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적인 호랑이와 성상 만드는 석조각가 오채현

화강석으로 태어난 우리네 익살과 해학

오채현 작가는 30년 이상을 화강암 석조각에 매진하며 민화 속 호랑이와 불상 등을 그만의 개성으로 표현해왔다. 특히 그의 성상은 민중적인 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재 바티칸과 조계사 등에 안치되어 있다. 유례없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여름날, 아찔한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어루만지듯 조각을 다듬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의 작업실은 파주시 외곽에 있는 어느 석재공장에 있었다. 마당에는 화강암 판석더미가 산적해있었고, 군데군데 파인 웅덩이는 가라앉은 돌가루 때문에 회백색을 띄고 있었다. 더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천막이 얼기설기 쳐진 좁은 작업실이 나왔다. 이곳에서 오채현 작가는 오는 9월 초에 열리는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출품작을 조수와 함께 마무리하고 있었다. 기록적인 폭염 탓에 후덥지근한 열기가 천막을 맴돌아 땀이 비 오듯 줄줄 흘렀고, 연삭기의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풀풀 날리는 뿌연 돌가루가 숨을 쉴 때마다 코와 입으로 들어와 기침이 절로 났다.

“화강암 조각 작업은 완전히 노가다에요. 진폐증은 물론이고 연삭기 진동 때문에 온몸이 아픕니다. 소음이 심해서 실내는 물론, 도시나 마을에 작업실을 만들지도 못해요. 가끔은 회화 작가들이 부럽습니다.(웃음)”

민화 속 호랑이, 조각으로 재탄생하다

오채현 작가는 화강암 자연석을 이용해 질박하면서도 푸근한 호랑이와 불상 등을 조각하는 한국의 대표 중견 석조각가로 국내를 비롯해 뉴욕, 런던 등에서 30여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개최한 경력이 있다. 〈해피 타이거(Happy Tiger)〉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민화의 대표적 도상인 호랑이를 주요 소재로 이용한 연작으로, 화강석의 투박한 질감을 살린 것은 물론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깃든 해학적 이미지와 민화 속 호랑이의 조형원리가 그대로 살아있어 관람자가 덩달아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서울광장, 마로니에 공원, 정동진 조각공원 등 많은 곳에 전시돼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지난 2월에는 평창올림픽 기념으로 평창 월정사에 전시됐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올림픽 기간 동안 각국 정상과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월정사를 방문,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한국의 미의식에 감탄했다고 한다.
“호랑이에는 우리 민족의 해학적 정수가 그대로 응축되어있어요. 위용은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설화 속에는 토끼나 곶감한테도 질 만큼 친숙한 존재로 나오니까요. 특히 궁중화가 아닌 순수 민화 속 호랑이에는 현대작가 못지 않은 파격이나 과장도 그대로 살아있고요.”

바티칸과 조계사에 안치된 성상

오채현 작가가 조각한 성상은 여느 신의 모습처럼 만민을 구원하겠다는 자애로운 미소를 보이기보다는 저잣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처럼 토속적인 풍모로 해맑게 웃고 있다. 종교모독이라는 일부의 비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성聖과 속俗의 변증에서 오래전부터 정형화된 신의 형상을 변형한다고 보는 게 더 적합하다. 즉, ‘신이 대한민국에 현현顯現한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예술가적 상상력을 발휘,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빌려 신을 형상화해 신은 늘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교의에 걸맞는 신성함을 획득하는 것이다. 덕분에 그의 성상은 성직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가 조각한 불상은 현재 조계사에 안치돼있고, 성모상은 바티칸 한국대사관에 안치됐다. 성모상은 조선 후기 평범한 시골 여인의 모습처럼 치마저고리를 입고, 젖가슴을 훤히 내놓으며, 아이를 업은 채로 물동이를 지고 있다. 대개는 한국적 성모신심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젖가슴이 노출되었다는 점 때문에 일각에서 신성모독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도 받아 종교재판에 회부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부처님이 지금 한국에 온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구수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교감할거라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몸과 마음이 매우 지쳐있거든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에요.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서민의 아들이죠. 만약 성모마리아가 조선 후기 우리나라에 왔다면 당시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가슴을 내놓는 것은 종교모독이 아니라 오히려 젖먹이 아들인 예수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로서의 자랑스러움을 드러내는 의미입니다.”
또한 2012년에는 뉴욕 에이블 파인아트 갤러리(Able Fine Art NY Gallery)에서 ‘성性과 성聖(Saint & Sex)’이라는 주제로 간다라 풍의 불상과 음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여인상을 선보이며 밀교적 탄트라, 즉 성性 통한 성聖을 탐구했다.
“전시를 통해 여성의 성性적 아름다움과 생명을 탄생시키는 성聖스러운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려 했습니다. 성은 먹고 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욕망인데, 우리는 너무 부끄러워하고 있어요.”

돌을 존중하며, 돌과 교감하다

이처럼 개성과 철학이 어린 작품세계를 보여주지만, 그는 작품에 특별히 무엇을 담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저 살아오면서 몸 안에 쌓인 경험이 영감이 되어 자연스럽게 툭 튀어나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즉, 경주에서 태어나 황룡사 터와 남산을 놀이터 삼아 뛰놀며 온 몸으로 체득한 천년의 영감이 마치 꽃봉오리처럼 때가 되어 발화發花했다는 것이다.
“무엇을 만들어야겠다고 억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쌓아둔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입니다. 예를 들면 석굴암의 비례, 옷 주름, 표정 등 그 모든 것을 마음속에 넣어두고, 그게 쌓이다보면 작품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거죠.”
내면 깊이 축적된 영감이라 해도 계기 없이 문득 튀어나오지는 않을 터. 그래서 그는 작업 전에 화강암 원석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없이 깊은 대화를 나눈다.
“원석의 결이나 형태 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조각이 될 수 있을지 이미지가 그려져요. 그 모습을 참고해 밑그림을 그리는 거죠. 원석이 품고 있는 이미 지를 찾아내는 일에 가깝다고 할까요.”
밑그림을 그린 후에 연삭기로 기초적인 작업을 하지만, 이윽고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채현 작가는 작품을 한참동안 내버려두며 영감을 검증하는 이른바 ‘양생養生’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영감을 다시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처음 떠오른 영감에 의존해서 한 작품만 오래 붙들고 있으면 결국 감각이 둔해지고, 손만 놀게 됩니다. 때문에 어떤 작품은 5년 이상 걸립니다.”
포착하고, 밑그림을 그리고, 내버려두고, 다시 포착하고… 이 과정을 한참 반복하면서 조각은 조금씩 완성된다. 이때 그는 순리順利를 좇으며 부드럽게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돌을 강함으로 제압하려고 하면 오히려 반동이 와서 크게 다칩니다. 토닥토닥 아이 쓰다듬듯이 재료를 존중하면서 부드럽게 작업해야 돼요.”

구도자의 자세로 정진하다

그에게 조각 작업이란 몸 안에 깃든 것을 자연스럽게 발휘하는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자신이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구도자求道者들이 수행하듯 게으르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며 평소에 영감을 쌓아둬야 때가 찼을 때 발휘된다고.
“내면을 채우는 꾸준한 수행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80년대부터 박물관을 드나들며 민화 스케치를 했고, 최근에는 예술의전당과 현대화랑을 방문해 스케치를 했습니다. 한때는 유치원을 무작정 찾아가서 아이들 그림을 스케치 한 적도 있어요.(웃음) 앞으로 제 작품이 더 단순해질 수도 있고, 더 복잡해질 수도 있지만… 그저 나태하지 않고 지금처럼 수행하며 조각 작업에서 연애 같은 설렘을 느끼는 작가가 되려고 해요.(웃음)”
그 누가 미래를 알 수 있을까마는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과거니,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오랜 시간을 조각에 묵묵히 매진한 그의 과거가 현재를 외면하지 않았듯 미래도 그러하리라. 그러니 앞으로의 그의 작품이 어떤 형태라도 분명 있는 그대로의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리라. 그의 조각상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이 지금 그러하듯이.


글 김태호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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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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