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맞아 대규모 고희전 여는 원로 작가 예범 박수학



현대 인사동에 환생한 조선시대의 화원

오늘날의 민화화단을 있게 한 대표적인 원로작가의 하나인 예범 박수학 작가가 올해 고희를 맞아 제자들과 함께 이를 기념하는 대규모 사제전을 열었다. 그의 감회어린 술회처럼 오직 그림이 좋아 평생 그림 하나만을 붙들고 살아온 그의 치열하면서도 단순한 반세기 그림 인생을 결산하는 이 전시회는 신년벽두의 민화계에 큰 울림을 줄만한 화두로 가득 차 있다.
글 유정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대가의 칠순 언덕

예범 박수학 화백은 현대 민화화단에서 ‘대가大家’ 혹은 ‘거목巨木’과 같은 감당키 힘든 수식어를 붙여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반세기를 넘어선 기나긴 화력畵歷, 정통 수묵산수에서 세밀하고 화려한 진채 풍의 궁중장식화, 창의적이고 세련된 자신만의 독특한 민화세계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출중한 필력은 그렇듯 묵직한 수식어가 조금도 과하지 않다는 확신을 준다.
올해 길고도 유장했던 그의 그림 인생은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옛 사람이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노래했던 바로 그 ‘고희古稀’의 언덕에 올라선 것이다. 사실 ‘백세시대’라는 말이 조금도 낯설지 않은 요즘, 나이 칠십은 그리 대단하게 기념할 만한 연대가 아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희의 언덕을 사뭇 숨차게 올라선 듯한 예범의 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덤덤하지도 않은 것 같다.
“보은 촌에서 그림을 배우겠다고 서울로 올라와 스승 파인 선생의 문하에 들어간 것이 나이 18-19세 때였으니까, 나의 그림 나이도 50년 반세기를 넘긴 셈이지. 젊었을 때 방황도 좀 했지만, 그래도 그림 하나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 열심히 그렸어. 이젠 그동안 내가 그린 그림도 되돌아보고, 걸어 온 세월을 정리도 할 때가 된 것 같아.”
1월 27일부터 서울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 전관에서 ‘궁중장식화의 맥을 잇는 화원들’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그의 고희기념전은 바로 이렇게 그의 반세기 그림 인생을 중간 결산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한다는 의미를 지닌 뜻깊은 전시회이다.
제자들이 함께하는 사제전師弟展 형식으로 치러지는 이 전시회에는 그의 최근작 30여점과 63명의 제자들이 한 점씩 출품한 작품들에 초대작가로 초청된 이정동, 금광복, 이문성, 오영순, 서민자 등 쟁쟁한 중진작가의 대표작들이 가세, 현대 민화화단의 단면을 잘라 보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예범은 이 전시회에 대단한 의욕을 가지고 1년 여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왔으나 지난 해 가을, 오픈을 목전에 두고 뜻하지 않은 뇌경색으로 쓰러져 민화계 전체를 놀라움과 안타까움에 휩싸이게 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염려와 기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기적적으로 병상에서 일어나 아직 완전치 못한 몸으로나마 이 기념비적인 전시회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전시회를 꼭 한 주일 앞두고 인사동 그의 화실에서 마주한 예범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지기는 했으나 오랜만에 담담하고 여유로운 미소마저 흐르는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노심초사 매달려온 필생의 이벤트를 치를 모든 준비를 마침내 마쳤다는 안도감의 표현일 터였다.
“이젠 준비가 다 끝났어. 무슨 말을 듣든지 내 할 일은 다 끝난 거야. 나는 아무리 사력을 다해 그린 그림이라 해도 다 그리고 난 뒤에는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어. 화가의 손을 떠난 그림은 다 보는 사람의 것이거든. 이제 내 그림은 없으니까 아주 홀가분해.”

‘법고창신’의 진수와 만나는 뜻깊은 전시회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예범의 그림은 거의 모두 전시회를 앞두고 그린 최근작으로 반세기의 연륜으로 쌓아올린 그의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완성도 높은 대작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소위 모사화模寫畵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흉중산수와 궁중장식화, 의궤 및 진찬도, 무르익은 필력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낸 자신만의 독특한 채색산수화, 그리고 요즘 젊은 작가들의 감성을 무색하게 할 만큼 모던한 창작민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환상적인 필력은 장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든다.
모사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은 조선 정조 연간에 활동했던 뛰어난 도화서 화원인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의 필생의 걸작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이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제목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장엄한 산수와 그 속에 스며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8m가 넘는 긴 화폭에 파노라마처럼 펼쳐낸 대작으로 한국 회화사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걸작이다. 예범은 당대 최고의 도화서 화원이 능숙한 필치로 사력을 다해 완성한 걸작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더욱이 원작의 사이즈는 가로 8.5m 정도이나 예범은 이를 원작보다 훨씬 큰 가로 13.4m의 초대작으로 완성시켰다. 당대 최고의 도화서 화원을 능가하는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 고졸古拙한 수준으로 그려진 원작을 화려한 컬러와 박진감 넘치는 필력으로 완성도 높게 재현해 낸 <강화행렬도>, 근현대기 최고의 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 이당 김은호의 걸작 고사인물도를 그대로 재현해 낸 <군선도> 등도 경지에 이른 모사模寫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게 보아야 할 작품군은 전통 수묵산수화와는 전혀 다른 감각과 필력으로 완성해 낸 일련의 실경산수화 시리즈이다. 꿈결인양 몽환적이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실경에 가상의 인물인 선녀仙女를 등장시켜 ‘선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시리즈는 담채와도 다르고 진채와도 다른 예범 특유의 채색 기법과 그가 지향하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향수를 담고 있는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설악산, 속초 바닷가, 도담삼봉 등 실제로 존재하는 실경實景에 가상의 세계인 선계仙界의 인물을 매치시킨 발상이 다소 엉뚱하면서도 실제와 가상을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그의 자유로운 영혼의 흔적이 보는 이를 감동시킨다.
마지막 또 하나의 그룹은 이른바 창작민화라고 부를 수 있는 단락이다. 전통 화조화와 인물화 기법을 응용, 그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을 화려하게 그려낸 ‘꽃배’ 시리즈와 나비가 깃든 장미꽃의 모습을 세련된 컬러의 조합과 세밀한 바림기법으로 환상적으로 그려낸 ‘장미와 나비’시리즈는 이른바 ‘창작민화’를 지향하는 요즘 작가들이 반드시 참고할 만한 작품들이다.

궁중장식화의 전수에 심혈을 기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박수학 작가가 가장 공들여 해 온 일은 민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궁중장식화’를 제대로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이었다. 지난 2015년 국내 최초로 궁중장식화 숙련기술전수자로 지정된 이후, 궁중장식화아카데미를 설립해 수많은 제자를 양성해 냈다.
실기뿐 아니라 이론 수업도 대폭 강화, 윤열수, 윤진영, 정병모, 박본수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이론가들을 초빙, 수준 높은 강좌를 진행했다. 실기의 경우, 예범은 이미 경지에 이른 자신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론서들을 섭렵 독파해 가며 완벽한 전수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손수 만든 믿을 수 없을 만큼 꼼꼼하고 방대한 분량의 교안을 살펴보다 보면, 많은 이들의 편견과는 달리 그가 얼마나 세심한 연구자의 면모를 지녔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의 출중한 기량은 송규태 화백과 같은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배운 솜씨를 열심히 갈고 닦은 덕택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처럼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섭렵해가며 치열하게 연구하고 정진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그의 화실과 괴산 본가에는 <개자원화전>, <선화화보>와 같은 조선시대의 미술교과서는 물론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한 서적과 스스로 메모하고 정리한 자료, 그리고 틈만 나면 손수 만든 엄청난 초본들로 차고 넘친다. 실제로 평생 모은 그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정리하는 일도 노년에 접어든 그가 해내야 할 큰 숙제 중의 하나이다.
그가 궁중장식화의 전수에 그토록 열심이었던 까닭은 그것이 숙련기술전수자의 당연한 임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승 송규태에서 자신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모사와 재현의 기능, 이를테면 조선시대 화원의 맥을 온전하게 계승시키고 싶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이 일에 심혈을 기울여 온 결과 이제는 이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고 그는 이 임무를 좋은 제자나 후배들에게 넘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영적인 그림’으로 향할 후기 작품 세계

그렇다면 고희전 이후 그가 그리고 싶은 그림,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은 어떤 것일까?
“그림만 그리며 살았으니까 그림은 죽을 때까지 그려야지. 그런데 이제는 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어. 가장 그리고 싶은 것은 ‘영靈적인’ 그림이야. 우리 눈에 보이고 뚜렷하게 거기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무엇, 그걸 그리고 싶어. 이게 내 후기 작품세계를 이루는 그림이 될 거야.”
도대체 그게 어떤 그림인가를 묻고 싶은 마음을 이미 짐작했다는 듯 불쑥 책 한 권을 내민다. «한국무속도록». 무속巫俗에 관한 책이다. 민화의 선구자 조자용이 눈에 보이는 사물을 넘어 민족의 마음 속에만 살아있는 도깨비와 삼신三神의 세계에 이르렀듯이 예범의 작품 세계도 현실을 넘어 피안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 하나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어. 겸재 같은 분이 그리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명승지를 제대로 그린 그림이 드물어. 수묵 산수화가 아니라 민화적 기법으로 그린 나만의 산수화를 많이 그리고 싶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자유롭게 산수를 유람하며 그런 그림을 그렸으면 해.”
이것은 무엇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그림일 것이다. 아마도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인 작품 중 ‘선녀’ 시리즈가 그런 바람의 단면을 담은 그림으로 보이는데, 그 그림에서 산하를 훨훨 날아다니는 선녀가 바로 그렇게 살고 싶은 예범의 영혼을 상징하는 아이콘일 것이다.
뛰어난 작품도 작품이지만, 예범 박수학이 우리 민화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한마디로 오늘날의 민화계를 있게 한 가장 큰 공로자의 하나라는 사실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초창기 민화화단을 구축한 인적자원의 주요 산실이었던 이른바 ‘공방시대’를 이끈 주역의 하나로서 이 공방시스템을 통해 얼마 후 자신과 함께 민화화단의 초창기를 주도하게 되는 김상철, 이정동, 이문성 등 굵직한 작가들을 배출해 문자 그대로 한국민화화단의 초석을 닦는 데 크게 기여했는가 하면 반세기에 이르는 긴 작가생활 동안 8회의 개인전을 포함, 수백회에 이르는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열성적인 교육을 통해 수많은 우수한 제자들을 키워내 민화화단의 질적 양적 성장을 앞장서 견인해 왔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무구한 심성에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는 암만해도 현대의 인사동에 환생한 조선시대의 화원이 아닐까 싶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