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楚漢志 – 항우와 유방의 쟁패

《초한지》는 진나라 말에서 한나라가 세워지기까지의 격동기 항우와 유방의 쟁패를 다룬 역사 소설로서 선조 때에 중국에서 조선으로 소개되어 널리 읽혔는데, 많은 번역본과 개작본이 나오면서 민간으로 퍼져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문학작품이다. 이후 통속소설의 형식 뿐 아니라 잡가 혹은 민요로도 노래되면서 더욱 널리 향유되었고, 그림으로도 그려지게 되었다. 이번 호에는 《초한지》 혹은 <초한가>를 다룬 민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초한지》, 항우와 유방의 대결

《초한지》는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대결하며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해 가는 과정을 그린 역사 소설이다. 항우는 전국시대 초나라 대장군을 지낸 항연項燕의 손자로 귀족 출신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삼촌 항량項梁의 슬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키가 8척이고 힘이 장사였으며 어려서부터 기개가 남달랐다고 전한다. 유방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평민 출신으로 건달들과 어울리다가 진나라 말기의 혼란과 군웅의 봉기 속에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 타도에 참여하게 된 인물이다. 항우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연전연승의 공을 세우며 진나라 수도 함양咸陽으로 들어가 진나라를 무너뜨렸다. 항우는 팽성彭城을 도읍으로 정하고 초패왕楚覇王이라 스스로 칭하였다. 유방은 항우에 앞서 함양을 차지하고 진나라의 항복을 받았지만 항우의 위력에 밀려 이를 포기하고, 항우에게서 한왕漢王의 봉작을 받고 촉 땅으로 피해 위기를 넘겼다. 이후 소하蕭何·장량張良·한신韓信을 중용하여 힘을 기르고, 결국 천하의 패권을 놓고 항우와 겨루었다. 마침내 해하垓下의 결전에서 항우를 겹겹이 포위하여 대파하고 중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유방은 황제에 오르고 수도를 장안長安으로 정하였다.

《초한지》의 대중적 인기와 <초한가>의 유행

초나라와 한나라의 쟁패를 다룬 이 역사 이야기는 후한시대에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와 반고班固가 저술한 《한서》 등의 역사서를 통해 알려졌지만, 그 이야기가 민간으로 저변화되어 그림으로도 그려지게 된 데에는 통속 역사소설인 《서한연의西漢演義》의 유통과 관련이 깊었다. 《서한연의》는 《삼국지연의》등의 중국 통속소설과 함께 선조 연간에 전래되었고 한글로도 번역되어 민간에서도 널리 애독되었다. 《서한연의》라는 제목 보다는 《초한연의楚漢演義》, 《초한전楚漢傳》, 《초한지楚漢志》 등으로 불리었고, 전문全文 단행본보다는 주로 부분 발췌 번역본이 간행되었는데,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에 구활자본 소설과 개작본들의 출판으로 이어져 독자들의 애호가 적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또한 <항장무項莊舞>라는 무극舞劇으로 각색되어 고종 때에는 궁중에서도 공연되었는데, 이는 평안남도 선천지방의 무극을 궁중에 들여온 것으로 홍문연鴻門宴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초한가>, <우미인가>, <홍문연가> 등 제목의 판소리 허두가, 시조, 가사, 잡가, 민요로 널리 애창되었다. 개화기에 유성기 음반으로도 실려 발매되었으니 대중적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초패왕, 우희와 이별하다

《초한지》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은 아무래도 항우와 유방의 마지막 결전이었던 해하의 전투일 것이다. 항우가 사면초가의 수세에 몰려 죽음을 앞둔 처절한 상황이 전개되는데, 전주역사박물관 소장의 고사인물도 병풍 중의 <초한가>는 바로 이 내용을 다루고 있다(도1). 그리고 그림 상단에 적힌 글귀를 보면 잡가 <초한가>의 일부를 발췌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잡가 혹은 민요 <초한가>의 시작 부분이다.

만고영웅 호걸들아 초한승부 들어보소
절인지용絶人之勇 부질없고 순민심順民心이 으뜸이라
한패공의 백만 대병, 구리산에 십면매복
대진을 들러치고 초패왕을 잡으려 할 제
……..중략 ……..
산算 잘 놓는 장자방은 계명산 추야월秋夜月에
옥퉁소를 슬피 불어 팔천제자 흩을 적에

한나라 군사가 구리산에 진을 치고 겹겹이 매복하고 있는 가운데 장량은 옥퉁소를 불며 초나라 음률을 연주한다.
<초한가>는 가을 밤의 쓸쓸한 풍광과 오랫동안 전장을 누벼온 병사들의 피로와 서러움, 고향에서 가장家長이 없이 지내는 가족들의 처량한 처지 등을 애잔하게 묘사하여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항우와 초나라 병사들은 이 심리전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밤새 병사들은 군영에서 대거 이탈하게 된다.

초패왕 거동 보소. 오열하고 일어나서
신세자탄 하는 말이, 내 평생 원하기를
금고金鼓를 울리면서 강동으로 가쟀더니
불행히 패망하니 어이 다시 낯을 들고
초강楚江 사람 다시 보리,
우혜 우혜, 어찌 할까
삼보三步에 주저하고 오보五步에 체읍하니
삼군이 창연하고 눈앞이 캄캄하다.

이것은 잡가 <초한가>의 마지막 대목으로 항우는 결국 오강烏江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전주역사박물관의 <초한가> 그림 상단의 제시題詩는 바로 이 노래 가사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장자방은 계명산 추야월에 옥퉁소를 불어 팔천 제자를 해산시키고 초패왕은 삼보에 체읍하면서 우미인을 이별하다
張子房은 鷄鳴山 秋夜月에 玉筩簫를 불어 八千 弟子를 解散식히고 楚覇王은 三步에 涕泣하면서 虞美人을 離別하다.

그림에서도 험준한 산 속의 군막 앞에 항우와 우희가 이별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멀리 높은 산 위에 장량이 앉아서 퉁소를 불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동아대박물관 소장 《고사인물도》 병풍 중의 <초한가>도 전주역사박물관 소장의 그림과 동일한 도상이며, 동일한 제시題詩가 기입되어 있다(도2). 두 그림에서 차이점이라면 동아대박물관의 <초한가>의 경우 근경의 산에 각종 군기軍旗와 창의 끝이 늘어선 모습이 더해져 사면으로 포위된 항우의 위급한 처지를 말해준다는 점이다. 한편, 산 위에 앉아 퉁소를 불고 있는 장량의 모습은 세속을 벗어난 신선의 이미지를 닮았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둥실 떠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두 그림에서 우희의 복장이 모두 노랑저고리 다홍치마의 한복인 점이다. 이야기는 중국의 것이지만 등장인물은 한국인의 모습인 셈이다. 중국의 고사가 한국의 것으로 녹아든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명장 한신韓信의 정형 전투

그런가하면 《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의 내용을 텍스트와 함께 충실히 담은 그림도 전한다. 한신은 회음淮陰 사람으로 회음후에 봉해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회음후열전> 초본 두 폭은 대장군 한신의 전공戰功을 주제로 한 것이다.
한나라의 대장에 임명된 한신은 초나라와의 결전을 위해 주변국을 하나씩 복속시켜 나갔는데 두 그림은 조나라와의 결전을 앞두었을 때의 일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화폭의 상단과 하단에 풍부하게 산수 배경을 배치하고 화면 중앙에 핵심 장면을 그려 넣었는데 채색을 하지 않은 초본이다. 화폭의 상단에는 <회음후열전> 중의 해당 텍스트를 써넣었다.
<도3>의 화면 상단에는 “조왕趙王 헐歇과 성안군成安君진여陳餘는 한나라 군이 습격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병사를 정형 입구에 모으니 20만을 헤아렸다.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가 성안군에게 말하였다. 성안군은 의병이라 자칭하고 있어 그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한신은 사람을 풀어 광무군의 계책이 쓰이지 않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成安君陳餘聞漢且襲之也 聚兵井陘口號稱二十萬 廣武君李左車說成安君 成安君常自稱義兵 不用詐謀奇計 韓信使人閒視知其不用廣武君策.” <도4>는 이어지는 내용으로 “한신은 비장을 시켜 전군에게 음식을 돌리고 말하기를 오늘 조군을 격파한 뒤 회식을 할 것이다. 여러 장수들은 믿지 않고 건성으로 알았다고 답하였다韓信令裨將傳飱曰今日破趙會食諸將皆莫信佯 應曰諾.”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한신이 정형에서 내려와 조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의 일을 그린 것이다. 한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좌거李左車는 조왕趙王과 성안군成安君 진여陳餘에게 주장하기를 정형은 두 대의 수레가 함께 갈 수 없을 정도로 협소한 길이 수백 리나 계속되니 한군의 본대와 군량수송대 사이를 기습하여 차단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안군은 의로운 군사는 기습작전을 쓰지 않는 법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좌거의 계략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첩보를 접한 한신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군 격파를 확신하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이들 두 그림에 담긴 내용이다. 이후 한신은 조나라에 대승하였고 적장이지만 뛰어난 책략을 지녔던 이좌거를 놓아주며 연나라와 제나라를 칠 계책을 묻는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이들 두 초본은 화면의 구성이 좋고 능숙한 필치에 인물과 산수의 묘사력이 뛰어나 도화서의 화원이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화면 상단의 단정한 해서체로 쓴 제시 또한 우수한 필력을 보여준다.

초한지, 교훈과 감동이 있는 영웅호걸들의 이야기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취하고자 겨루는 난세에 등장한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이야기, 그리고 맹장 항우의 지고지순한 순애보적 사랑과 비극적 결말 등이 어우러져 《초한지》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선사한다. 역사적 사실이 토대가 되어 교훈과 감동이 있는 이야기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초한지》의 이야기는 대중음악과 회화로 널리 향유되었던 것이다.


글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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