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한 이는 잘못을 숨기지 않고 물러날 때를 안다, 염자도

염자도

문자도는 한자문화권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조형언어로, 중국 고대의 한자의 형성과 그 맥을 같이한다. 문자를 회화의 요소로 간주하여 장식한 예는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의 조서鳥書나 충서蟲書 등으로 시작되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중기로부터 문자도가 유입되어 집안을 치장하기 위한 장식그림으로 유행하게 되었고 의례용으로 사용되면서 민화풍의 문자도가 대거 제작되게 되었다. 그중 효제문자도의 일곱 번째 글자, 염자도廉字圖 이야기.

문자도는 글자의 의미와 관계가 있는 크게 길상적인 소재의 ‘수壽’·‘복福’ 자를 중심으로 한 수복문자도壽福文字圖와 감계·윤리적인 소재의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를 8폭으로 구성한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가 대표적이다. 효제문자도는 8폭 병풍으로 제작되어 방에 두고 항시 보며 그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하는 교육적 목적과 방 안을 장식하고, 또한 혼례 및 제례의 의례용으로 사용되는 실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효제충신예의염치’ 여덟 글자를 각 폭에 한 글자씩 배치시키며, 그 안에 각 글자와 관련된 고사 중에서도 대표적인 상징도상을 도해하거나 그 글자와 관련된 의미를 지닌 소재를 그려 넣고, 그 소재들로 글자 획을 대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여덟 글자로 구성된 효제문자도가 조선후기에 성행하게 된 것은 당시 8폭으로 구성된 병풍의 애호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효제문자도의 하나인 염자도廉字圖

이번 가회민화박물관 컬렉션 소개에서는 효제문자도 8폭을 이루는 여덟 글자 중의 하나인 ‘염廉’만을 모아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염’은 뜻을 나타내는 호广와 음音을 나타내는 겸兼으로 이루어진 형성문자로 청렴, 결백 등을 의미한다. ‘염’은 《논어論語》에서 ‘효제충신예의’의 덕목과 같이 언급되지 않고 《관자管子》에서 ‘네 가지 강령’ 중의 하나로 ‘잘못을 은폐하지 않음’이란 뜻으로 언급되고 있다. 효제문자도에서 ‘염’자를 표현하는 도상들은 이와 관련된 고사나 그러한 내용을 상징으로 담고 있는 소재들이 사용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소재는 엄광과 장한의 고사, 허유와 소부의 고사, 봉황, 게, 소나무, 국화 등이 있다.

 
청렴하고 고고한 봉황의 자태

염자도첫 번째 ‘염자도’는 효제문자도 8폭 병풍의 일부로 굵은 획의 글자 안에 도상들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이처럼 글자 안에 그림을 삽입한 형식으로 나타나다가 고사의 일부 상징물이 글자 밖으로 나와 획을 대신하게 되었다. 약간 흘려 쓴 강한 필치가 느껴지는 ‘염’자 안 맨 위에는 물 위를 헤엄치는 거북이가, 그 아래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용이, 아래에 두 마리의 봉황이 그려져 있다. 글자 안에 있는 소재들은 그 필치와 함께 흐르고 있다. 채색은 주로 담청색으로 하였으며 붉은색과 노란색은 절제되어 시원한 멋을 풍기고 있다.
용과 거북이는 ‘충’자에 주로 사용되는 상징적인 도상들임에도 불구하고 ‘염’자에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 효제문자도 8폭 병풍의 다른 글자들에 들어 있는 그림들을 보았을 때, 산수, 화조, 동물, 인물, 누각 등을 적당히 배치하여 그 글자의 내용과 합치한 소재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글자의 내용을 충실하게 도해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염’자 안에 봉황과 오동나무를 그려 넣은 것에서 아예 ‘염’자의 그 의미를 잊고 그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봉황은 고대 중국 사람들이 상상한 상서로운 새로 고귀하고 품위 있고 빼어난 것의 표상으로 오동나무에만 앉는 신령스러운 새이다. 효제문자도 ‘염’에서 봉황은 청렴을 의미한다. 이는 ‘봉불탁속鳳不啄粟’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데, 새 중의 왕인 봉황은 천 길을 나는데 굶주릴지언정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청렴함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그림에서 ‘염’자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봉황이 그 획을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봉황은 단정하고, 엄숙하고, 위엄 있는 자세로 왼쪽을 주시하고 있다. 봉황은 화려한 깃털은 청색, 적색, 황색으로 옅게 채색되어 있다. 자유분방하게 활개 친 날개와 함께 적색과 청색이 교차되어 채색된 꼬리 역시 솟구치고 있다. 봉황의 발은 허공에 보이지 않는 오동나무 가지를 붙잡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아래 굵은 획과 가는 획의 조화를 이루며 쓰인 염자 안에는 도식화된 꽃과 집이 그려져 있는데, ‘염’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담기보다는 장식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화면 상단 우측에는 ‘봉은 천 길을 날며 주려도 조 따위는 먹지 않는다’는 뜻의 봉비천인 기불탁속鳳飛千仞 飢不啄粟이 적혀 있다. 그리고 좌측에는 삼경방화 송국유존三徑訪花 松菊猶存라는 화제가 적혀 있는데,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세 갈래 길 비록 황폐해졌어도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있구나’라는 뜻의 ‘삼경취황 송국유존三徑就荒 松菊猶存’의 변형으로 보인다.

물러날 때를 아는 게를 닮은 군자君子

세 번째 그림은 문자 ‘염’과 함께 그 아래에 화조도가 그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는 조선후기 경제의 발달로 사치소비성향이 늘어남에 따라 기복호사풍조가 조장되면서 민간에도 그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장식성이 증가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성격도 감계·교화적인 윤리적 성격에서 점차 장식적, 길상적인 기능으로 변화되어 문자와 산수화, 화조화, 책거리 등과 결합되는 모습을 보이는 그림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세 번째 그림에서는 두 번째 그림에서 봉황이 있던 자리를 게가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염廉을 아는 군자는 물러날 때를 알아 물러날 줄 아는 것이 중요하기에 뒷걸음질 치는 모습의 게를 그린 것이다. 이 같은 해석은 화제 가운데 ‘염계한천 전진후퇴廉溪寒川 前進後退’에서 근거한 것이다. 게는 전체적으로 담묵담채로 표현되었으나 몸통만은 농묵으로 그 윤곽선을 그려 놓았다.

절개와 순수의 상징, 소나무와 연꽃

염자도‘염’자 안에는 소나무와 함께 도식화된 꽃문양이 그려져 있어 장식성을 강화되었다. 소나무는 눈서리가 몰아치는 한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아 대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일컬어졌으며 선비들에게 군자 또는 절개의 상징으로 칭송되었기에 ‘염’자의 주요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는데, ‘염’자 안에 있는 이 소나무는 그 획의 모습에 맞추어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진채로 처리되었다. ‘염’자 아래에는 연화도가 그려져 있는데,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나지만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는 생태적 특징으로 청결함, 무구함, 순수함 등을 상징하게 되어, 군자의 꽃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러한 연꽃의 의미 때문에 ‘염’자와 함께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옛날, ‘염廉’은 대개 관직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덕목으로만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분야,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러므로 세금을 제때 내는 작은 일에서부터 자신이 맡은 일을 겸손하게 수행하는 것, 그로인해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좀 더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모두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염廉’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글 : 박혜진(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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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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