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쿱의 차 이야기 ㉗ 차와 술의 썰전

손려화孙丽华 죽단호竹段壶, 백거이 시구가 도각陶刻되어 있다.



당나라 시기에 쓰인 문헌 중 “술은 망우군忘優君이고 차는 척번자滌煩子”라 비유한 구절이 있다.
근심을 잊게 하는 데 술이 최고이고, 번뇌를 씻어주는 데는 차가 제일이었던 셈이다. 술을 마시는 일은 세상을 공격하는 일로 이어지고 차를 음미하는 일은 세계의 이치를 논하는 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글 서해진 (한국차문화협동조합 이사) 사진 티쿱스토어


긴급조치 속에서도 세상은 돌아가야 하기에 사람들은 틈 사이를 따라 움직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액션 스릴러물 이상의 긴장감을 요구한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서 오는 긴장감도 있고, 일거수일투족을 빅브라더에게 보고하는 생활의 긴장감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이미 사회적으로 ‘코로나-블루’라는 심리적 불안감이 유행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생명에게 적정한 긴장은 내성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면 굳어지게 된다. 어떻게든 긴장이 나를 묶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무엇으로 어떻게 풀어줄까! 이때 술을 찾을 수 있다. 난세 속에 살아가던 문인아사의 시편詩篇에는 술이 자주 등장한다. 술은 나를 취하게 하여 나를 잊게 만든다. 차도 등장한다. 차는 술처럼 나를 취하게 하지만 방향은 다르다.
당나라 시기에 쓰인 문헌 중에 술과 차를 마치 연극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으로 비교해 설명한 글이 있다. 그 중 “술은 망우군忘優君이고 차는 척번자滌煩子”라 비유한 구절이 있다. 근심을 잊게 하는 데 술이 최고이고, 번뇌를 씻어주는 데는 차가 제일이었던 셈이다. 술을 마시는 일은 세상을 공격하는 일로 이어지고 차를 음미하는 일은 세계의 이치를 논하는 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취한다’는 의미가 나를 열어 너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라 하니 술을 통해 취하는 것과 차를 통해 취하는 것은 뜻은 같아도 지향하는 바는 다른 셈이다. 차는 내 몸의 입출을 조절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물과 불의 조화를 통해 냉랭한 찻잎은 온온한 성질의 차로 변했다. 인체가 조화를 상실할 때 내부에 냉기가 들었다고 말한다. 냉기冷氣는 단지 차가운 것을 말하지 않고 내 몸의 균형이 깨져 굳어진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상태를 온기溫氣라 한다. 차의 역할은 온기를 복 돋는 것이 기본이다. 차는 내 몸을 따뜻하게 하여 ‘너’를 받아들이게 한다.
술도 물이니 차와 같은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술의 물은 우리 몸에 들어오면 불의 작용을 했다. 그래서 적정한 술은 우리 몸에 들어와 몸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술은 내 몸속을 순행하며 나를 열어 ‘너’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불이 타오르듯 내 심신을 태울 수 있다. 차와 술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그에 따라 차는 채움과 비움으로 그의 이름을 붙였고, 술은 수레와 수리와 같은 의미로 그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니 이 둘의 공덕을 비교하여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가 사물을 대하고 세상에 대한 마음의 방향에 따라 술을 마실 수 있고 차를 마실 수 있다. 주례酒禮와 차례茶禮라는 말을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차 한 잔 권하고 싶은 마음

차사茶事에 종사하다 보면 차도구를 기본적으로 다룬다. 차도구 가운데 으뜸이라면 이싱[宜興]의 자사차호紫砂茶壺이다. 자사차호는 오래전부터 차를 즐기던 문인아사들의 애장품이었다. 특히 문인들이 직접 설계하기도 했고, 차호를 화폭으로 삼아 직접 글을 새기기도 했다. 차를 즐겨 마시던 문인들의 세계관 대부분은 양생養生과 수도修道를 지향하던 분위기가 짙었다. 문인들은 차를 통해 심신을 조절했고, 도자기를 매개체로 활용했었다.
현재 많은 자사차호를 제작하는 작가들은 도각가들과 합작으로 작품을 만들곤 한다. 과거 문인들이 다루었던 차 관련 시서화를 자사차호에 즐겨 새긴다. 이를 통해 도자기를 또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키곤 한다.
7월 어느 날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시구, <산천전차유회山泉煎茶有怀>가 새겨진 자사차호를 소개받았다.

“좌작령령수坐酌泠泠水 간전슬슬진看煎瑟瑟尘.
무유지일완无由持一碗 기여애차인寄与爱茶人.”

백거이 시구가 새겨진 자사차호로 차를 마시며 그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가 남긴 시 가운데 술을 소재로 한 것이 무려 9백여 수라 한다. 그래도 성성한 마음에는 차茶만한 게 없었다. 유학의 이상주의가 관료주의에 꺾이고, 그는 자기 수양과 사회 비판으로 삶을 이어갔다. 유학자였음에도 불문佛門으로 들어서기도 했다. 차를 나누는 자리에서 어느 분은 백거이 시를 풀어 읊기도 했다.

“허리 구부려 시원한 물방울을 길어 와선,
끓이면서 비취색 거품의 노래를 지켜보다가,
그냥 한 사발 부어 들고, 차벗에게 쑥 내밀었다.”

정해진 변화라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기후 변화도 바이러스 상황도 어디서 비롯했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그 인과에 대해서 알고 있다. 다만 그에 대한 대응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내 뜻대로 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내 몸은 이미 관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생각을 돌아가려는데 몸은 불나방처럼 화려한 불빛을 쫓아간다. 우리의 소비 패턴을 쉽게 전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차 한 잔 권하고 싶을 뿐이다.


서해진 | 한국차문화협동조합 이사

한국차문화협동조합 이사, 한국문화정품관 갤러리 대표,
중국 이싱한중도자문화교류센터 대표 등을 맡고, 차 관련 사업과
활동으로 생활 속 차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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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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