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 ㊶ 길에서 만난 수선화

<혜명 초충도 (수선화와 사슴벌레)>, 2021, 순지에 분채, 봉채, 채색물감, 53×43㎝



길을 가던 중 우연히 만난 수선화의 향기와 자태에 한참 동안 빠져 있었다.
아름다운 수선화를 모티프 삼아 작품에서는 태호석을 그려 넣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이상을 표현해 보았다.

글·그림 최천숙 작가


북한산 아래 지어진 뉴타운으로 이사 간 뒤 목욕탕을 찾는 중에 천연 온천수만 100%사용한다는 ‘북한산 온천’을 찾아 나섰다.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라 가까운 편이지만 낯선 곳이라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온천 팻말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외길로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야하는 골목길이었다. 양쪽에는 전원주택이 있고 찻집과 식당이 있었다. 조심스레 양옆을 살펴보며 가다보니 막다른 곳에서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이정표도 없어 좌회전하여 들어서니 온 길보다 더 좁은 길이 나왔다. 온천은 보이지 않고 차를 돌릴 만한 곳도 없는데 지붕이 낮은 작은 카페가 보였다. 맞은편에는 차를 몇 대 세워둘 공간도 있었다. 차문을 열고나오니 향긋한 꽃내음이 코끝을 스쳐갔다. 주변이 산이라 매화나무 산수유가 꽃을 피우고, 들에는 희고 노란 수선화가 구름처럼 피어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카페 유리창 아래 작은 꽃밭에 수선화가 몇 송이 심겨져 있었다.

겨울에 피는 수선화, 겸허한 자세 의미

수선화의 학명이 나르시수스(narcissus)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소년 나르시스는 물위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반해 손을 뻗었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마는데, 나르시스가 있었던 물가에 핀 꽃이 바로 수선화라고 한다. 그래서 꽃 이름이 수선水仙 즉, 물의 신神이고 꽃말이 자기애自己愛, 자존심, 고결, 신비인가보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은 책가도를 좋아해서 책가도 병풍으로 궁중을 장식하였다고 한다. 책가도에는 책뿐 아니라 문방사우, 꽃, 과일, 기물 등이 함께 그려져 있는데 화분에 담긴 수선화가 눈에 띈다. 수선화는 학문을 숭상하는 선비의 상징으로 학문에 정진하여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뜻일 것이다.
수선화는 겨울에 핀다고 하여 설중화雪中花라고도 한다.
세한도歲寒圖를 그린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시절 곳곳에 핀 수선화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수선화는 자만하지 말고 겸허한 자세를 가지라는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다. 제주에서는 옛날부터 수선화가 많이 피었는지 요즘도 제주 한림공원에서는 1월에 수선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목욕하러 가다가 우연히 만난 수선화의 향기와 자태에 한참 동안 빠져 있었다. 카페에 들러 길을 물은 뒤 두 갈래 길에서 우측 길로 가서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작품에서는 수선화와 더불어 물과 바람의 풍화작용으로 구멍이 나고 괴기스런 모양을 한 태호석太湖石을 그려넣었다. 태호석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이상을 상징한다고 하니 수선화와도 잘 어울린다. 머리에 난 뿔이 사슴뿔을 닮아 사슴벌레라 불리는 곤충을 함께 그려 나의 혜명 초충도草蟲圖를 완성하였다.


최천숙ㅣ작가

(사)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 이사, (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사)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이다.
저서로 수필집《내가 행복할 때 그대는》이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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