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 ㊺ 봄꽃맞이

최천숙, <혜명 화조도>, 2022, 순지에 분채, 채색물감, 44×53㎝



모춘母春이라 불리는 봄은 마른 가지에 생명을 불어 넣어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낸다.
대지는 어머니의 품이며 모춘은 위대하다.

글·그림 최천숙 작가


파란 새싹이 돋아나는 땅 위에 연분홍 꽃잎이 뿌려져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 벚나무에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꽃이 올망졸망 달려있다. 가로수의 벚나무를 보니 붉은 수술만 남기고 꽃잎이 다 떨어진 뒤 잎이 무성한데 산 벚나무에서는 이제 꽃잎이 날린다. 개나리 담장 위에도 까치머리 위에도 눈처럼 내려왔다. 상수리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고 들락거리던 까치가 땅위에 내려와 두리번거린다. 눈꽃을 맞으러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연분홍 하늘 아래에서 두 팔을 벌리고 크게 숨 쉬며 서 있었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쑥 향을 맡으며 한 움큼 뜯어 바구니에 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해가 뚫고 나왔다. 숲이 환해지며 무지갯빛을 발하였다. 덩굴장미가 가시 울타리를 치며 작은 잎을 피우고 있다. 다음 달에는 빨간 장미꽃이 피어 사랑의 인사를 할 것이다. 푸른 날개를 가진 새를 기다려본다

어느 봄날

친정 집 대문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자주색 모란이 마당에 가득했다. 커다란 꽃송이의 빛에 압도되었다. 이렇게 꽃이 활짝 피어 오랜만에 오는 나를 반겨주었다. 일부러 맞춘 건 아니지만 개화기간이 길지 않은 모란이 만발한 모습을 보게 돼 좋았다. 과연 모란은 부귀富貴와 군자君子를 상징할 만한 풍모를 지녔다. 분홍색 모란도 고왔으나 자주색 모란이 압도적이었다.
통일신라의 기반을 닦은 신라의 선덕여왕은 총명하고 태양의 위용과 용봉龍鳳의 자태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품 있고 아름다워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당나라 임금으로부터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받았는데, 그림을 보고 “꽃이 매우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씨앗을 심은 뜰에 모란이 피어나자 확인해 보니 정말 향기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여왕은 모란이 그려진 그림에 향기 따라 오는 나비나 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설화가 전해진 지도 천오백 년이 흘렀다. 활짝 피어 수술이 드러난 모란꽃의 향기를 맡아보니 은은한 향기가 나고 벌도 날아든다. 코끝에 노란 꽃가루가 묻었다. 친정집 자주색 목단을 우리 집 마당에 옮겨 심을 거라고 다짐했건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모란이 다시는 피지 않았다. 소중하게 키운 오래된 동백나무와 목단이 다음 해에, 그 다음 해에도 꽃을 피워내길 기다렸지만 끝내 볼 수 없었다. 꿈속에서 부모님은 꽃밭에서 꽃을 뿌리고 행복한 모습으로 계셨다. 모춘母春이라 불리는 봄은 마른 가지에 생명을 불어 넣어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낸다. 대지는 어머니의 품이며 모춘은 위대하다.


최천숙ㅣ작가


(사)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 이사, (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사)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이다.
저서로 수필집《내가 행복할 때 그대는》이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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