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본 속에서 되살아난 촉한의 명장 – 세월의 흔적 담고 있는 장비 초본

이달에 살펴볼 초본은 한 인물의 초본이다. 이 인물도 초본을 통해 우리가 그간 현재의 초본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초본 속 인물은 촉한의 무장 장비

이 초본은 한 인물을 그린 초본이다. 초본 속 인물은 풍채가 매우 좋으며 갑옷을 입고 언월도와 칼을 든 모습인데, 언월도 손잡이 끝부분이 먹으로 뭉개진 것을 제외하면, 얼굴과 갑옷의 묘사가 매우 섬세한 것을 볼 수 있다. 인물의 얼굴을 살펴보면 뻣뻣하고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을 덮고있는데 우리가 아는 인물들 중 이렇게 수염을 묘사할 수 있는 인물을 꼽으라 하면 장비 외에는 쉽게 이름을 대지 못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초본 오른쪽 상단을 살펴보면 장비張飛라고 쓰여 있는 것을 통해 이 초본 속 인물이 장비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초본의 왼쪽에는 ‘촉한소열전蜀漢昭烈前’이라고 썼다가 먹으로 지운 흔적이 남아있다. 이를 통해 이 초본 속 인물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장비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언월도가 그려졌으니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떠올리며 이 초본 속 인물이 관우라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초본 속의 언월도는 일반인들이 장팔사모丈八蛇矛라는 창을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잘 알려진 언월도의 형태로 장팔사모를 그렸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장비 초본의 수난시대

장비 초본은 본래 매우 섬세하게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지저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촉한소열전蜀漢昭烈前이 먹으로 지워진 것 말고도 그림 오른쪽 중간 부분에는 알 수 없는 글씨가 먹으로 지워진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시작한 사람이 초본에 수정을 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흔적들을 통해 우리는 초본의 제작과정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후대에 가미된 흔적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먹으로 그려진 장비의 모습에는 볼펜으로 덧그린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선을 따라 그리는 장난과 비슷한 형태로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촉한소열전蜀漢昭烈前이 먹으로 지워진 부분에는 볼펜으로 ‘곰팡이’라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여 있는데, 초본 어디에도 곰팡이가 피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기에 왜 이런 글씨를 썼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또한 그림 왼쪽 하단에는 ‘달이 밝아 오동추야’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데, 노래 가사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흔적들이 왜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먹으로 지워진 흔적들은 초본이 처음 그려질 당시에 생긴 흔적들이며, 볼펜의 흔적들은 이 초본을 소장하고 있었던 사람이 남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볼펜으로 덧그려진 흔적들은 이 초본이 그려진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덧그려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아마도 ‘달이 밝아 오동추야’라는 노래가 유행하던 시점에 그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초본은 보존상태가 꽤 괜찮은 축에 속하는 초본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소장자가 이 초본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장난삼아 초본에 손을 대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장난으로는 이 초본의 가치가 손상되지 않았고, 오히려 세상이 초본을 바라보는 눈이 어떠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 되었다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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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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