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등기구古燈器具 ⑥ 촛대燭臺 Ⅲ

조선시대 중기에 들어서며 촛대 제작 기술은 상당 수준 발전했으며 계급별 촛대 사용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느슨해지며 광범위한 계층에서 촛대를 사용하게 된다. 지난달에 이어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촛대를 살펴보고 촛대 제작에 사용된 여러 재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지면에서 소개하는 백동촛대(도1)는 당시 장인들의 무르익은 기술력과 수준 높은 미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꽃봉오리를 잎에 문 기러기의 둥근 머리와 활짝 펼친 날개의 곡선은 방풍선 받침대를 지나 박쥐 문양이 양각된 방풍선과 이어지며 그 아래로는 연잎 모양의 초받침대, 굽이 달린 원형 받침대로 이어진다. 화려하진 않지만 윗부분의 그을음받이부터 당초문이 투각된 연결판, 원형의 받침대까지 전반적으로 크고 작은 곡선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조형적 미감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은은한 매력을 뽐낸다.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기러기가 꽃송이를 물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그을음받이다. 우리 선조들은 고대부터 새를 신의 정령으로 여겨 신성시하고 찬탄했다. 촛대에 표현한 모습과 비슷한 도안으로 임해전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와당을 들 수 있으며 당시 와당에서도 상서로운 작은 새인 서금瑞禽이 입에 꽃을 물고 있는 문양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새의 종류와 상징하는 바는 더욱 다양해지는데 촛대에 매달린 기러기의 경우 철 따라 이동하는 기러기가 먼 곳에 소식을 전해준다는 안서雁書의 의미나 짝을 만나 평생토록 함께 하는 기러기 부부처럼 부부 간 백년해로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연결판에 투각된 당초문은 겨우살이덩굴(인동초)를 표현한 문양으로 혹독한 겨울을 견디면서 계속 뻗어나가는 성질 때문에 연면連綿을 상징한다. 해당 촛대에서는 사용자의 복록이 영원토록 이어지길 바라는 의미로 쓰였을 것이다.

또 다른 목제촛대(도2)는 사찰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안정감을 주는 비례와 지금 보아도 세련된 문양을 나무에 정교히 새겨넣은 솜씨가 일품이다. 초받침대 아래에는 연꽃이, 촛대의 하단부와 중간에는 파초문이 음각되어 있으며 녹색과 붉은색의 당채로 채색돼 있다. 파초는 겨울이면 시든 것 같아도 봄이 오면 새순이 돋고, 불에 탄 뒤에도 속심이 다시 살아나 장구長久, 기사회생起死回生을 상징한다. 또한 줄기가 양파처럼 겹겹이 쌓여있지만 이를 하나씩 벗겨나가면 아무것도 없다하여 불교에서는 이를 무아無我에 빗대기도 한다.

더욱 다양해지는 촛대들

앞서 살펴본 촛대들처럼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촛대 제작 기술력이 상당히 발전하게 되며 사용 범위도 보편화된다. 조선 중기에 제작된 우지초(소의 기름), 돈지초(돼지 기름), 밀초 등을 보더라도 초의 종류가 다양해짐을 알 수 있으며 국정이 문란해지면서 초의 통제가 무너지고 사용계층이 광범위해졌다.
의식용(제례/혼례) 촛대의 형태는 대부분 복발형 또는 이중 복발형의 받침대에 죽절형 또는 이것의 변형인 연주형(주판알 모양), 장고형 등의 간주間柱를 세웠으며 나비, 박쥐, 원, 팔각 등의 문양을 활용한 방풍선과 조그마한 핀셋 형의 불집게를 볼 수 있다.
촛대는 대개 육각 하반에 육각 간주, 육각 방풍선, 육각 상반 또는 팔각 하반에 팔각 간주, 팔각 방풍선, 팔각 상반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문양으로는 운학문, 점선문, 태극문, 화문, 석류문, 박쥐문, 뇌운문, 단풍문, 만자 등이 투각 또는 양각됐다.

여러 재료의 촛대들

재료별 촛대의 경우 금속제 촛대, 목제 촛대, 옥제 촛대, 자기제 촛대, 철제 촛대 등이 있다. 목제 촛대의 경우 주로 송재(소나무)를 사용했으며 대부분 주칠, 흑칠, 생칠(투명한 색)을 했다. 여기에 사용된 초꽂이는 철제, 유제의 경우 죽절형竹節形의 밋밋한 모양에 원, 팔각의 승반이 달린 촛대가 많고 옥석제품은 원통형, 필통형인 경우도 있다.
목제는 드문 편인데 목재 자체가 내구성이 약하고 불에 연소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목제 촛대도 금속제 촛대와 마찬가지로 광명대를 본 딴 죽절식이나 변형된 모양이지만 형태는 단순하고 주로 의식에 사용되었다. 당시 궁에서는 화재의 위험을 염려해 목재로 제작된 촛대나 목제 등잔대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옥제 촛대가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이며 조선 말기에 청에서 수입한 양식 촛대도 대부분은 옥석으로 되어있다. 옥제 촛대는 귀한 물건으로 여기에 궁중 연회 사원의 불전용으로 쓰였으며 이러한 옥은 성천, 단천, 해주, 수원, 남양, 평강, 이천 등에서 생산되었는데 단천과 성천상 옥을 최고로 쳤다.
자기제 촛대로 고려시대에는 청자촛대가 아주 귀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백자촛대가 많아 연회 및 실내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속재료는 대체로 시대순에 따라 초기의 청동, 철로부터 유, 백동으로 이행하는 금속공예의 흐름을 보인다. 유제 촛대 일부는 전부를 해체하여 조립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도 있으며 의식용 촛대의 경우 그 형태는 대부분이 복발형 또는 이중 복발형의 대에 죽절식이나 연화형, 장고형 모양이다. 의식용 촛대의 재료 대부분은 놋쇠, 대리석, 나무나 백자 제품이며 철제 촛대들은 이러한 무늬들을 은상감한 작품이 적지 않으며 궁이나 사대부 층에서 사용했다.
특히 조선후기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백동촛대가 출현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백동은 구리와 니켈 15~25%를 더한 합금으로 만들어진 금속제품으로 재질이 강하고 광택이 아주 수려해 인기가 좋았다. 백동촛대는 혼합되는 재료의 양에 따라 다양한 색상의 촛대가 제작되었다. 초기에는 니켈 재료가 귀하고 값이 비싸서 풍부하게 사용하지 못했다. 왕실과 귀족층의 촛대는 특수한 재료에 궁장인의 솜씨에 힘입어 일반 촛대와는 그 모습이 확연히 구별된다. 초기에는 궁장인들만이 백동촛대를 제작해 궁에서 사용했으나 국정이 문란해지면서 20세기 초에는 일반인들까지도 백동촛대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되었다.
앞서 살펴보았듯 조선시대에는 많은 종류의 촛대가 다양하게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등 잦은 전란으로 인하여 많은 양의 등기구가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현재 조선시대의 등촉기구는 매우 귀하다.


참고자료
일연, 《삼국유사》
<한국전력 : 한국의 고등기 (안겸)>
김삼대자, <이조시대 등촉기구에 관한 고찰 (이화여대 석사논문)>
임영주, 《한국의 전통문양》



글 정하근(고은당 대표)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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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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