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 ㊹ 푸른 날개를 가진 새

최천숙, <장미와 푸른 날개의 새>, 2022, 순지에 채색, 47×53㎝



지난 5월 어느 날, 장미가 만발하여 늘어진 가지를 돌보려고 밖으로 나갔다.
새 한 마리가 대추나무 가지에 앉아 빨간 장미가 만발한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 모를 새를 보노라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께서도 꽃과 새를 좋아하셔서 친정집 마당에는 꽃나무가 가득했다.

글·그림 최천숙 작가


아침에 빛이 새어 들어와 커튼을 올리니 꽃향기가 올라왔다. 하트모양으로 꽂힌 장미꽃이다. 어제 대구에 살고 있는 며느리가 보낸 꽃바구니이다. 손잡이에 매여 있는 리본 한쪽에는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축하드립니다.” 다른 한쪽에는 아들, 며느리, 손녀 이름이 쓰여 있었다.
군대생활을 하는 아들과 며느리는 집안의 대소사에 거의 참석을 못하지만 제사나 명절에는 교동법주를,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꽃바구니를 보낸다.
며느리가 결혼 후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아 오느라 결혼 10년 만에 첫 손녀를 보았다. 이제 4살 된 손녀가 레이스에 리본 달린 옷을 입고 어린이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손녀가 공주 옷을 좋아한다고 한다. 나를 닮았나 보다.
남편이 전역한 후 서울에 정착한 곳이 북한산 기슭에 지은 아파트였다. 우리 집은 1층이라 창밖이 들꽃과 나무로 둘러 쌓여있다. 이 집에 이사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창가에 장미나무를 심은 것이다. 거실과 안방을 두르는 창가에 장미 10그루를 나누어 심었는데 모두 잘 자라 해마다 오뉴월이 되면 빨간 장미가 창을 덮어 행복했다. 흙이 있어 덩굴장미를 심을 수 있겠다 싶어 1층도 좋았다.

혹시 아버지가 오셨던 것일까

친정아버지께서 구순을 앞두고 돌아가신 뒤 몇 해 지난 5월 어느 날, 장미가 만발하여 늘어진 가지를 돌보려고 밖으로 나갔다. 새 한 마리가 대추나무 가지에 앉아 빨간 장미가 만발한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나무가 많아 새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처음 보는 새였다. 까치 보다 조금 큰 듯 하고 푸른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잠시 쳐다보다 폰으로 얼른 사진을 찍었다. 새는 인기척을 보이면 날아가기 때문에 찍기 어려운데 다행히 폰에 담았다.
이름 모를 푸른 날개가 달린 새를 보며 순간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께서도 꽃과 새를 좋아하셔서 친정집 마당에는 꽃나무가 가득했다. 새장 속의 새에게 좁쌀모이랑 물도 넣어주곤 했다. 아버지께서는 6.25전쟁 때 잠시 몸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오셨는데,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고향에 가서 부모님 산소를 찾아야 한다며 통일이 되기만을 기다리셨는데 그 한을 풀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눈도 뜨지 못하고, 입도 열지 못하고, 눈물이 가득 고여 흘린 자국만 남긴 채….
“아버지 이제 새처럼 훨훨 날아, 고향산천 둘러보고 보고픈 사람들과 만나보세요. 편히 쉬세요. 아무 걱정 마시고요.”
나는 아버지의 귀에 대고 작별인사를 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온 빛이 해가 더욱 빛을 발하니 오색찬란하게 퍼져 나가며 나뭇가지를 가렸다. 유리문을 열고 햇빛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였다. 숲을 통하여 맑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마스크를 하고 다니느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크게 숨쉬기를 하였다.
빛이 유리문을 뚫고 들어와 만든 동그란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모닝커피를 마신다. 어제 스타벅스에서 가장 비싼 원두커피를 사왔다. 케냐, 콜롬비아보다 2천원 더 비싼 이디오피아 커피이다. 달콤한 슈크림빵과 함께 먹었다. 장미꽃바구니를 보며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 왈츠’를 선곡했다.
음악이 흐르고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니 은은하게 풍겨오는 장미꽃 향기에 절로 취하는 듯 하다. 이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나는 꽃과 커피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닮았고, 공주 옷을 좋아하는 손녀는 나를 닮았다. 우리는 하나다.

최천숙ㅣ작가


(사)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 이사, (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사)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이다.
저서로 수필집《내가 행복할 때 그대는》이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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