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등기구古燈器具 ⑫ 연등과 연꽃

석가탄신일에는 전국 사찰에서 연등행사를 한다.
이번 시간에는 연등행사의 백미로 꼽는 헌등행사와 관련하여 연꽃과 헌등행사의 의미,
연꽃 문양의 등잔대까지 두루 살펴보도록 한다.

글 정하근 (고은당 대표) 사진 이주용 기자


이번 달 5월 19일(음4월 초파일)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이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석가모니 탄생을 기념하여 전국의 사찰에서 대대적으로 연등행사燃燈行事(등불을 밤새도록 밝히고 부처님에게 복을 비는 불교적 성격의 행사)를 한다. 연등행사의 백미는 부처님께 올리는 헌등행사獻燈行事다. 불교에서의 등은 지혜, 해탈, 자비, 선행 등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부처님에 대한 공양으로는 등과 등유를 으뜸으로 친다고 하였다. 등불 하나하나가 수미산과 같을 뿐 아니라 한 종지의 기름은 큰 바닷물과 같아서 이는 모든 공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법공양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도2 <목조 연봉등잔대>
조선시대, 21×21×41㎝, 고은당 소장

연등의 모티프인 연꽃은 민화에서도 즐겨 쓰이는 소재 중 하나다. 진흙 속에서 맑고 고운 꽃을 피워낸다 하여 화중군자花中君子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연밥에 박힌 연실蓮實은 다남을 상징하여 아들을 연달아 낳길 소망할 때 연꽃과 함께 그리기도 했다.
지면에서 소개하는 앙련등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이다(도1). 동그란 연꽃의 모양이 오늘날 사찰에서 연등행사 때 사용하는 연등의 모양과 꼭 닮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연꽃 문양이 선명히 남아 있어 당대의 미감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동그랗게 빚어낸 토기 표면에 수 겹의 연꽃잎을 이어 붙여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난 모습을 표현했으며 손잡이 부분의 꽃받침까지 놓치지 않고 세밀히 묘사했다. 등 안에는 식물성 기름과 한지로 만든 심지를 넣어 불을 밝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목조 연화형 등잔대, 연봉 등잔대에서는 사대부가의 단아한 기품을 엿볼 수 있다. <목조 연봉등잔대>
(도2)는 곧게 쭉 뻗어난 줄기 위에 연봉이 맺힌 모습이다. 받침대와 등잔의 둥근 곡선과 등잔대의 직선과의 조화가 빼어나다. 심플하고도 세련된 이 등잔대에서 더 이상 덜어낼 것도, 덧붙일 것도 없는 중도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목조 연화형 등잔대>(도3)에서는 나무의 옹이마저 멋들어진 디자인요소로 활용하여 자연미를 불어넣었다. 연꽃 모양의 등잔대 안에 폭 싸인 유등이 마치 한 송이의 꽃을 연상케 한다.

성심으로 밝힌 연등, 지혜를 상징

부처님 오신날 사월초파일에 행하는 연등 행사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다.
《화엄경탄현기》에는 연꽃의 덕목을 네 가지로 설명 한다. 향(香, 향기), 결(潔, 고결), 청(淸, 맑음), 정(淨, 깨끗함)이 그것이다.
비록 중생이 사는 세상이 무명과 탐욕으로 얼룩져있지만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은 청정하고 깨끗하며 맑은 향기를 전한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이나 불교 관련 성보를 모시는 자리를 연꽃으로 장엄한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스님들이 착용하는 가사를 연화복이라고 하는 것도 연꽃이 세간에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연꽃은 진흙바닥의 지저분한 연못에서 자라면서도 그 청결함과 아름다움을 결코 잃는 법이 없다. 그렇기에 모름지기 보살은 연꽃과 같이 살아야 할 것이며, 이는 더러운 곳에서도 깨끗하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무명에 쌓여있는 중생이 부처의 성품을 드러내어 부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등을 밝힌다는 것.’ 이것은 무명에 휩싸여 암흑에 빠진 중생을 광명의 서계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세속에서 온갖 중생들과 더불어 살면서도 세속의 때에 물듦이 없이 오히려 나로 인해 주변을 아름답게 비추는 삶을 상징한다. 그래서 등을 밝히는 것이다.
불교 경전에 기록되어있는 연등의 유래를 살펴보면 아사세 왕(中印度 摩竭陀國의 임금)이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 법문을 청해 들을 때 동참한 모든 불자들이 기름 등불을 켜서 법회 자리를 밝힌 데서 유래한다. 당시 난타라는 한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름등불 공양을 올려 공덕을 쌓는 것을 보고 스스로도 공양을 올리고 싶었으나 수중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근근히 돈을 구하여 기름 한 되를 마련하여 등을 밝혔다. 아침이 되어 모든 연등의 불은 거의 꺼졌으나 난타의 불만은 꺼지지 않고 밝게 타고 있었다. 이를 보고 아난과 목련존자가 부처님께 여쭈니 부처님께서는 이 등불은 지극한 성심과 큰 원력을 가진 사람이 밝힌 등불이기 때문에 꺼지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이때 난타 여인이 부처님 전에 예배하자 부처님께서는 ‘네가 오는 세상에 이 아승지겁을 지나 부처가 되리니 이름을 동광여래라 할 것이다’라고 수기를 내렸다. 난타는 감화하며 출가하기를 청원해 계를 받고 비구니가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부처님 전에 지극정성으로 기원 봉양하면 무량한 공덕을 입을 수 있음을 깨닫고, 연등을 밝혀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고 자신의 지혜를 밝혔다고 한다.


도3 <목조 연화형 등잔대>, 조선시대, 17×22×46.5㎝, 고은당 소장



불교인은 누구나 연등행사 때 절에 가서 소원을 담은 등을 달고 불상 앞에서 무수히 절을 하며 복을 빈다. 원래 부처님께 등을 밝혀 공양하는 것은 인도에서 내려온 풍습이다. ‘등’이라는 것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므로 불교에서는 이를 지혜에 비유하고 불전에 등을 켜고 바치는 등 공양을 향공양과 아울러 매우 중요시 여겨왔다. 연등의 의의가 그만큼 중요했으므로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연등회 또는 관등회라는 명칭하에 법회로서 일반화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참고자료]
<문화마당/연꽃의미>, <불교신문> (2017.07.03)
《불교경전》


정하근 | 고은당 대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50여년간 고미술품 및 등잔을 수집했다.
수집한 국내외 전통 등기류만 수천여점에 달한다.
블로그(blog.naver.com/eunam-collection)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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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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