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본의 변주, 산신도 초본 Ⅱ

도3 석옹 철유 필 산수도, 지본수묵, 36.5×253.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이번 시간에는 지난 8월호에 소개한 사진 속 산신도 초본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산신도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지난 시간에 소개했던 산신도 초본(도1)은 미국의 민화 연구자 칼 스트롬(Carl Strom)과 제니퍼 스트롬(Jennifer Strom) 부부가 1974년부터 1975년까지 국내 사찰들을 일일이 찾아가 촬영한 유물 중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이 초본에 대한 다른 정보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 언급한 것처럼 서울역사박물관에 이 초본과 유사한 산신도가 있어 이를 조사하여 초본 연구에 활용하고자 한다.

글 이다정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사진 속 초본과 유사한 산신도, 누가 그렸나?

이번 시간에 소개할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산신도(도2)는 기증자인 정재淨財 스님의 스승인 석옹 스님이 물려주신 산신도라고 한다. 석옹 스님은 석옹 철유(石翁 喆侑, 1851~1917)이다. 철유는 1868년에 함경남도 안변군에 있는 설봉산 석왕사釋王寺에서 출가하여, 건봉사乾鳳寺의 화승으로 알려진 중봉中峰 혜호慧皓에게 불화를 배워 약 40년간 주로 강원 지역과 서울·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이때 고산축연古山竺演, 하은위상霞隱偉相, 허곡긍순虛谷亘順 등 여러 화승과 공동 작업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고산축연과 함께 당대 최고의 화승으로 불렸는데, 《근역서화징》과 일제강점기 신문기사, 그리고 현전하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그가 불화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회화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철유의 산수화를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도3).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산신도에서 철유 특유의 화풍이 엿보이고 있어, 이 산신도는 철유의 작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도1 산신도 초본, 칼 스트롬 촬영

호랑이가 닮았다

도1의 산신도 초본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산신도는 기본적으로 소나무와 괴석의 위치, 산신의 자세가 유사하다. 그러나 가장 큰 유사점은 바로 호랑이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초본 속 호랑이의 얼굴과 산신도 속 호랑이의 얼굴 형태를 비교하면, 둘 다 작고 끝이 둥그런 귀와 얼굴에 비해 큰 눈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입술의 표현도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호랑이의 몸통은 산신의 몸에 가려 거의 드러나지 않고, 얼굴도 일부 가려져 있으며, 꼬리는 산신의 몸 뒤쪽으로 나와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있는 형태이다.
물론 호랑이의 얼굴이 유사하다고 해서 같은 화가가 그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불화의 경우, 수화승 아래 여러 명의 화승이 모여 공동으로 작업해 불화를 완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신도와 독성도 등 작은 크기의 불화는 단독으로 그리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이 산신도 또한 단독으로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단 산신도와 산신도 초본 모두 화기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호랑이의 얼굴과 인물의 자세가 유사하다는 것을 가지고 산신도 초본과 산신도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무리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작품 하나하나마다 자신만의 화풍이 반영되어 있어 도상의 유사성으로 작가를 유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 작가가 호랑이를 그릴 경우 기존의 작품을 방작倣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만의 스타일로 호랑이를 그리는데, 이때 작가가 그린 여러 점의 호랑이 그림을 비교할 때 서로 유사한 형태로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초본은 화면 밑에 두고 베껴 그릴 때 초본과 터럭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모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에 초본과 달라진 부분은 작가가 자신의 실력에 따라 수정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초본과 실제 그림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를 근거로 산신도 초본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산신도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도2 산신도, 87×72㎝,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가회민화박물관 사진 제공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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