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 ㊵ 봉숭아 꽃물

<혜명 초충도> (봉숭아와 방아깨비), 2021, 순지에 분채, 봉채, 50×40㎝



옛날에는 여자뿐 아니라 남자 아이도 봉숭아로 손톱을 빨갛게 물들였다고 한다.
이것은 예쁘게 보이게 하려고한다기 보다 병마를 막기 위함이었다.
붉은 색이 병이나 나쁜 것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글·그림 최천숙 작가


담장 아래
올망졸망 핀
하양, 빨강, 분홍 꽃
봉숭아

색동저고리 입고
열 손톱을 붉게 물들인
손에 손잡고
빙빙 돈다.

훤昍한 얼굴에
웃음꽃 피어
뛰어 노는
우리 아이들

봉숭아 꽃물 들이고.

10월 첫날 제주에서 아침에 마을동네 산책길을 나섰다.
뒤쪽 산등성이에는 설문대할망이 길게 누워 있고 앞쪽으로 걸어 나가면 푸른 바다에 떠있는 섶 섬이 보인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감귤 밭을 지나다가 현무암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낮은 담 아래 붉은색 봉숭아가 나란히 피어 있었다. 너무나 반가워 가던 길을 멈추고 들여다본다. 꽃잎이 봉황같이 생겨 봉선화鳳仙花라고도 부른다. 폰 카메라로 요리조리 찍어 두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어린 시절 많이 불렀던 동요이다. 우리 집 꽃밭에도 봉숭아가 피어 있었다. 아버지께서 꽃을 좋아하셔서 마당에 꽃과 나무가 가득했다. 봉숭아 꽃잎을 따다가 바위에 올려놓고 작은 돌로 짓이긴다. 백반을 조금 넣어 섞어 손톱위에 올리고 봉숭아 길쭉한 잎을 따다 돌돌 감아 하얀 무명실로 묶는다. 사나흘 밤 지나면 손톱이 빨갛게 물든다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봉숭아가 떨어질까 봐 조심해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그래도 붉은 물은 들었다.
다섯 손가락 모두 들인 적도 있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에만 들인 적도 있었다. 손톱이 자라나면서 물든 손톱이 점점 잘려나간다. 꽃물 든 손톱이 첫눈 내릴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봉숭아 물들이기, 벽사적 의미도 지녀

옛날에는 여자뿐 아니라 남자 아이도 봉숭아로 손톱을 빨갛게 물들였다고 한다. 이것은 예쁘게 보이게 하려고한다기 보다 병마病魔를 막기 위함이었다. 붉은 색이 병이나 나쁜 것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집 울타리나 장독대에 붉은 봉선화를 심으면 뱀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여 금사화禁蛇花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나라 토종 흰색 봉숭아는 씨앗이 약재로 많이 쓰이는데 몸속의 덩어리나 뼈를 무르게 하는 성질이 있어 각종 염증이나 통증, 암에 좋고 어혈을 풀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불임증이나 부인병에도 효능이 있다. 요즘에는 매니큐어에 밀려 사라졌지만, 손톱을 봉숭아 꽃잎으로 물들이는 풍습은 본래 잡귀나 병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편으로 되살려야하는 전통 풍속이다. 서리 내리기 전까지 꽃이 핀다는 봉선화를 가을날 남쪽 지방에서 만나니 어린 시절이 떠올라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내년에는 친정집 마당에 핀 봉숭아를 따다가 꽃물을 예쁘게 들여 봐야겠다.


최천숙ㅣ작가

(사)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 이사, (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사)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이다.
저서로 수필집 《내가 행복할 때 그대는》이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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