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 ㉗ 석파정 나들이

석파정 초입에 위치한 바위에 새겨진 ‘소수운렴암巢水雲簾菴’.
이 글귀처럼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고 물이 흐르는 계곡에 단풍나무가 발을 친 아름다운
가을날 사랑하는 딸과 손자와 함께 하여 더없이 즐거웠던 시간을 그려보았다.

글·그림 최천숙 작가


높고 푸르른 하늘 위로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살랑이는 바람에도 황색으로 물든 나뭇잎이 떨어져 구른다. 이렇게 좋은 가을 날, 우리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않은 서울미술관 석파정에 나들이 나섰다. 외손자를 넓은 곳에서 뛰어다니게 하고, 다함께 가을빛을 쬐고 싶어 딸과 함께 나왔다. 손자의 돌잔치를 홍지동에 있는 석파정에서 했는데 잔치상을 받은 손자가 전통 한복을 입고 복건을 씌우면 벗어 버리고 우는 바람에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했다. 돌잡이 상을 차려 집으라 했더니 많이 울어서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억지로 했다. 붓, 돈, 활, 칼, 청진기, 판사봉등을 차려두고 친할머니는 청진기를, 나는 판사 봉을 슬쩍 앞쪽으로 밀어 넣었더니 손자가 청진기를 집어 들었다. 손자가 대를 이어 의사가 되었으면 하고 원하셨나보다.

흥선대원군이 사랑한 석파정

석파정石坡亭은 조선시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서別墅로 석파는 그의 아호이다. ‘왕이 사랑한 정원’이란 글귀답게 석파정은 인왕산의 바위산 기슭에 자리 잡아 수려한 풍경을 자랑한다. 북악산이 마주 보이고 멀리 북한산 봉우리가 보여 전망이 확 트여 있고 큰 바위와 노송, 숲과 누각, 계곡이 어우러져 한옥과 함께 넓은 자연의 정원을 이루고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의 삼층석탑이 보이는 숲속의 돌길을 손자와 손잡고 걸어 오르다 노랑 벤치에 앉아, 낙엽을 두 손에 모아 꽃처럼 머리 위로 뿌렸다. 코끼리 바위라고 불리는 너럭바위는 산봉우리처럼 큰 바위인데 정말 코끼리 모양으로 생겼다. ‘소원을 이루어 주는 바위’라 하여 나도 손자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소원했다.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이라는 석파정은 우리가 자주 보는 기와Profile를 얹은 정자가 아니고 화강암 바닥에 중국 청나라 양식으로 지은 누각으로 조선 말기의 독특한 건축기법으로 지어졌다. 물이 졸졸 흐르고 새소리 들려오는 숲속 누각의 지붕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별 같은 단풍이 발을 쳤다. 시와 창이 있었을 것 같은 조상들의 풍류와 정취가 느껴졌다. 별서의 한옥 집 사랑채 옆에 오래된 반송盤松이 서있는데 수령이 600~650년 되는 노송이다. 천년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세송’이라 부른다. 굴곡진 역사의 흐름과 비바람을 견디며 꿋꿋하게 살아온 소나무답게 나무 둥치와 가지의 모양이 그 긴 세월을 대변하는 듯하다. 역경 속에서도 절개와 의지를 잃지 않았던 조선시대학자와 선비의 정신을 느끼게 했다.
집안에서 열어둔 창을 통하여 보이는 천세송은 액자에 담긴 예술 작품이었다. 미술관 안에서도 창이나 문을 통해 보이는 한옥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천세송 뒤쪽에 있는 커다란 암반에는 ‘삼계동三溪洞’, 별서초입에 있는 바위에는 ‘소수운렴암巢水雲簾菴’등의 각자가 있는데 ‘석파정’ 이전에는 ‘삼계동’이라 하여 안동김씨 김흥근의 별장 이었다고 한다. 사랑채 맞은편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쉬면서 바위 뒤 틈 사이에 핀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손자와 사진을 찍었다. 사진속의 모습이 옛날 내 아들과 찍은 자세랑 비슷하여 신기했다. 소수운렴암…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고 물이 흐르는 계곡에 단풍나무가 발을 친 이 아름다운 가을날 딸과 손자와 함께하여 더욱 즐거웠다.
그림은 석파정의 사랑채 안에서 복숭아를 두고 창으로 보이는 천세송을 그린 것으로 노송老松과 천도天桃는 장생張生을 상징한다. 소나무 둥치를 원으로 그려 순환과 영원을 표현하고 화제를 <장수도長壽圖>라 붙였다.


최천숙ㅣ작가(사)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 이사, (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사)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이다.
저서로 수필집 《내가 행복할 때 그대는》이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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