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경 작가가 전하는 신년 단상 민화 향기 가득한 작업실에서

최남경 작가作

최남경 작가“민화에는 깊이가 스며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민화에 거부감 없이 입문하는 것 같다.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친근함이 누구나 쉽게 다가올 수 있게 만든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하였다가 오랜 세월 동안 붓을 잡고 작업을 하게 된다. 작가로서 바람직한 인성과 사고력을 향상시켜 작품의 다양성을 갖추고, 현대 민화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도 다 같이 힘을 합쳐 부단하게 노력하는 순간 진정한 작가로 거듭난다.”
최남경 작가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신년 단상을 전한다.

작업실에서 만난 사람들

솜털 같은 흰 눈이 날리던 날, 작업실로 손님이 찾아왔다. 4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교포였다.
“친정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다가 민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요즘 들어 노쇠하신 어머님이 치매 증상을 보이는데, 누군가 민화를 그려보게 하라는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민화를 그리다 보면 어머니 기억 아래 잠겨있던 모국이 떠오를지도 모르잖아요.”
문제는 그이가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단 하루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민화를 배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이에게 필자를 소개해준 사람은 오랜 시간 나와 같은 모임에서 함께 해온 지인이었기에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이는 연꽃과 모란꽃만이라도 가르쳐주길 원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이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경력이 있었기에 간단한 설명으로도 이해가 빨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은 소품을 두 점이나 들고 작업실을 나서며 무척 만족해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니에게 민화를 알려드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막 설레요.”
내년에 다시 와 머물 때에는 시간을 만들어 좀 더 배우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부디 친정 노모가 그이의 바람대로 민화를 그리며 즐거워하시기를 빌었다.
며칠 전에는 중학생 딸과 엄마가 작업실을 찾아왔다.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딸에게 한국적인 문양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 알지요? 앞으로 그림을 하겠다니 우리의 전통적인 색과 그림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널리 알렸으면 해요.”
필자는 1996년 스페인의 소피아 왕비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의 전통그림을 보길 원하자 인사동에 데려가 민화를 소개했다는 예를 들려줬다. 소피아 왕비는 그 자리에서 호랑이 그림을 구입하며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저도 민화라는 그림이 이렇게 좋아질 줄 몰랐어요. 예전에는 색깔이며, 그림이 촌스럽게 보였었거든요.”
필자는 학생에게 많은 그림을 보여주며 우리의 전통 색과 문양을 접하게 해줬다. 그리고 오래오래 그것을 기억하길 바라며 그림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들도 함께 들려줬다.
“선생님, 외국 아이들을 만나면 민화 이야기를 해줘야겠어요.”
낯선 나라에서 만날 친구들 때문에 긴장하던 그 학생의 얼굴에 모처럼 밝은 웃음이 번졌다. 부디 그 학생이 남의 것은 알되 자기 것은 모르는 무지에 갇혀 소중한 우리 것을 폄하하는 편견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작품은 곧 작가의 정체성

우리가 전통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어깨가 들썩거리며 흥겨운 춤사위가 나오듯이 민화 속에는 민족의 흥과 멋, 해학적인 삶의 깊이가 스며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민화 작업에 거부감 없이 쉽게 입문하는 것 같다. 민화의 소박함과 자연스러움, 친근함이 누구나 쉽게 다가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하였다가 오랜 세월 동안 붓을 잡고 작업을 하다 보면 작가로 활동하게 되기도 하고, 아니면 마음을 먹고 작가가 되기 위해, 지도자가 되기 위해 첫발을 들인다. 단체전과 개인전을 경험하면서 그간 갈고닦은 기량을 맘껏 발휘하기도 하고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해 학문적 업적을 쌓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매우 바람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민화인들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미술 시장에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민화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몫을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은 그 작가의 거울이라 했다. 그러기에 작가로서 바람직한 인성과 사고력을 향상시켜 작품의 다양성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작가보다 좀 더 크고 많은 작품을 전시장에 내놓는 일도 매우 중요하지만, 현대 민화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도 다 같이 힘을 합쳐 부단하게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수한 전통문화의 표상

얼마 전 우리 민화계에 경사로운 일이 있었다. 윤열수 가회민화박물관 관장이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이다. 이 표창은 한국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소개하고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은 징표라 할 수 있다. 또 이제 정부에서 민화의 존재와 가치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볼 수 있다. 요즘 여러 학회나 기관 등에서도 전통문화의 꽃인 민화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민화의 앞날은 점점 더 밝고 넓어지리라 생각된다. 이제 우리는 민화가 세계로 원활하게 퍼져나가도록 좋은 작품을 많이 작업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하여 우수한 성과물들이 세계 속에 특별한 예술문화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주춧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5년 을미년 새해를 맞아 모든 민화인들이 푸른 초원에서 마음 놓고 풀을 뜯는 양처럼 희망 속에서 여유와 평화를 누리기를 기원한다.

 

글 : 최남경(전업작가회 부회장, 도린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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