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등기구古燈器具 ⑰ 민화에 그려진 등燈과 촛대燭臺

도1 <서당>, 조선시대, 한지에 채색, 35×38㎝, 고은당 소장



이번 시간에는 등燈이 그려진 작품 세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등이 그려진 고화古畵는 희귀하기도 하지만, 생활필수품이자 의식용 기물로서
선조들의 삶 곳곳을 비춘 등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한 사료이기도 하다.

글 정하근 (고은당 대표) 사진 이주용 기자


서당을 환히 비추는 유리등

조선시대 고화古畵 가운데 등燈이 나온 작품은 희귀하다. 오랜 기간 등을 수집하며 등이 그려진 작품도 간간이 사두곤 했는데, 이번 시간에는 그 가운데 세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서당의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다(도1). 한창 시험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왼편의 아이는 오른 손에 붓을 쥐고 책 앞에 바싹 다가가 암기한 내용을 적어보려 하지만 외운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는지 울상이다.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있어야 할 공책도 텅 비어있다. 바로 옆에서는 답안지를 먼저 작성한 글동무가 훈장님을 마주보고 앉아 외운 내용을 줄줄 읊고 있다. ‘친구는 다 외운 것 같은데, 나는 어떡하나’ 머리가 새하얘진 아이의 심각한 표정이 도리어 보는 이의 미소를 자아낸다. 호랑이 훈장님은 오른손을 치켜들고 매서운 눈빛으로 아이를 지도하는 모습이다. 꼿꼿히 앉은 자세, 다부진 태도에서 아이를 향한 열의와 애정이 느껴진다. 인물과 기물을 능숙히 묘사한 붓질과 안정된 구도에서 화원의 뛰어난 기량을 엿볼 수 있다.
천장에 매달린 유리병 속 양초가 눈길을 끈다. 유리와 금속으로 만든 서양의 램프, 일명 양등이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가 1850년대이고 1880년대에 석유가 수입되고 남포등이 들어오면서 양초도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그림에서 묘사한 풍경도 그 무렵으로 추정된다. 양초의 촛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험은 밤늦도록 이어지는 모양이다. 시험 결과야 어찌되었든 간에 공책을 부여잡고 씨름하는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이 사랑스러울 따름이다. 단원 김홍도의 대표작 <서당>을 연상케 한다.

도2 <삼국지 도원결의>, 조선시대, 한지에 채색, 106×53㎝, 고은당 소장

도원결의에 등장한 의례용 촛대

다음으로 살펴볼 작품은 《삼국지》의 도원결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도2). 분홍빛 복숭아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동산에서 (오른쪽부터) 유비, 관우, 장비가 한자리에 모여 제사상을 차린 뒤 평생 의義를 맹세하는 모습이다. 제사상 위에는 제물로 바쳐진 검은 소와 흰 말, 여러 제기祭器 들이 놓였다. 제물이 차려진 돗자리와 그 위에 차려진 제사상의 모습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인물, 복숭아나무와 소나무 등은 측면에서 바라본 듯 그려진 다시점의 구도라 당시 전반적인 풍경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적색, 청색, 푸른색 등 그림에 채색된 안료의 색상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어 정적인 장면임에도 화폭에 활기가 감돈다. 제사상의 양 옆에는 성인의 키를 상회할 정도로 높은 촛대가 놓여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 비슷한 모양의 의례용 촛대가 조선시대에 크게 발달한다. 전기에는 대개 고려시대의 광명대(光明臺, 상부가 편평한 원반형을 이루어 등촉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구성된 촛대)를 본 딴 죽절식이다. 후기로 갈수록 앞선 양식으로부터 변형된 것이 많은데, 이 같은 죽절식 촛대는 관官·민간에서 널리 의식용으로 사용되었다(도3). 반드시 두 개를 세트로 하여 사용했으며 촛대의 크기는 작게는 20㎝, 큰 것은 2m이상에 이르렀다. 당시 촛대 재료로는 청동, 철, 유, 백동, 목재, 옥석, 도자기 등이 사용되었으며 사용계층의 신분과 용도에 따라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

도3 <죽절식 촛대>, 조선시대, 탱자목, 각 68×23㎝, 고은당 소장

주막에 걸린 종이등

마지막 작품은 시끌벅적한 주막의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다(도4). 주막 안쪽에는 먼 길을 다녀온 행상들이 술을 마시며 피로를 풀고 있으며 주모가 술상을 차리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주막 안팎에 수북이 쌓인 보따리 무더기가 멀고 먼 나그네의 여행길을 짐작케 한다. 마당에서는 이제 막 주막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남성과 주막에서 나갈 채비를 하는 이들이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곰방대를 입에 문 남자, 마루에 걸터앉아 노잣돈을 추스르는 행상, 짐을 거들어 들려는 시동의 모습 등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에서 주막의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진다. 주막 지붕 위로 뻗어 나온 꽃나무 가지에는 ‘酒’라고 적혀 있는 붉은 등이 매달려 있다. 등이 매달린 곳이 주막임을 알리는 일종의 간판인 셈이다. 한지 덮개 안에 호롱불을 집어넣어 만든 것으로, 등에서 흘러나온 밝은 빛이 한지를 투과해 은은하게 빛난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 등은 생활필수품이자 의식용 기물로서 선조들의 삶 곳곳을 비춘 역사적 유물이다. 각 시대의 첨단 기술력부터 사용자의 안목, 염원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소중한 문화유산인 만큼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등에 대해 따듯한 관심을 당부하고자 한다.

도4 <주막집 풍경>, 구한말, 견본채색, 90×43.5㎝, 고은당 소장


정하근 | 고은당 대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50여년간 고미술품 및 등잔을 수집했다.
수집한 국내외 전통 등기류만 수천여점에 달한다.
블로그(blog.naver.com/eunam-collection)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