, 가야시대 토기의 수작 상당수는 일제강점기 오쿠라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가게 돼 국내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번 시간에는 고은당이 소장한 가야시대 토기와 오쿠라컬렉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글 정하근 (고은당 대표) 사진 이주용 기자


가야시대의 오리형 토기등잔

가야시대의 오리형 등燈(도1)은 가야(임나任那)의 옛 고장인 경남 창녕읍에서 출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경성전기주식회사 직원이자 한국 고등기구에 대해 심도 깊게 연구한 안겸의 자료 《한국의 고등기》에 있는 내용에 의하면 당시 동경국립 박물관의 지관 다나카[田中作太郞]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했다고 한다.

두드리면 금속기 같은 쇳소리를 낼 것 같이 단단하게 구워졌을 뿐만 아니라 하변의 팔자형으로 아래로 펴진 대좌에(받침) 단책형의 투명透明이 있는 구조는 고대~중세기의 일본 요업계의 총아였던 수혜기(須惠器 스에키, 일본 고분시대부터 평안시대까지 사용된 도질 토기)로 각종 용기로 제작되어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도질토기는 도기와 토기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용기다. 수혜기의 기원은 한반도의 백제, 신라, 가야 토기로 이해되고 있다. 대략 5세기 전반부터 생산 기술이 일본으로 전래되었고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질토기가 스에키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수혜기의 등장이 6세기 초임으로 이 와기는 그 이전에 만든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유약은 바르지 않았으나 구울 때 요중의 재가 만든 자연유의 고임이 배면이나 대좌의 일부에 보인다. 그 빛깔은 옷칠 같은 검은빛 그리고 초벌구이의 살갗도 흑색임은 탄소분이 혼합된 까닭일 것이다.

등잔의 높이는 16.2㎝다. 스에키 토기는 삼국시대의 토기들과 많이 닮아서 분간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오래전 한국의 상인들이 일본 토기를 많이 들여와 한국의 삼국시대 토기로 둔갑시켜 거래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다. 스에키 토기의 등장이 6세기 초이므로 이 와기등瓦器燈은 그 전에 만든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멋지게 만들어진 와기등은 이밖에도 여러 점이 더 있다.(도2, 도3)
이 등잔(도4) 역시 삼국시대의 토기등잔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고배의 종류로 볼 수 있다. 다만 반상이 평탄치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져있어 가마 내에서 소성 중 변화에 의한 것인지, 등잔심지를 깊이 떨어뜨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등잔을 한쪽으로 기울게 만든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어찌되었든 변형된 구조로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위 가야시대 토기등잔은 특유의 회유로 덮여져 있는데 회색과 회흑색이 어우러진 보기 힘든 가야시대 진품이다.
이 고배형 등잔은 고대 삼국시대 전형적인 초기 등잔으로 사용되었다. 등잔 기둥에 있는 문양은 가야시대에 사용되었던 특이한 문양이다(도5) 이러한 토기등잔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지만 일본 동경 국립박물관에서 이와 거의 비슷한 물건들을 다수 감상할 수 있다. 동경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가야시대 토기들은 이미 100년 전 일제강점기에 한국대구지역에서 일본 고미술 수집가인 오쿠라가 수집하여 반출해간 물건들이다.

도2 가야시대 토기 사관지 등, 12×14.5㎝, 고은당 소장

악명 높은 수집가 오쿠라의 한국 고미술 컬렉션

57년 전인 1964년 6월 17일, 대구에서 때 아닌 ‘보물소동’이 벌어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날 대구시 중구 문화동 38번지에 있던 육군 8053부대(방첩대)의 지하실에서 신라시대각종 토기를 비롯, 삼국시대 및 송·명대의 희귀 문화유물 149점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전국의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지하실에 들어간 전기수리공에 의해 처음 발견된 유물들 중에는 신라시대의 귀면와鬼面瓦, 연화문와蓮花紋瓦 등 각종 토기, 고려시대의 청동경靑銅鏡과 자기류, 송·명대의 채색호彩色壺와 옥잔 등 보물급 문화재가 수두룩했다. 발견 당시 유물들은 60여 개의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 6평쯤 되는 으슥한 지하실 바닥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보물급 유물 외에도, 근대 일본의 국보급 서화(<동해도 53차>) 20여점과 고려자기 및 일본의 근대 고급자기 수백 점도 함께 발견되어 고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지하실이 포함된 주택의 원소유주는 일제강점기 대구의 거부이자 유명한 고미술 수집가였던 오쿠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로 밝혀졌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땅에서 한국문화재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던 악명 높은 수집가다. 유물은 그가 수집·소장하다가 일제 패망으로 귀국하면서 은닉해 둔 것으로 추정된다. 오쿠라 다케노스케는 도쿄 제국대 법학과를 마치고 1903년 조선경부철도회사에 입사하여 한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그는 이주해오기 3년 전, ‘콜브란’이란 미국인으로부터 민간 전기사업이 장차 조선의 유망사업이 될 것이란 귀띔을 받고 이 사업에 관한 각종 자료를 잔뜩 갖고 대구에 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대구성 철거에 따른 땅 투기로 전기사업을 위한 종자돈을 듬뿍 마련한 오쿠라는 처음 50KW의 소규모 발전 사업에서 시작, 30여년 만에 조선 전기계의 왕자로 등극할 수 있었다. 대구는 물론, 서울, 회령, 함흥, 광주, 울산, 제주, 여수, 순천, 고성, 안동, 경주 등 전국에 자매전기회사를 거느린 ‘대흥전기회사’의 사주가 된 것이다. 해방 후 회사는 모두 ‘남선전기’ 회사로 통합되었다가 나중 ‘한국전력’의 모태가 되었으니 ê·¸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전기사업에서 번 돈으로 금융업에도 진출한 그는 대구상공은행두취(頭取, 은행장)와 대구증권 회사 사장도 겸했다. 또 대구상공회의소 회두(會頭, 회장)와 경북도평의원, 대구부(府,시)의원도 수차례 겸직, 대구의 대표적인 거부이자, 영향력이 큰 인물로 손꼽혔다.
그의 취미는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이었는데, 특히 신라문화유물과 관련해 일가견을 지닌 독보적인 수집가였다. 국보급 신라금관과 금불상은 물론 각종 진귀한 토기류가 그의 수집대상이었다. 이밖에도 값비싼 고려청자, 이조백자, 청동유물, 서화류 등이 대량으로 그의 손에 들어갔다. 전쟁말기에 상당수가 일본으로 밀반출되어 안전한 곳에 은닉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오늘날 일본에서 명성을 떨치는 바로 그 ‘오쿠라 컬렉션’의 모체이기도 하다. 20여 년 만에 발견된 대구 옛집의 유물도 결국 더 귀중한 탈출봇짐에 밀려 뒷날을 기약하고 숨겨둔, 그의 ‘2류급 애장품’에 불과했던 셈이다.
골동품을 수집하기 위해서는 재력과 안목 외에 열정이 따라야만 가능하다. 열정이 지나치면 ‘탐욕’일 수밖에 없는데, 오쿠라의 경우 열정이란 미명 아래 조선 고미술에 대한 편집광적 수탈욕구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는 것이 정평이다. 골동품에 대한 가치인식이 희박하던 시절에 그저 줍다시피, 혹은 칼과 돈으로 한껏 수탈해 갔음에도 오쿠라는 못다 가지고 간 유물들이 애석해, 여러 번 염탐꾼을 대구에 보냈다간 실망만 크게 하고 숨졌다는 후문이다.

(왼쪽) 도3 가야시대 잔형 경질토기등잔, 11×8.5㎝, 고은당 소장
(오른쪽) 도4 가야시대 반형변형토기 등잔, 14×13.5㎝, 고은당 소장

안겸, 한국 고등기구에 대한 선구적 연구자

등 전문수집가인 안겸은 오쿠라컬렉션에 방문하여 수집한 물건들을 전시 해놓은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측근들과 계속 유대관계를 가졌다. 본인이 근무하는 경성전기주식회사에 도굴한 물건을 기증받기도 한 사실을 보면 안겸이 그와 가까이 지내는 동안 자문을 많이 해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안겸은 일본사람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1920년대에 경성 전기 사료실에 입사하여 한국 등잔에 대하여 수집하며 연구를 거듭해왔다. 경성전기주식회사(한국 전력 주식회사의 전신)에 등잔기구의 변천과정을 연구하기 위하여 등화 사료실을 마련하여 광범위하게 고등기구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만일 안겸이 없었다면 한국의 등잔기구가 얼마나 남아있을까? 한국의 고등기구를 연구하려면 그의 연구 자료를 찾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이분의 자료를 바탕으로 고등기구를 연구해 왔기에 매우 감사한 마음이다. 물론 외국인이 물건을 수집함에 있어 남아있는 사료 중 간혹 일본 등기구나 중국 등기구가 잘못된 경우도 있다. 안겸은 경성 전기주식회사에 근무하면서 1930년대 대구에서 오쿠라 컬렉션에 대해 자문해주었을 것이다. 특히 오쿠라 컬렉션에서 일부 기증받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왼쪽부타) 도5 가야시대 반형토기등잔, 16×13㎝, 고은당 소장 / 도5 부분


참고문헌
《한국전력 : 한국의 고등기》
<정영진의 대구 이야기 (4) - 문화재 수탈 거물 오쿠라> (2006. 1. 17 매일신문)


정하근 | 고은당 대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50여년간 고미술품 및 등잔을 수집했다.
수집한 국내외 전통 등기류만 수천여점에 달한다.
블로그(blog.naver.com/eunam-collection)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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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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