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 ⑭ 백사여의百事如意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라는 의미로 백합과 감을 그려낸 백사여도를 소개한다.
그림에는 예쁜 오누이를 그려 넣어 손녀에 이어 손자도 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추석을 앞두고 경주교동법주가 택배로 왔다. 며느리가 10년이 넘도록 설날과 추석, 시아버지 제삿날에 보내오는 제주祭酒이다.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과 제사에 올리는 술이다. 흰색 도자기로 만든 주병에 찹쌀과 누룩으로 빚은 금빛 술이다. 경주 최부잣집 후손이 사가에서 빚는 술로 3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9대 진사 12대 만석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며느리가 미국 유학 시절에도 빠지지 않고 보내온 술이다. 물론 아들이 보냈겠지만 말이다.
올 추석은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추석이라 손자가 올리는 술을 받으실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아들은 설날 때처럼 근무를 해야 하므로 못 온다고 한다. 며느리는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제 돌 지난 손녀를 데리고 서울까지 혼자서 오기도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차례는 우리 부부 둘이서 지내는 형편이 되었다.
오후에는 딸네 식구들이 와서 한의사인 사위가 침도 놓아주고 두 손자와 북적거리다 갔지만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며느리를 맞이하고 처음 치르는 제사 때 아들과 딸에게 이르기를 돌아가신 조상이나 살아 있는 부모를 정성껏 모시는 것은 나의 자식에게 전해지는 것이니 내 자식이 잘 되기를 원하면 부모에게 잘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의 자식과 그 후대에게 유전자로 이어지니 진리라고 내 나름대로 확신을 가졌다. 며느리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긴 세월을 공부하며 보내 아들에게서 11년 만에 손녀를 보았고 이제 갓 돌이 지났다.
1919 기미년에 태어나신 시어머니께서는 올봄에 101세 생신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고향에서만 한평생을 살다가셨다. 일제 치하에서 1945년 해방된 후, 대한민국에서 6.25전쟁을 겪은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오시며 온갖 슬픔과 불행을 감수하셨을 것이다. 조선시대 가부장적 윤리 속에 아버지, 그리고 혼인한 뒤에는 남편에게 의견 한 마디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한 맺힌 세월을 보냈을 터인데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아들에게 삶을 맡길 수 밖에 없었으니 평생을 독립하지 못하고 가부장의 그늘에서 보내신 건 아닐까. 하지만 주어진 대로 순응하며 욕심없이 살아서인지 백수를 누리셨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하지만 허무한 인생이다. 그러나 자손이 남아있으니 자손들 속에서 지난 삶도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시어머니께서는 우리 손녀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아들만 자식이라는 옛날 사고방식으로 살아오신 분이라 아들을 낳아야한다고 하셨을 것이다.

간절한 소망을 담아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나 역시 손자를 보고 싶다는 평범한 소망이 마음속에서 피어났다. 추석명절에 남편과 둘이서 차례를 지내며 아들 생각을 하다 보니 더욱 손자를 소원하게 되었다.
민화에서 ‘백사여의하라’, 즉 ‘모든 일이 다 뜻대로 되라’는 염원이 담긴 그림에는 백합과 붉은 감이 들어가 있다. 백합百合꽃은 백사百事로, 붉은 감은 여의주如意珠를 닮아 백합과 감을 그려 넣고 백사여의百事如意라 하는 듯하다.
나의 작품에는 백합과 감나무에 달린 감과 장생을 뜻하는 영지, 그리고 오누이를 그려 넣었다. 손녀가 터를 잘 팔아 손자를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정한 남매를 그리고 ‘소원성취’라고 글을 써넣었다.


글·그림 최천숙((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가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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