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 ㊻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

<삼우도>, 2022, 순지에 분채, 봉채, 먹, 70×60㎝



인생을 살아가며 친구가 생기고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친구도 자연스럽게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만남과 헤어짐에 집착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운명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내 마음에 쏙 들어 평생을 같이 가고 싶은 친구가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글·그림 최천숙 작가


예로부터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글이나 그림 속에서 전해 온다. 세한도歲寒圖, 세한삼우도, 오우시五友詩, 화목구품花木九品 등이 있는데 친구를 화목에 비유한 것이다. 주로 들어가는 화목은 상록수인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등이다. 추운 겨울의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기고 늘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 언 땅 위에서 고운 꽃을 피워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를 고난과 어려움을 견디며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에 비유하여 고고하고 기품 있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이 나무들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함께 살아와 친숙하며 정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제주 유배시절,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의리를 지키고 도움을 준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하고자 그린 그림이다. 추운 겨울에도 늘 푸른 소나무와 전나무를 그려 넣었다.

깊은 우정을 담은 세한삼우도

소나무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장수長壽하는 나무이다.
궁궐이나 절, 큰 집을 지을 때 대들보용으로 쓰는 나무부터 마을을 수호하는 동신목洞神木, 산을 지키는 산신목山神木으로 존재한다. 내가 어릴 때에도 어머니가 장을 담군 독에 숯과 고추, 솔가지를 띄우고, 출산한 집에 금줄을 쳤는데 새끼에 솔가지를 꿰어 두었다. 할머니께 배운 관습으로, 소나무 가지가 부정을 물리치고 주변을 정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숯은 정화작용을 한다고 하며 소나무는 식재료 한약재 술이나 떡을 빚을 때 등 많이 활용되고 있다. 소나무는 추위와 역경 속에서도 푸름을 간직하여 절개와 의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조선 초 성삼문이 <단심가>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하며 충절의 시조를 읊었고, 대한민국 <애국가>에도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란 가사가 들어있다.
대나무는 상록수이고 곧게 자라며 속이 비어있고 생명력이 강하다. 생김새가 맑고 절개가 굳다. 마음을 비우고 득도하여 천지의 도를 행할 군자君子와 지조 있는 선비의 품성을 빗대기도 한다. 또한 장수하고 자손을 번성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대쪽 같은 사람’이라는 말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고대사회에서 대나무는 활, 화살, 창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 신라 신문왕때 대나무로 만든 만파식적으로 피리를 부니 바람이 멈추고 물결이 가라앉아 적을 물리쳤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조선시대의 시인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대나무와 소나무를 노래했다.
매화는 겨울을 지나 맨 먼저 피어 봄을 알리는 곱고 향기로운 꽃이다. 추위를 이기고 눈 속에서도 피는 모습이 마치 불의에 굴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여 꽃을 피우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선비정신의 표상이기도 하다.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선비들은 문인화에 매화를 그려 지조와 절개를 표현하였다.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대무신왕 24년에 ‘매화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유사≫에는 일연 스님의 시詩에 매화가 불법을 상징한다는 구절이 있어 매화가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는 매화를 사랑하여 매화를 많이 그렸고 대학자 퇴계 이황은 ‘매화나무에 물을 주거라’며 유언하고 돌아가셨다. 일제 강점기에 옥사한 이육사의 시 <광야>에서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라는 지조를 의미하는 구절이 들어있다.
이처럼 송松죽竹매梅를 삼우三友로 하여 그린 그림을 <세한삼우도>라 한다. 예로부터 삼우로 시나 시조를 읊고 글을 썼다. 예전에는 단짝도 있고 오우五友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민화로 <세한삼우도>를 그려 보았다. 다시 봄이 왔다. 새봄에 고목에서 꽃이 피고, 땅속에서 죽순이 올라오고, 솔가지에 새순이 돋아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또 다시 봄. 순환하는 자연 속에서 생명은 이어지고 영원하다.

최천숙ㅣ작가


(사)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 이사, (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사)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이다.
저서로 수필집 《내가 행복할 때 그대는》이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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