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 ⑲ 상주에서 보낸 새해맞이

경북 상주에서는 아직도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무사태평을 염원하는 전통 의식이 치러지고 있다.
풍물패의 흥겨운 꽹과리 소리를 들으며 많은 이들과 오래도록 미풍양식을 이어갔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동네로 들어가는 길. 오석烏石에 ‘학리’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서있다. 멀리 곡선이 완만한 산이 겹쳐져 보이고 사각형 논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루터기만 남아있는 겨울 논에 원통 모양의 둥근 비닐뭉치가 군데군데 이삼층으로 쌓여있다. 소의 여물이라고 한다. 논 가운데 노랑 커튼을 친 축사가 보인다. 한우韓牛가 명품인 이곳은 상주이다. 경북에 있는 상주는 농촌으로 면적은 서울의 2배 정도이나 인구는 10만도 되지 않는다. 노인 인구가 전체의 삼분의 이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마을입구에는 큰 고목인 느티나무가 아름드리 서 있고 옆에 팔각정과 마을회관이 있다. 경로당이었던 것이 마을회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꽃 피는 봄날이 오면 팔각정에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그리고 나무로 조각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나란히 서있다. 제주에 있는 돌로 만든 하루방과 같은 마을의 수호신이다. 이곳의 천하대장군은 연꽃 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좁은 과수원 길을 지나니 양 쪽에 아리랑 춤을 추듯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과나무와 배나무, 복숭아나무가 보인다. 앙상한 가지 끝에서부터 붉은 색과 연두 빛으로 물이 오르고 있다. 여의주를 닮은 감이 까치밥이 되어 꼭대기 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감나무 둥치는 다른 나무에 비해 검은 빛이 많이 난다. 여기는 집집마다 감나무 농사를 짓는다.
가을에는 감을 주렁주렁 엮어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 두고 곶감을 만든다. 곶감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도 많이 생겼다.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이라며 쌀과 곶감, 누에고치를 생산했다. 비단을 만들어 내는 누에는 뽕잎을 먹는데 요즘은 수익성이 좋지 않아 뽕나무를 많이 심지 않는다고 한다. 눈앞에서 참새만한 작은 새들이 푸드덕 날아간다. 앙상한 가지에도 먹을 것이 있는지 그 나무에만 소복하게 모여앉아 있다가 포도밭 너머로 날아간다.
산과 들에 소나무가 많아 산 빛이 짙은 녹색이다. 마른 나무에 물이 오르며 봄의 소리가 들려온다. 오래된 기와집 담 위로 큰 목련 나무에 꽃눈이 소복하게 달려있다. 불꽃이 피는 모양의 향나무가 바람 부는 언덕에 서있고 측백나무가 담을 이루고 있다.
푸른 하늘에 하얀 낮달이 떠있다. 둥근 달이 초생달 만큼 덜 찬 모양이다. 흰 구름에 가려졌나 했더니… 보름이 며칠 남은 달이다.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 고목이 버티고 서있는데 두 사람이 손잡고 둘러도 다 잡히지 않는다. 보호수로 수령이 삼백 오십년 이라고 표지판에 쓰여 있다. 오랜 세월을 살아 마을의 수호신이 되어있다. 느티나무 큰 그늘 아래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쉼터가 된다. 느티나무 둘레에 흰 종이를 끼워 넣은 새끼줄을 둘러 쳐 놓았다. 신성불가침의 장소이다. 새해에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일 년 내내 마을에 나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무사태평과 풍작을 염원하는 의식이 치러진다.
느티나무 앞 공터에서 풍물패가 꽹과리와 징을 치고 북과 장구, 소고를 치며 연주하고 춤을 춘다. 농악대를 지휘하는 상쇠가 꽹과리를 치며 상모를 앞뒤로 흔들고 뱅뱅 돌리며 어깨춤을 춘다. 긴 종이끈이 달린 전립을 쓰고 하얀 원을 그리며 곡예를 한다. 탐스러운 꽃이 달린 고깔을 쓴 잽이들은 소고를 치며 흥겹게 놀이를 한다. 농사를 잘 지어 풍년이 들게 하고 건강과 평안을 기원한다. 풍물패는 마을의 집집마다 “만복萬福이 들어갑니다”하며 들어가 지신밟기를 한다. 집터를 보살펴주고 눌러주는 의례와 놀이를 통해 각 가정의 안녕을 축원한다. 옛 조상의 전통이 시골마을에는 여전히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월 대보름에는 느티나무에서 동제同祭도 지내고 지신밟기와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다리 밟기 등을 한다는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행사와 모임이 취소된 곳이 많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 문화와 민속놀이를 상주의 마을에서 접하며 현대에도 미풍양속이 이어지고 젊은이들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그림 최천숙((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가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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