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 ⑳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날이 따듯해지며 색색의 꽃이 앞 다투어 피어난다.
시린 추위를 묵묵히 견디며 새봄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야말로 군자가 아닐까.
전통 사군자인 매·난·국·죽에 소나무, 연, 모란, 동백, 무궁화 등을 추가로 그려
총 아홉 군자의 풍모를 담아보았다.


<산수유> – 최천숙

입춘이 지나도
스산한 겨울 풍경에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검은 나무둥치 마른가지에
드문드문 박힌 노란 점

꽃잎은 없고 수술만 달린 듯.
산수유 노란 꽃이
새봄을 알린다.

지난해 거둔 빨간 열매가
햇볕을 쪼이고

달인 차를 마시며
졸린 눈을 떠본다.

입춘이 지나 바람이 따스해져 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잿빛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을 보았다. 봄비인가 했는데 바람타고 춤추듯 날아다니는 솜털을 보니 눈이었다. 건조해 보이던 대지가 촉촉이 젖어 들었다. 바람이 세어지고 눈발이 굵어지더니 유리창을 하얗게 덮었다. 어느새 언덕에도 나뭇가지 위에도 소복하게 쌓였다. 꽃을 기다리다 눈을 보고, 화려한 풍경을 보았다. 솔가지에 방울꽃이 맺혔고, 키 작은 나뭇가지 위에는 목화가 피었다. 햇빛 속에서는 수정처럼 반짝이는 이슬 꽃을 피우고, 까만 하늘에는 매화 꽃잎을 날렸다. 지나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봄이 오는 길목에 눈이 꽃을 피웠다. 산수유가 검은 가지를 따라 노랗게 부채꼴 모양으로 달려있다. 하늘을 향해 별꽃이 피어 빛난다. 작년 가을에 따다 만 빨간 열매 두 알이 함께 달려있었다.
어느 집 담장 위로 올라와 한 두 송이 피어나던 홍매가 반가워 이리보고 저리 보며 기웃거렸다. 노랗게 빨갛게 다투어 꽃이 피는 봄이 오고 있다. 푸른 하늘 따뜻한 햇살 아래 활짝 핀 산수유가 황량한 들판에 봄빛을 비춰준다. 꽃을 기다리다 눈을 보고, 물을 먹은 가지에서 매화와 산수유와 함께 찾아온 봄을 맞이했다.

아홉 군자의 이야기를 담아

군자君子란 덕과 학식을 갖추고 인품이 고결한 사람을 일컫는다. 이른 봄에 추위를 견디고 피는 매화[梅],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가 고운 난초[蘭], 늦가을 추위를 이겨내며 피는 국화[菊],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는 대나무[竹]를 지조와 고귀한 품격, 강인함을 상징하여 사군자四君子로 불리며 시詩, 서書, 화畵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소나무도 상록수로 지조와 충성, 장수를 의미하며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 맑고 고운 꽃을 피우고 유월에 피는 모란은 크고 아름다워 꽃 중의 왕이라 하며 추운 계절에 홀로 피는 동백 등이 군자의 풍모를 보인다.
무궁화는 새벽이슬을 머금고 꽃이 맺혀 아침햇살을 받고 활짝 피어 있다가 날이 저물면 오그라지며 통째로 떨어진다. 매일 피고 지며 여름을 지나니 신선하고 단정하며 아름답다. 흰색 꽃잎에 진홍빛 화심花心이 있는 백단심白丹心은 겨레의 얼이요 무구청정無究淸靜의 상징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군자의 품격을 갖춘 나라,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는 나라’로 예찬했다고 한다.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불리고 나라꽃[國花]이 되었다.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四君子에 소나무松, 연蓮, 모란牧丹, 동백冬柏, 무궁화無窮花 등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라 할 수 있는 꽃을 모아 그려 넣고 화제畵題를 ‘구군자九君子’로 붙여 보았다.

글·그림 최천숙((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가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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