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옹도醉翁圖 – 인생의 좌절을 음주로 풀어내고 시로 승화시키다

취옹도醉翁圖
인생의 좌절을 음주로 풀어내고 시로 승화시키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701-762), 그는 수많은 주옥같은 시를 지어 시선詩仙으로 흠앙되었던 인물이다. 호방하고 자유로운 성격과 기행奇行으로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하였는데, 그러한 면이 더욱 사람들의 호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이에 따라 시선詩仙 외에도 그에게는 많은 별칭이 주어졌는데 적선謫仙, 주선酒仙, 광사狂士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선’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이백은 술을 유난히 즐겼던 시인이다. 시인 이백의 술에 얽힌 고사를 담은 그림을 보기로 하자.

인생의 좌절 술로 달래다

당대에 이미 천재 소리를 들었고, 당나라 황제 현종의 인정을 받았던 시인으로서 이백의 인생에 무슨 좌절이 있었을까 혹시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백에게는 정치적 야망이 있었다. 고향을 떠나 풍운의 뜻을 품고 장안에 왔을 때 그의 꿈은 경세經世의 포부와 입신양명의 유교적 가치 실현이었다. 그의 꿈은 이루어지는 듯했다. 하지장賀知章(659-744)의 추천으로 당 현종에게 천거되었던 것이다. 현종은 조서를 내리고 친히 금마문에 나아가 손수 수레에서 내려 이백을 맞이했는데 마치 한漢나라 고조가 상산사호商山四皓의 기리계綺里季를 영접하듯 했다고 한다. 칠보로 장식된 상에 먹을 것을 하사하고, 황제가 손수 국 맛을 본 후에 먹게 했다.(李陽氷,「草堂集序」,『李太白文集』권1)
하지만 현종의 곁에서 이백은 끝내 한낱 궁정 시인에 머물렀다. 세상을 향한 원대한 포부는 실현되지 못하였고 기회를 얻지 못한 울분과 좌절을 그는 음주를 통해 풀었다. 그리하여 이백은 음주팔선飮酒八仙 중에서도 가장 인사불성인 주객酒客으로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이백과 친교를 맺었던 또 한 사람의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음중팔선가中八仙歌」라는 시에서 이백을 “주중酒中의 신선”이라 칭하고,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다.

李白一斗詩百篇 이백은 한 말 술에 시 백편을 짓고는
長安市上酒家眠 장안의 시장 술집에서 잠자며
天子呼來不上船 천자가 불러서 왔지만 배에 오르지 않고
自稱臣是酒中仙 신(臣)은 주중의 신선이라 자칭하네

술에 취한 이백을 고력사가 부축하다

이백이 늘 술을 마시고 취해있으니 이에 관련된 일화가 여럿 전한다. 어느 날 현종이 궁녀들과 뱃놀이를 하는데 이백이 자리에 없었다. 황제가 그에게 서문을 짓게 하고자 불렀는데, 이백은 한림원에서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였다. 이에 현종은 환관 고력사高力士(684-762)에게 명하여 그를 부축해서 배에 오르도록 하였다는 일화이다. 고력사는 현종 때의 환관으로서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막강한 권세를 부리던 인물이다. 천하의 고력사 입장에서 이백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현종이 악부의 새로운 가사를 짓게 하고자 이백을 불렀으나 이백이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있는지라 물로 얼굴을 씻겨 데리고 갔다고 하고, 또 한 번은 이백이 취한 채 현종 앞에 불려나갔는데 발을 들어 고력사에게 신발을 벗기게 하니 고력사가 치욕스럽게 여겼다는 일화가 전한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백을 두 인물이 부축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개인소장의《고사도 8폭 병풍》(도 1) 중에 있다. 이 그림은 조선후기 화원 이한철李漢喆(1808-?)의 작품이다. 당대 최고 수준의 화원의 솜씨라 능숙한 필치와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림 속의 이백은 관복을 차려입고 있는데 이는 현종의 부름으로 한림학사를 지내던 그의 이력 때문이다. 두 명의 환관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려하고 있다. 화면의 윗부분에 제화시가 적혀있는데, 앞에서도 소개했던 두보의「음중팔선가」중의 한 부분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찰의 벽화에 그려진 고사인물도 중에도 이백이 술 취해 부축 받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는 점이다. 고흥 금탑사 극락전 벽화 중의 <고사인물도>(도 3)이다. 그림에서 술에 취한 인물은 옷을 풀어헤치고 인사불성이 되어 있다. 두 사람이 부축해 일으키려 애쓰는 모습이 그려졌다.

시에 술을 싣고, 술에 시를 담다

음주시는 즉흥적이고 현장성이 생생한 시 장르이다. 시인의 뛰어난 재능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그 시詩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세월을 이겨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이백에게 있어 술은 단순히 세상사에서 도피하거나 시름을 잠시 잊기 위한 수단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음주의 행위를 문학 행위로 승화시켜 주옥같은 명작을 많이 남겼다. 이백은「장진주將進酒」라는 시에서 “하루에 삼백 잔을 평생 매일 마신다(會須一飮三百杯)”고 호언하였다. 취기가 오르면 밤하늘의 달이 그에게는 가장 좋은 술친구였다. 술잔을 높이 들어 달을 맞이하면 술잔 속에도 달이 뜨고, 술잔에 뜬 달을 마시면 시인과 달이 하나가 되었다.

擧杯邀明月 잔 들어 밝은 달 부르고
對影成三人 그림자 마주하니 세 사람 되었네
月旣不解飮 달은 술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그림자만 나를 따라 다니네
(「月下獨酌 1」)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 술을 마시는 이백의 풍류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구절이라 여겨진다. 민화에서는 이백의 풍류를 담은 작품이 종종 눈에 띈다. 전주역사박물관의《고사인물도 병풍》중의 <이백시의도李白詩意圖>(도 4)는 이백의「산 속에서 은자와 술 마시다(山中與幽人對酌)」라는 시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兩人對酌山花開 마주 앉아 술 권하니 산꽃도 피네
一盃一盃復一盃 한잔 들게 한잔 들어 또 한 잔 하게나
我醉欲眠卿且去 난 취하여 자려하니 자네도 그만 가게
明朝有意抱琴來 생각나면 내일 아침 거문고 안고 다시 오게나

깊은 산 속에 자리를 깔고 앉아 커다란 술항아리를 사이에 두고 두 인물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모습이다. 그들의 앞에는 거문고가 자리하고 있다. 계절은 봄인지라 산꽃이 활짝 피었는데, 화면의 앞부분에 풍성한 꽃이 크게 그려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이백시의도詩意圖>(도 5)는 시화도 6폭 병풍 중의 한 폭이다. 이 병풍에서 각 화폭에는 그림이 왼편에 그려지고 제화시가 크게 오른 편에 쓰였다. 이 화폭에 쓰인 시는 이백의 ‘스스로 마음을 달래다’는 뜻의「자견自遣」이라는 시이다.

對酒不覺瞑 술잔 기울이며 해 지는 줄 모르는데
落花盈我衣 떨어진 꽃잎 옷자락에 가득하네
醉起步溪月 취하여 냇가의 달빛에 거니노라니
鳥還人跡稀 새 돌아가고 인적도 드무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시니 무아지경이었던가. 시인은 해 지는 줄도, 꽃잎이 떨어져 옷자락에 가득한 지도 모르고 있었다. 일어나 달빛 아래 냇가를 걸으니 호젓한 저녁의 봄기운이 감성을 울렸던 듯하다. 서정 어린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폭 속의 이백은 갓을 쓴 조선 선비의 모습인데 소맷자락에 꽃잎이 알알이 박혀 있고, 몇 송이 꽃이며 꽃잎이 또 떨어져 내리고 있다. 구불구불 흐르는 냇물과 기하학적으로 형상화된 산능선, 울긋불긋 화려한 봄꽃이 어우러져 선계仙界와도 같은 환상적 공간을 이루어내고 있다. 낮게 걸린 달이 이백을 동행하고 있는 듯하다.

인생의 좌절과 방황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낭만시인

인생의 좌절을 경험하고 끊임없는 방황 속에 꽃피운 작품이기에 이백의 시는 더욱 강한 생명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세상사가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속박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정신과 세속의 가치를 거부하는 개성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시인이었기에 그의 일탈과 낭만적 풍류를 많은 이들이 동경하고 공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백을 주제로 한 민화가 꾸준히 그려졌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글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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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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