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와 민화 결합한 송광연 작가



하루하루 성실히 수놓는 삶이 곧 행복

송광연 작가의 작품에는 팝아트와 대치되는 모란과 나비 자수문양이 등장한다.
물질 만능주의를 빗댄 팝아트의 요소를 자수와 민화라는 키워드와 충돌시켜 ‘삶의 순리’를 말하기 위함이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송광연 작가 제공


현기증이 날 만큼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사회, 각종 미디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쏟아내는 콘텐츠들…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자본의 산물이다. ‘효율’을 앞세워 짧은 시간 안에 뚝딱 만들어낸 휘황찬란한 상품 앞에서 무수한 시간 동안 손으로 빚어낸 결과물, 혹은 그러한 삶의 방식은 고루하게 여겨지기 일쑤. 그래서, 우린 행복한가? 나날이 빛을 더하는 도시의 풍경 뒤로 온갖 부정과 범죄, 환경 문제 등의 그림자 역시 짙어져만 간다. 이러한 세태에 맞서 송광연 작가는 주장한다. 결국 손(사람)이 기계를 이기리라고.
“늘 매스컴에서 다루는 사기, 전쟁, 환경 등의 사회문제는 모두 인간의 욕심이 과한 데서 비롯된 것 같아요. 첨단 산업이나 막강한 정보력으로 단시간에 부를 얻는 사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보니 하루하루 성실히 노력하는 삶은 소외되기도 하고요.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일수록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봐요. 요행 바라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 삶이요.”

<나비의 꿈>, 2010, 130×130㎝, 캔버스에 아크릴

수놓듯 하루하루 성실히 채워가길

송광연 작가는 그 순수한 노동의 시간을 ‘자수’로 빗대었다. 한 땀 한 땀을 촘촘히 꿰매어 만든 자수처럼 우리 역시 매 순간을 정직한 노력으로 채워가야 한다는 것. 흥미로운 점은 작품에 나오는 나비, 모란 등 자수 도상이 사실은 붓으로 그려 만든 선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얇은 평붓에 아크릴 물감을 비롯한 혼합재료를 묻힌 뒤 캔버스에 톡톡 찍은 뒤 물감이 마르고 나면 다시 같은 방법으로 찍길 여러 번, 자수와도 같은 질감을 표현했다. 자수 못지않게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렇다면, 자수 도상인 모란과 나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잘 알려진 것처럼 모란과 같은 민화가 상징하는 바가 결국 ‘행복’이잖아요. 자연의 순리대로 정직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 값진 생을 행복으로 채워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나비는 사람을 의인화한 것이고요. 모란 자수문은 대개 미완성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살아가는 동안 성실히 채워가야 할 시간을 뜻하죠.”
자수 도상과 대조적으로 바탕에는 앤디워홀, 리히텐슈타인 등의 팝아트를 넣어 대량생산, 기계 문명을 상징하는 판화 기법의 작품을 차용했다. 이 역시 얼핏 보면 판화 같지만 ‘손으로’ 그린 그림이다. 팝아트에 내재된 인간성 상실, 병폐화된 사회 등에 대한 이야기를 회화적 기법으로, 동서양의 문화를 나란히 배치해 상호 이미지를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그만의 메시지를 부각했다.

(왼쪽) <나비의 꿈>, 2021, 162.2×97㎝, 캔버스에 아크릴
(오른쪽) <나비의 꿈>, 2020, 116.8×91cm , 캔버스에 아크릴

20년 늦은 출발이지만

송광연 작가는 40대가 되어서야 미술학도로 입문, 영남대학교에서 서양화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남들보다 20여년 늦게 미술 대학에 들어갔지만 어릴 때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 미술 대회에서 곧잘 상을 받아올 만큼 실력이 뛰어난 데다 그림을 좋아해 누군가 장래희망을 물어볼 때면 서슴없이 ‘화가’라 답했다고. 하지만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활 전선에 하루빨리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에선 그 꿈을 당장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은행원으로 일하다 결혼한 뒤 취미로 공예도 배워보았지만 늘 체한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는 그. “이렇게 살다 죽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미술학부에 입학하기로 결심한다. 2008년 졸업전을 하며 <나비의 꿈>을 처음으로 발표했으며 현재까지 그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초반에는 모란도와 꽃만을 사용해 작업하다 점차 나비, 팝아트, 현대인의 초상, 전통그림 등을 더하며 변화를 모색해왔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민화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현대인들의 물질만능주의를 주제로 비구상 작품을 제작했어요. 그런데 작품이 전반적으로 경직된 분위기라 조금 더 친근하게 풀어낼 필요가 있겠다 싶었지요. 가슴 속엔 언제나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터라 전통적인 걸 찾던 중 민화책을 발견했어요. ‘와, 조선시대에도 이런 현대적인 그림이 있구나.’ 놀랍더군요. 민화가 지닌 염원의 의미도 와 닿았고요. 솔직히 민화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그림이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 볼수록 매력적이에요.”

(왼쪽) <나비의 꿈>, 2010, 80×80㎝, 캔버스에 아크릴
(오른쪽) <나비의 꿈>, 2019, 130×130㎝, 캔버스에 아크릴
웃고 있는 해골은 행복한 죽음을 상징한다. 그 주위에 그려진 모란문은 모두 ‘완성’된 형태다.

인생이란, 한 땀 한 땀 채워가는 여정

송광연 작가는 지난 7월 갤러리이즈에서 개인전을 성료한 데 이어 오는 12월 공평아트 소속으로 서울아트쇼에 참여해 6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외에서 총 14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주워싱턴 한국문화원이 기획한 2인 초대전 , 주상하이 한국문화원이 주최한 한중3인전 <온고지신>,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이 주최한 를 비롯해 6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팝아트가 녹아든 그의 작품은 특히 미국에서 반응이 뜨거웠다는 후문이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늦깎이 미술학도에서 출발하여 그만의 모란을 피워낸 송광연 작가. 붓으로 한 올 한 올 수놓아 완성한 그림은 끝내 꿈을 놓지 않고 나아간 그의 발자국이자 조급해하는 현대인을 일깨우는 충고일 터. 작품 속 모란을 완성해 가는 나비처럼, 묵묵히 하루하루를 채워가다 보면 종래 알게 될 것이다. 노력하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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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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