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구, 또 하나의 예술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실력 있는 작가들은 배첩장을 찾아가 논의하며 작품의 마무리 단계까지 고려하여 작품을 만들었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장황装潢’이란 우리말을 ‘표구表具’라 바꾸고 일본식으로 작업하면서 오늘날까지 표구의 품질은 물론 표구사는 단지 기술자라는 편견을 초래했다. 하지만 표구사들이 이에 아랑곳 않고 묵묵히 작업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표구 작업이 또 하나의 예술임을 인정해 줄 날이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명품名品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인데, 요즘에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유명 가방, 의류 뿐 아니라 건축물에도 ‘고품격 명품 아파트’라는 표현을 쓰는가하면, 농산물까지도 ‘명품 쌀, 명품 과일’이라 말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유독 표구만큼은 ‘명품’의 품목에서 제외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필자의 마음그릇이 작은 탓일까? 솔직히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으면 명품이 되는데, 우리나라 표구장인이 한 솔 한 솔 솔질하여 완성한 표구는 왜 싼 것, 비싼 것으로만 평가될 뿐 명품의 ‘격格’ 에 들지 못하는 것일까요?”라는 하소연이라도 해보고 싶다.

작품 ‘3’, 표구 ‘7’

표구 관련 자료를 보다보면 선대 예술인들은 작품을 ‘3’으로 보고 표구를 ‘7’로 보았다는 내용이 인용되는 것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조금 과장된 표현이라 하더라도 선대 예술인들이 표구를 대하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표구교본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의 장황지装潢志에는 표구의 중요성에 대해 적절한 비유를 든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일례로 ‘표구를 미인의 화장에 비유한 내용을 잠깐 보면, 아무리 타고난 미인일지라도 꾸미지 않고 122부스스하게 있으면 그 아름다움이 빛을 잃게 되지만 분을 살짝 바르고, 연지를 찍고, 고급스런 옷을 입으면 자연히 그 아름다움이 돋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표구사表具師의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그렇다면 작품에 있어 표구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비를 피하는 ‘집의 역할’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작품을 멋지게 꾸며주는 ‘인테리어적 기능’을 하는 것일까? 앞서 살펴본 선대 예술인들의 생각에 비추어보면 표구는 분명히 집의 개념을 넘어 인테리어적 역할을 하며,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어 진정한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예술’이기도 하다. 따라서, ‘표구장인’이라는 말도 ‘명품표구’란 말도 나올법한데 묘하게 피해간다.
그렇다고 표구사들이 “우리 좀 알아주세요!”하고 나서는 것도 아닌데 참 이상한 것은 작가들에게는 “왜 비싼 그림 그리세요? 싸게 그려 주세요”라 말하는 사람들은 없으면서도, 표구사에만 오면 표구사의 연륜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여긴 왜 이렇게 비싸죠? 저쪽 가게는 여기보다 훨씬 싸요, 싸게 해 주세요”라 주저 없이 ‘값’을 따지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마치 우리나라 헌법 조항 어딘가에 ‘대한민국의 모든 표구사에서는 표구 값을 싸게 받아야한다.’ 라고 명시 되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화가는 예술인, 표구사는 기술자?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수준 있는 작가일수록 실력 있는 배첩장褙貼匠을 찾아가 계속 상의하고 자신의 작품이 표구작품으로 제대로 완성될 수 있도록 노력 했는데,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인들이 장황装潢이란 우리말을 ‘표구表具’라 바꾸고 일본식으로 작업하면서 ‘표구’의 질도 ‘표구’에 대한 ‘인식’도 같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화가의 주가는 계속 상승하는 반면 화가와 거의 동격이었던 표구사들은 다 된 작품에 액자나 끼워주는 기술자로 전락해 오늘에 이르러서는 아예 예술의 아웃사이더(outsider)로 머물게 된 것이다.
비록 ‘명품’소리 한 번 못 듣는 그저 그런 ‘표구사 사장이나 표구사 아저씨’로 불린다 해도, 여전히 표구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표구가 작품의 완성이라 생각하는 일부 작가들의 격려가 있기에 필자는 오늘도 ’예술‘하러 나간다.

표구는 또 하나의 예술

필자는 믿는다. 표구는 분명히 또 하나의 예술이라고. 또한 만나야 할 인연이 돌고 돌아 다시 만나듯, 표구 역시 예술로 인정받던 시절의 ‘명성’을 되찾고 표구사表具師들도 좋은 작품을 완성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을 날이 꼭 올 것임을 믿는다.


글, 사진 김대호 (은호당표구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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