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⑱ 동지 팥죽

선조들은 동짓날 이후 양의 기운이 싹튼다 하여 우리 고유의 명절로 삼고 새해의 시작으로 여겨 ‘작은 설’이라며 축하했다. 그림 속에 액운을 물리치는 팥죽과 경사를 기원하는 버선 등을 정성스레 그려 넣으며 희망찬 새해를 염원해본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이라
작은설이라 했지.
뒤뜰 장독대 위에
팥죽 한 사발 올려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하던 어머니
살얼음 낀 팥죽에 설탕 넣고
아랫목 이불속에 다리 밀어 넣고
새알 세며 먹었던 옛 추억
새알심을 세지 못할 나이를 먹은 오늘
솔가지 주워다 팥죽을 뿌린다.

나 어릴 적에 어머니께서 뒤뜰 장독대 위에 팥죽을 한 사발 올려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하던 뒷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날이 갈수록 돌아가신 어머니가 새록새록 생각나며 그리워진다. 우연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우리 엄마 같아 보인다. 하나 있는 손녀가 나를 닮았다는데…. 나는 내 손녀가 엄마를 닮아 보였다. 엄마와 나 그리고 손녀 우리는 하나.
동지冬至는 우리 고유의 명절이며 24절기 중 하나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후부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튼다. 전통사회에서는 새해의 시작으로 여겨 ‘아세亞歲’, ‘작은 설’이라며 축하한다. 궁중에서는 ‘회례연會禮宴’을 열고 중국에 동지사를 파견하고 달력에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御璽를 찍어 나누어 준다.

재앙을 내쫓고 행복을 기원하며

나는 동짓날 새벽에 일어나 붉은 팥으로 죽을 쑤고 찹쌀로 익반죽 하여 새알심을 만들어 넣었다. 팥죽은 양陽의 색으로 나쁜 기운과 재앙을 물리친다고 한다. 팥죽을 한 그릇씩 담아 방마다 놓아두고 팥 국물을 현관문과 창 쪽에 솔가지에 묻혀 뿌렸다. 어제 집 앞에서 작은 솔가지를 꺾어 왔다. 새해에 재앙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하길 기원하며 정성을 다했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딸에게 전화하여 팥죽 먹으러 오라고 하고 올 때 양말(버선)을 사오라고 했다. 버선은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 하여 동지에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버선을 지어 드리는 풍속이다. 버선을 신고 길어지는 그림자를 밟으면 수명이 길어진다며 수복壽福을 기원한다. 그리고 양기가 커지기 시작하므로 풍요와 다산多産의 뜻을 가진다. 부적으로는 뱀 ‘사蛇’를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부쳐 악귀惡鬼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작품에는 장독 위에 팥죽을 담아냈다. 여기에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뱀을 그리고, 수복과 다산을 비는 버선을 함께 걸어 두었으며 풍요의 상징인 생선, 동짓날 제주 목사가 임금께 올렸다는 귤을 차렸다. 소나무 위에는 까치를 올려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비는 며느리를 그려 넣었다. 장수를 상징하는 불로초와 바위를, 부활과 영생을 뜻하는 연꽃과 찬란한 해를 그려 완성했다. 팥죽을 먹고선 팥의 정화작용으로 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양의 기운을 받아 경사스러운 일이 있기를 빌어본다.


글·그림 최천숙((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가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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