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었네 피었네 ìš°ë¦¬ë‚˜ë¼ ê½ƒ, 무ê¶í™” ìžìˆ˜ ì§€ë„ ì´ˆë³¸

ë„1 무ê¶í™” ìžìˆ˜ ì§€ë„ ì´ˆë³¸, 지본수묵, 대전시립박물관 소장



ì´ë²ˆ ì‹œê°„ì— ì†Œê°œí•  ì´ˆë³¸ì€ ë¬´ê¶í™” ì§€ë„ ìžìˆ˜ 초본ì´ë‹¤.
ì´ ì´ˆë³¸ì— ëŒ€í•´ 살펴보면서 우리 ì¡°ìƒë“¤ì´ ë…ë¦½ì„ ì–¼ë§ˆë‚˜ ê¹Šì´ ì—¼ì›í–ˆëŠ”ì§€ 살펴보는 ì‹œê°„ì´ ë˜ê¸¸ 바란다.

글 ì´ë‹¤ì • (가회민화박물관 ê°ì›ì—°êµ¬ì›)


무ê¶í™” ìžìˆ˜ ì§€ë„ ì´ˆë³¸ì„ ì‚´íŽ´ë³´ìž

ì´ë²ˆ ì‹œê°„ì— ì†Œê°œí•  ì´ˆë³¸ì€ ëŒ€ì „ì‹œë¦½ë°•ë¬¼ê´€ì—서 소장 ì¤‘ì¸ ë¬´ê¶í™” ì§€ë„ ìžìˆ˜ 초본ì´ë‹¤(ë„1). ì´ ì´ˆë³¸ì€ ì§€ë‚œ ì‹œê°„ì— ì†Œê°œí•œ 효제문ìžë„ 초본과 함께 기ì¦ëœ 유물로 현재 다른 초본들과 함께 <민화 밑그림>ì´ë¼ëŠ” 유물명으로 등ë¡ë˜ì–´ 있다.
ì´ ìœ ë¬¼ì„ ì‚´íŽ´ë³´ë©´, ì´ ìœ ë¬¼ì€ í•œì§€ì— ê·¸ë ¤ì§„ ì´ˆë³¸ìž„ì„ ì•Œ 수 있다. ì´ˆë³¸ì€ ì˜¤ë¥¸ìª½ ìƒë‹¨ 가장ìžë¦¬ê°€ ë§Žì´ í—¤ì§€ê³  ì•„ëž«ë¶€ë¶„ì´ ì°¢ì–´ì ¸ 있으나 먹으로 그려진 ë„ìƒ ë¶€ë¶„ì€ í° ì†ìƒì´ 없으며, 현재 ë°°ì ‘ì´ ë˜ì–´ 있어 유물 ìƒíƒœëŠ” 안정ì ì´ë‹¤. 초본 ì† ë„ìƒì„ 살펴보면, ë°±ë‘ëŒ€ê°„ì„ ë”°ë¼ ë¬´ê¶í™” 가지가 ë»—ì–´ 나가고 ê·¸ 가지를 바탕으로 13송ì´ì˜ 무ê¶í™” 꽃과 ìžŽì´ ë¬´ì„±í•˜ê²Œ 그려져 있다. 13송ì´ì˜ ê½ƒì€ í•œë°˜ë„를 구성하는 13ê°œì˜ ë„é“를 표현한 것ì´ë‹¤. ë˜ ë¬´ê¶í™” 꽃잎으로 제주ë„를 표현하였고, 잎 한 장으로 울릉ë„와 ë…ë„를 표현하였다. 울릉ë„와 ë…ë„를 잎 한 장으로 표현한 ê²ƒì€ ë‹¹ì‹œ ë…ë„ê°€ 울릉ë„ì˜ ë¶€ì†ë„ì„œä»˜å±¬å³¶å¶¼ì— í¬í•¨ë˜ì–´ 있었기 때문ì´ë‹¤. ì´ëŠ” 제주ë„를 표현할 때 ìš°ë„를 êµ³ì´ í‘œí˜„í•˜ì§€ 않ë”ë¼ë„ ‘우ë„는 없다’ë¼ê³  주장할 수 없는 것과 ê°™ì€ ì´ì¹˜ì´ë‹¤. 한국ì¸ì´ë¼ë©´ 마땅히 알고 있는 ì¼ì´ì§€ë§Œ, 누군가 í•­ì˜í•˜ëŠ” 경우가 있ì„까 염려ë˜ì–´ ì‚¬ì¡±ì„ ë‹¬ì•„ë³¸ë‹¤.
다시 ì´ˆë³¸ì„ ì‚´íŽ´ë³´ìž. 초본ì—는 진회색, 검정, 진유ë¡, ì—°ë³´ë¼, 꽃ìžì£¼ 등 사용해야 í•  ìƒ‰ì±„ëª…ì´ ì“°ì—¬ìžˆëŠ” ê²ƒì„ ë³¼ 수 ìžˆëŠ”ë° ìƒ‰ì±„ëª…ì€ ë¨¹ìœ¼ë¡œ ì“°ì¸ ê²ƒê³¼ 연필로 ì“°ì¸ ê²ƒì´ í•¨ê»˜ 나타난다. 한편 ì´ˆë³¸ì˜ ì˜¤ë¥¸ìª½ ì•„ëž«ë¶€ë¶„ì„ ë³´ë©´ 한ìžë¡œ ì“°ì¸ ëª…ë¬¸ì´ ëˆˆì— ë„는ë°, ê·¸ ê¸€ì”¨ì˜ ì¢Œìš°ê°€ 바뀌어 있는 ê²ƒì„ ë³¼ 수 있다. ì´ëŠ” ì´ˆë³¸ì„ ê·¸ë¦´ 때 종ì´ë¥¼ 재활용해서 사용했ìŒì„ 보여주는 ìžë£Œë¡œ ëª…ë¬¸ì˜ ë‚´ìš©ì€ ì¶”í›„ 다시 연구할 예정ì´ë‹¤.

무ê¶í™” ìžìˆ˜ ì§€ë„ ì´ˆë³¸ì„ ë§Œë“  ì‚¬ëžŒì€ ëˆ„êµ¬ì¸ê°€

그렇다면 ì´ ì´ˆë³¸ì„ ì²˜ìŒ ë§Œë“  ì‚¬ëžŒì€ ëˆ„êµ¬ì¼ê¹Œ? ì´ ë¬¸ì œì˜ ë‹µì„ ì°¾ê¸° ì „ì— â€˜ì™œ 무ê¶í™”ì¸ê°€â€™ë¥¼ ìƒê°í•´ì•¼ 한다. 무ê¶í™”는 오래전부터 우리나ë¼ë¥¼ ìƒì§•하는 꽃ì´ì—ˆë‹¤. 중국ì—서 ì˜¤ëž˜ëœ ì±…ì¸ ã€Šì‚°í•´ê²½ã€‹ì—는 우리나ë¼ë¥¼ ‘무ê¶í™”ê°€ ë§Žì€ ë‚˜ë¼â€™ë¼ê³  기ë¡í–ˆë‹¤. 그리고 우리나ë¼ì—ë„ ë¬´ê¶í™”ì— ëŒ€í•œ ë¬¸í—Œì´ ë§Žì´ ë‚¨ì•„ìžˆì–´ ìš°ë¦¬ë‚˜ë¼ ì‚¬ëžŒë“¤ì´ ì•„ì£¼ 오래전부터 무ê¶í™”를 우리나ë¼ë¥¼ ìƒì§•하는 꽃으로 여겼ìŒì„ 알 수 있다.

ë„2 무ê¶í™” ìžìˆ˜ ì§€ë„, 51×32.5ãŽ, ë…립기ë…ê´€ 소장

본격ì ìœ¼ë¡œ 무ê¶í™”ê°€ 우리나ë¼ì˜ ìƒì§•으로 등장한 ê²ƒì€ ëŒ€í•œì œêµ­ 시기부터였다. 1892ë…„ ì¸ì²œì „환국ì—서 발행한 5냥 ì€í™”ì— ë¬´ê¶í™” 가지 ë„ì•ˆì´ ì‚¬ìš©ë˜ì—ˆê³ , 1900ë…„ì—는 대한제국 훈장과 외êµê´€Â·ë¬¸ê´€ ëŒ€ë¡€ë³µì— ë¬´ê¶í™” ë¬¸ì–‘ì´ ìƒˆê²¨ì¡Œë‹¤. 1919ë…„ 3·1ìš´ë™ ì´í›„ì—는 무ê¶í™”ê°€ 우리나ë¼ì˜ ìƒì§•으로 굳어졌고 ë…립운ë™ê°€ë“¤ì´ ì¡°êµ­ ë…ë¦½ì˜ ìƒì§•으로 활용하였는ë°, ê·¸ 때문ì¸ì§€ ì¼ì œëŠ” 무ê¶í™”를 언급하는 ì‚¬ëžŒë“¤ì„ ì²˜ë²Œí•˜ê³  무ê¶í™” 나무를 뿌리째 뽑아 태우는 등 ë§Žì€ ì•…í–‰ì„ ì €ì§ˆë €ë‹¤.
ì´ëŸ° ìƒí™©ì—서 무ê¶í™” ì§€ë„ ìžìˆ˜ ì´ˆë³¸ì„ ê³ ì•ˆí•˜ê³  보급한 ì‚¬ëžŒì€ ë‚¨ê¶ì–µå—å®®æª ì„ ìƒì´ë‹¤. 그는 배화학êµì— 재ì§í•˜ë˜ 시절 í•œë°˜ë„ ë¬´ê¶í™” ì§€ë„ ìžìˆ˜ ì´ˆë³¸ì„ ì§ì ‘ 만들어 여학ìƒë“¤ì—게 보급했는ë°, ì´ëŠ” 여학ìƒë“¤ì—게 민족ì˜ì‹ê³¼ 역사ì˜ì‹ì„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가 만든 ì´ˆë³¸ì€ ë°°í™”í•™êµ í•™ìƒë“¤ë¿ ì•„ë‹ˆë¼ ì „êµ­ ê°ì§€ì˜ 여학êµë¥¼ ê±°ì³ ê° ê°€ì •ì˜ ë¶€ì¸ë“¤ì—게 확대ë˜ì–´ 민족ì˜ì‹ì„ 고취하는 계기가 ë˜ì—ˆë‹¤. ì´ë ‡ê²Œ 수놓아진 ìžìˆ˜ëŠ” ë¯¸êµ­ì˜ êµí¬ë“¤ì—게 ë³´ë‚´ì§€ê¸°ë„ í–ˆê³ , ë…립운ë™ê°€ë“¤ì´ 활ë™í•˜ëŠ” ê°„ë„ì—ë„ ë³´ë‚´ì¡Œë‹¤. ë˜ ë…립운ë™ê°€ë“¤ì´ ì§ì ‘ 무ê¶í™” ìžìˆ˜ë¥¼ 수놓아 사람들ì—게 ë‚˜ëˆ„ì–´ì£¼ê¸°ë„ í–ˆë‹¤. ê° ê°€ì •ì—서는 ì—¬ì„±ë“¤ì´ ë¬´ê¶í™” ìžìˆ˜ë¥¼ 수놓아 ì§‘ ì•ˆì— ê±¸ì–´ë†“ì•˜ê³ , ì—¬ìžì•„ì´ë“¤ì€ ìžë¼ì„œ 결혼할 때 혼수품으로 ìžê¸°ê°€ 만든 무ê¶í™” ìžìˆ˜ë¥¼ 시ëŒìœ¼ë¡œ 가지고 가는 ì¼ì´ 많았다. 무ê¶í™” ì§€ë„ ìžìˆ˜ê°€ 민족ì˜ì‹ í•¨ì–‘ì— í° ë„ì›€ì´ ëœ ê²ƒì´ë‹¤. 그래서 ì¼ì œê°•ì ê¸°ì—는 무ê¶í™” ìžìˆ˜ë¥¼ 놓는 ê²ƒë§ˆì €ë„ ìžìœ ë¡­ì§€ 못했다. ë¯¼ì¡±ì •ì‹ ì˜ ìƒì§•ì¸ ë¬´ê¶í™”를 ë§ì‚´í•˜ë ¤ê³  하는 ì¼ì œì˜ ì •ì±…ì— ìœ„ë°°ë˜ëŠ” 행위ì´ê¸° 때문ì´ë‹¤. 그래서 무ê¶í™” ê½ƒìžŽì´ 5ê°œì—서 4개로 바뀌어 ë§Œë“¤ì–´ì§€ê¸°ë„ í–ˆëŠ”ë°, ê·¸ê²ƒì€ ë¬´ê¶í™” ê½ƒì´ ì•„ë‹ˆë¼ ë‹¤ë¥¸ 꽃ì´ë¼ê³  ë§í•˜ê¸° 위해서였다고 한다. 실제로 í•œë°˜ë„ ë¬´ê¶í™” ìžìˆ˜ ìœ ë¬¼ì„ ì‚´íŽ´ë³´ë©´ ê½ƒìžŽì´ 4ìž¥ì¸ ê½ƒì´ ì„žì—¬ 있는 ê²ƒì„ í™•ì¸í•  수 있어 ì´ ì‚¬ì‹¤ì„ ë’·ë°›ì¹¨í•œë‹¤.
ì´ë²ˆ 시간ì—는 ìš°ë¦¬ë‚˜ë¼ ê½ƒì¸ ë¬´ê¶í™”를 ìˆ˜ë†“ì€ ìœ ë¬¼ë“¤ì„ ì‚´íŽ´ë³´ì•˜ë‹¤. ë´„ì˜ ì‹œìž‘ì¸ 3ì›”ì˜ ì²«ë‚ , 우리 ë¯¼ì¡±ì˜ ëˆì§ˆê¸´ ìƒëª…ë ¥ì„ ìƒì§•하는 무ê¶í™”를 ìƒê°í•˜ê³ , ë” ë‚˜ì•„ê°€ 우리 ì„ ì¡°ë“¤ì´ ë…ë¦½ì„ ìœ„í•´ 얼마나 ë§Žì€ í¬ìƒê³¼ í—Œì‹ ì„ í–ˆëŠ”ì§€ ë˜ìƒˆê¸°ë©° 나ë¼ë¥¼ 사랑하는 마ìŒì„ 다잡는 ì‹œê°„ì´ ë˜ê¸¸ 바란다.

ì´ë‹¤ì • | 가회민화박물관 ê°ì›ì—°êµ¬ì›


ë°±ì„ëŒ€í•™êµ ê¸°ë…êµë°•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ì›, 가회민화박물관 ê°ì›ì—°êµ¬ì›ì´ë‹¤.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ì´ˆë³¸ì— ëŒ€í•œ ì¹¼ëŸ¼ì„ ê¸°ê³ í•´ì˜¤ê³  있다.

ì €ìžì—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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