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본의 변주, 산신도 초본 Ⅰ

도1 산신도 초본, 칼 스트롬 촬영



이번 호에서 소개할 유물은 산신도 초본을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 속 초본을 통해 초본이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글 이다정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사진 속 초본을 살펴보자

이번에 소개할 초본은 산신도 초본으로 현재는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사진 속 초본은 1974~1975년 미국의 민화 연구자 칼 스트롬(Carl Strom)과 제니퍼 스트롬(Jennifer Strom) 부부가 국내 사찰들을 일일이 찾아가 촬영한 유물 중 하나이다(도1). 촬영 당시에도 초본은 매우 낡은 모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본은 나무틀에 붙어있는 모습인데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처럼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하다. 그 이유는 초본 위에 붙어있던 그림을 떼어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여러 부분에 안료의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초본 상단의 나무 부분에 초록색 안료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초본 위에 그렸던 그림에 칠한 안료가 초본에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편 초본에는 사각형으로 구획한 선이 보이는데 이는 초본을 그린 후 장황을 위해 변아邊兒(가장자리)를 두를 부분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불화와 초본이 분리되어있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통도사를 비롯한 큰 사찰에는 불화와 초본이 함께 남아있는 유물이 여러 점 있으며, 진해 정암사와 같은 소규모의 사찰에도 불화와 초본이 함께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도2), (도3). 이는 불화가 낡으면 다시 그리기 위해 분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절도를 목적으로 그림 부분만 잘라 낸 경우도 있는데, 불화는 일반적으로 나무틀에 부착되어 있어 운반이 어렵기 때문에, 쉽게 운반하기 위해 그림 부분만 자른 후 돌돌 말아서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속 초본 상단에 종이가 뜯어진 부분을 살펴보면 종이가 여러 겹 겹쳐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종이를 여러 번 겹친 합지 위에 초본을 붙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초본 아랫부분에는 종이가 잘린 듯한 모습이 보이는데 이를 통해 이 초본이 한 장의 종이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여러 장의 종이를 이어붙여 그린 그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의 크기가 상당히 큰 편이라는 추정과 남은 종이를 초본으로 활용했다는 추정 또한 해볼 수 있다.
초본 속 도상들을 살펴보면 그림 중앙 오른쪽에 산신이 앉아있는데, 산신은 머리에 관을 쓰고 있고, 왼손에는 파초잎을 들고 있으며, 한쪽 무릎을 세우고 옷자락을 늘어뜨린 채 앉아있다. 산신의 옷자락 뒤로는 호랑이가 엎드려있는데, 얼굴과 발 일부분만 내놓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호랑이가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산신의 뒤로는 호랑이의 꼬리가 길게 나와 있고,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산신 왼쪽에는 과일을 든 여인과 불로초를 든 동자가 서 있다. 인물들 주변에는 거친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다.
안타깝게도 이 초본을 촬영한 장소가 어디인지, 현재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 이 초본으로 그린 산신도는 어디로 갔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어 더 이상의 연구가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까지도 사진 속 초본과 흡사한 형태의 산신도가 나타나지 않았다.

(위) 도2 진해 정암사 아미타 후불탱 ⓒ문화재청 / (아래) 도3 진해 정암사 아미타 후불탱 초본 ⓒ문화재청

다른 듯 닮은 그림이 나타났다

이 초본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유사성을 지닌 형태의 산신도가 현재 서울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산신도는 정재淨財 스님이 2003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유물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제작된 그림으로 추정되며 소장 경위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증자인 정재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 산신도는 정재 스님의 스승인 석옹 스님이 물려주신 것으로 원래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에 있는 석굴암에 모셨던 산신도라고 한다. 도봉산 석굴암은 신라 시대부터 있었던 사찰로, 1935년 응담應潭 스님이 중창하였으나 6.25 때 소실된 후 다시 중창한 사찰이다.
그렇다면 사진 속 초본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산신도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다음 호에서는 사진 속 산신도 초본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산신도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산신도 초본과 같은 시기에 촬영된 또 다른 초본을 살펴보고, 각 그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6단계 법칙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인간관계는 6단계만 거치면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회 이론이다. 나는 이 이론을 인간관계가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되는지를 생각한다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민화만 공부해서는 안 될 이유다.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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