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숙 작가의 민화에세이⑪ 백로와 연꽃

이번 시간에는 산책길에 마주한 백로를 소재 삼아 백로연과도를 그렸다.
과거 선조들은 시험합격을 염원하며 백로연과도를 제작했기에,
이번 그림에서는 고시합격에 초점을 맞춰 내용을 표현해 보았다.


며칠 부슬부슬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햇살이 푸른 나뭇잎들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눈부신 햇빛에 무지개색이 보인다. 나는 조명등처럼 해가 비추는 동그란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창밖 풍경을 내다본다. 바람이 부는지 나뭇잎들이 물결을 이루며 넘실거린다. 윤슬이 아름답다.
남편 따라 전국을 다니다 정착한 곳이 북한산 아래에 자리 잡은 진관동이다. 집을 마련하려고 이곳에 왔을 때 모두 분양되고 하나 남은 집이 1층이었으나 창가에 덩굴장미를 심을 수 있겠다 싶어 결정을 내렸다. 덩굴장미 10그루를 창가에 돌아가며 심었는데 모두 살아서 잎이 나오고 빨간 꽃을 피우고 덩굴져 갔다. 해마다 오뉴월이면 장미가 가득한 집이 되니 나의 소망 중 하나를 이룬 셈이다. 대형 화폭의 살아있는 풍경화를 감상한다. 개나리 담장을 이뤘던 노랑꽃이 다 떨어지고, 황매가 피었다. 창틀을 타고 올라온 장미가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난다. 산등성이에는 큰 나무에 하얀 꽃이 소복하게 달려있다. 집 앞 카페에서 사온 케냐원두를 내려 커피를 마시며 비발디의 ‘봄’을 듣는다.

시험 합격에 대한 염원을 담은 일로연과도

아름다운 계절을 오감으로 느끼고 싶어 바람에 실려 오는 아카시아향을 따라 산책을 나섰다. 북한산 위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은 잠시 머무르며 큰 연못을 만들다가 계곡을 따라 계속 흐른다. 계곡 양옆에 산책길을 만들어 두었는데 바닥에는 ‘서울 둘레길’이라 쓰여 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가 연못을 향해 과자 부스러기를 던지고 있다. 금색, 은색, 붉은색, 검은색 물고기들이 몰려와 부딪치고 원을 그리며 떠다니던 오리 떼도 따라오고, 비둘기들이 날아와 물 위를 내려다보고 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수련 잎으로 덮고 있다.
양쪽 길가 언덕에는 라일락과 아카시아 나무가 향기를 피우고 노란 금계국과 하얀 제충국이 피어나고 있다. 실개천을 따라 걸어가면 발밑에 제비꽃, 토끼풀, 맨드라미가 보이고 패랭이꽃이 고개를 내민다. 바위틈에 색색의 철쭉이 바래져가고 애기똥풀이 무성하다.
버드나무가 서있고 가을이면 갈대가 빽빽한 하천에 몸 전체가 하얀 백로가 목을 길게 빼고 부리를 물속에 집어넣고 있다. 폰으로 사진을 찍고 보니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민화를 그리면서 민화 속의 실물들을 사진을 찍어 비교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백로를 보았으니 연꽃과 함께 ‘일로연과도’를 그리기로 했다. ‘일로연과도’는 수묵화로 그려진 것이 많고, 민화에서는 백로와 연꽃으로 구성된 ‘연화도’가 있다.
일로연과도(一鷺蓮果圖, 한 마리의 백로와 연꽃의 연밥이 그려진 그림)와 일로연과도(一路連科圖, 한번 나가서 과거에 초시 복시 연달아 합격하라)가 발음이 같아 시험 합격에 대한 염원을 담은 그림이다. 백로 한 마리를 그리고 연과가 보이는 연꽃을 넣었다. 연꽃이 태양을 따라 피므로 태양과 아래에는 물을, 옛날 과거시험이 요즘으로 치면 각종 고시일 것 같아 ‘고시합격’을 써넣었다.
나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 볼 때마다 절로 행복감을 느낀다. 많은 꽃들을 감상하며 따스한 햇살을 쬐고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 속에서 새소리 물소리 벗 삼아 그림구상도 하니 정말 행복한 나날이다.


글·그림 최천숙((사)한국민화협회 해외조직팀 이사, 한국수필가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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