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 ㊾ 능소화 필 무렵

최천숙, <기다림>, 2022, 순지에 먹, 분채, 봉채, 66×63㎝



지난 8월, 친정 어머니 기일을 맞이해 대구에 위치한 친정집에 들렀다. 친정집 마당에는 늘 가지각색의 꽃이 피어나 꽃잔치를 벌이곤 했다. 이번 작품의 배경에는 여름날 활짝 핀 능소화를 그려보았다.

글·그림 최천숙 작가


문이 닫힌 친정집 대문 위로 능소화가 피어 하늘을 향하여 있고, 덩굴 지어 내려온 담벼락에는 무리 지어있는 초록빛 잎 위로 꽃이 드문드문 피어있다. 담 아래와 대문 앞에는 꽃이 송이채로 떨어져 붉은 카펫을 깔아 놓은 듯하다. 아름답고 황홀하여 여름날의 무더위를 잊게 했다. 나팔처럼 생긴 능소화는 “기다렸어”하며 외치고, 떨어진 꽃은 환영한다며 살짝 밟고 들어오라 한다. 담 밖으로 귀 기울이며 내 발자국 소리를 기다렸을까. 능소화는 옛날에는 양반 집에만 심을 수 있어 양반꽃이라 불리고 덩굴식물로 담 벽을 타고 내려온다. 꽃말이 명예, 그리움, 기다림, 나팔(Trumpet)이다. ‘님이 오시는지’ 임금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러 담벼락에 귀 기울이며 애 태우고,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그리움 속에서 기다리다 죽어간 소화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늘은 8월 18일. 음력으로는 7월 21일로 친정 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 5년째 되는 기일忌日이다. 말복이 엊그제 지났으니 한여름 더위도 한풀 꺾이나 했는데 대구의 한낮은 무더웠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1시간 40분 걸려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여동생이 마중을 나왔다. 더위를 잊은 채 능소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닫힌 문을 바라만 보았다.
맏이인 나는 여동생·남동생·남편·올케와 부모님 제사를 지낸다. 남동생이 제주祭主인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치료 중인 관계로 여동생과 산소라도 들르기 위해 함께 나섰다.

사랑과 그리움이 듬뿍 밴 꽃나무

친정집은 하나 뿐인 막내 남동생이 태어난 집이다. 동생이 54세이니 이 집도 매우 오래된 셈이다. 그래서 마당에 심겨진 꽃과 나무도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여름에는 대문 밖에서부터 능소화가 반겨 주었다. 이 꽃나무들은 동생보다도 나이가 많다. 결혼 후 친정에 들리면 날마다 마당앞이 꽃천지였다. 어떤 날에는 샤넬꽃 같은 동백꽃이 피어 있고, 다른 날에는 하얀 목련이 지붕에 닿도록 키가 커 햇빛을 가릴 정도로 자라있었으며, 또 어떤 날엔 온 마당에 자주빛과 분홍색 모란이 가득했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다 돌아가셨으니 집이 그리우셨을 것이다. 남동생은 태어나서부터 결혼 후에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거동이 어려워 요양원에 모시기 전까지 함께 살았으니 그 정을 헤아릴 수 없으리라.
나는 여동생과 대문 밖 능소화를 다시 둘러보고 산소로 향했다. 아버지께서는 영천에 있는 국립묘지 호국원에 계시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7년 뒤, 어머니는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늘 마셨던 커피 두 잔과 엄마가 좋아한 양과자를 놓고 큰 절을 올렸다.
그림에는 탈을 쓰고 춤을 추고 있는 남녀를 그리고, 배경에는 능소화를 넣었다. 탈은 안동 화회탈 중 하나인 선비탈과 봉산탈춤을 출 때 착용하는 소무탈을 씌웠다.
신분을 가리는 탈을 활용한 탈춤은 익명적 성격으로 자유롭게 민중과 어울리며 사회를 풍자·비판·희화해왔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이 문화는 조선후기에 민중과 함께하는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으며 현대까지 내려온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산물이다. 작품의 배경에는 인상 깊은 여름날의 능소화를 그려 화제를 ‘기다림’으로 지어보았다.


최천숙ㅣ작가

(사)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 이사, (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사)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이다.
저서로 수필집《내가 행복할 때 그대는》이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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