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와 화합, 해탈을 의미했던 길상의 그림 – 어해도

물고기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림 속에서 입신출세와 청렴함, 부부의 금슬과 해탈의 경지 등을 의미했던 물고기는 길상의 의미로 쓰이며 만인의 염원을 실현하는 매개로 사용되었다. 이번호에서는 그림의 내용과 소재에 따른 분류를 통해 어해도의 전통적인 의미를 되짚어 보고 시대가 원하는 민화의 역할을 알아본다.


물고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당히 중요한 상징문양으로, 서양에서는 서기 1세기 로마 카타콤 벽화에서 물고기 문양이 발견되었고 이후 예수가 일으킨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는다 하여 풍족함을 의미하는 한자인 ‘남을 여餘’를 대신한 길상문양으로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작은 자갈돌에 새겨진 물고기 형상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암각화에 그려진 물고기 역시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국시대로 넘어오면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시대 토우土牛에 이어 고려청자 및 조선 분청사기와 백자 등 도자기 및 금속공예품 등에도 문양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그림의 내용과 소재에 따른 어해도의 분류사

어해魚蟹란 민물이나 바다에 서식하는 어류를 지칭하지만 포괄적으로는 수족水族 전체를 가리키며 그 중 물고기와 게를 그린 그림을 어해도라 한다. 어해도는 전통회화는 물론 민화에서도 많이 그려졌는데 그림의 내용에 따라 물고기들이 노니는 장면을 그린 어락도魚樂圖,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의 유어도遊魚圖, 잉어가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모습을 그린 약리도躍鯉圖 등으로 나누며 소재에 따라서는 궐어도鱖魚圖, 해도蟹圖, 점어도鮎魚圖, 연화유어도蓮花遊魚圖, 어하도魚蝦圖, 이어도異魚圖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궐어도鱖魚圖는 쏘가리를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 쏘가리를 뜻하는 궐鱖은 궁궐을 뜻하는 궐闕과 발음이 같아 대궐에 들어가 입신출세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蟹圖에 그려진 게는 수중군자水中君子로 청렴함을 상징하며 껍질이 단단하다 하여 갑옷 갑鉀자와 동음인 으뜸 갑甲에 의미를 부여하여 장원급제를 상징한다. 두 마리의 게[二甲]와 갈대[蘆]를 한 화면에 같이 그린 그림을 전로傳蘆라 한다. 두 마리의 게는 두 번의 과거시험인 소과, 대과에 급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전로傳蘆가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왕이 내리는 음식을 뜻하는 전려傳臚와 발음이 같다 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갈대는 한 뿌리에서 직선으로 자라나 꽃과 잎이 하나로 연결된 연과식물連顆植物로서 연과連顆와 동음인 연과連科에 착안하여 갈대 그림을 ‘연속해서 과거에 급제한다’는 의미로 풀이하였다.

승진과 부부해로, 화합을 상징했던 그림

점어도鮎魚圖에는 메기가 그려져 있는데 비늘이 없어 미끌미끌하지만 대나무에 오르는 재주가 있다 하여 승진을 의미한다. 흰 연꽃과 크게 그려진 연잎, 그 아래에 물고기를 그린 연화유어도蓮花遊魚圖는 매년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하도魚鰕圖란 새우를 그린 그림으로 새우는 허리가 굽어서 바다의 늙은이海老라는 별명이 있는데 해로偕老와 발음이 같아 부부해로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 새우와 대합을 함께 그린 그림을 하합도鰕蛤圖라 하는데 여기에서 새우 하鰕가 화할 화和와 음이 비슷하고 조개 합蛤이 합할 합合과 음이 같아 화합和合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름을 축하하며 오래도록 임금과 화합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어도異魚圖는 크기가 다른 두 마리의 잉어를 함께 그린 그림으로 소과, 대과를 모두 급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밖에도 물고기 세 마리만 그린 삼여도三餘圖가 있는데 《삼국지 위지 왕숙전》에 동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어떤 사람이 동우에게 찾아와 배움을 청하며 말하기를 한가한 날이 없어 글을 읽을 여가가 없다고 하자 동우는 학문을 하는 데는 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그 세 가지 여가란 밤, 겨울, 비오는 날을 말하는 것으로 밤은 하루의 나머지, 겨울은 일 년의 나머지, 비오는 날은 농사철의 남은 시간이므로 이 세 가지 여유 있는 시간이면 학문하는데 충분하다고 한 것이다.

역경을 이겨낸 잉어, 마침내 용이 되다

출세란 원래 ‘세상에 나간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임금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 진출하여 나라로부터 크게 쓰임 받는 것을 말한다. ‘입신출세’하면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잉어가 뛰어 오르는 모습을 그렸다 해서 약리도躍鯉圖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잉어가 중국 황하의 거친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다 용문에서 뛰어오르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 황하 상류 협곡에 등용騰踊이라는 큰 폭포가 있었는데 이른 봄철에 강물이 불어나서 역류하면 늙은 잉어들이 용문에 모여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서로 앞 다투어 뛰어오른다. 이때 수많은 잉어 가운데 한 마리가 폭포를 뛰어 오르면 우뢰와 번개가 치면서 잉어의 꼬리를 불태워 용이 된다.
이렇듯 온갖 역경을 이겨낸 잉어가 마침내 용으로 변신하는 것은 출세가도를 달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나타낸 것이다. 입시학원의 간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등용문’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잉어를 상상속의 동물인 용으로 변신하게 함으로써 평범한 사람도 노력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안주하지 말고 용감하게 세상 밖으로 나가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수험생들은 어변성룡도를 부적처럼 몸에 지니거나 베개 속에 넣기도 하고 공부방 벽에 붙이기도 하였다.

해탈, 안빈낙도 정신과 상통하는 물고기

불교에서는 물고기가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에서 일체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여겼다. 특히 밤낮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의 생태적 특성으로 인하여 수행자란 모름지기 물고기처럼 잠을 자지 않고 부지런히 수행하라는 의미로 풍경이나 목어, 목탁 등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었다. 또한 권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아 즐기려는 선비의 안빈낙도安貧樂道 정신과도 상통한다.
민간에서는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으로, 도둑으로부터 재물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귀중한 재물을 보관하고 있는 다락문에 물고기 그림을 붙인다거나 쌀뒤주에 물고기 모양의 자물쇠와 손잡이를 부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적이며 화려했던 19세기 어해도의 경향

18세기 전반까지는 어해도를 그린 화가의 대부분이 문인들이었으나 이후에는 궁중 화원들에 의해 일정한 틀이 형성되었다. 어해도 분야의 독보적 화원에는 책거리 화가로도 유명한 장한종張漢宗(1768~1815)을 꼽을 수 있다. 유재건이 쓴 《이향견문록》에는 “장한종은 어릴 적부터 숭어, 잉어, 게, 자라 등을 사서 그 비늘과 껍질을 상세히 관찰하여 묘사하였으며 매번 그림이 완성되면 사람들이 그 박진감과 사실성에 찬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시기에 그려진 어해도를 보면 관념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자연에 관심을 두고 물상을 묘사하는 성향을 보여 이전보다 한층 더 역동적이고 사실적이다. 19세기 말엽 궁중에서 민간으로 넘어온 어해도에는 부부금슬이나 다산 같은 현실적인 염원을 담아 표현한 그림이 많다. 한 쌍의 물고기가 사이좋게 유희를 즐기거나 교합하는 장면도 많이 그려 인간의 본능적 소망과 물고기와 각양각색의 꽃을 결합시켜 해학적인 어해도를 탄생시켰다.

민화 혁명을 위한 키워드는 융합

민화에서 보이는 어해도는 물고기를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다양한 소재들을 배경으로 그려넣어 상징적 의미를 확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였다. 민화의 원형이 중국의 것이든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민화의 원형에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적 정서가 축적되어 오롯이 우리의 전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이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결정하여 공동체적 특성과 시대적 이슈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중세유럽하면 영주, 기사, 농노를 기반으로 하는 봉건제도를 가장 먼저 떠올리듯 각 시대의 공통체적 의식과 특징은 오랜 시간 퇴적되어진 것들이다. 세계경제가 주목하는 4차산업혁명은 제조업과 정보통신을 융합시키는 것에서 출발되었다. 미술작품에서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창작물을 만듦에 있어서 가장 수월한 방법은 각각 독립해서 존재했던 기존의 독립개체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기존의 상징적 소재들을 결합시키고 그 속에 그리는 이의 생각을 담아내면 비로소 이 시대가 원하는 민화가 탄생하는 것이다. 물고기에 꽃과 화초를 접목하여 새로운 어해도를 만들어 냈듯이 민화의 변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글 금광복(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사)한국민화협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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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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