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선녀, 새해를 노래하다 선녀독금(仙女獨琴)

선녀독금(仙女獨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민화의 정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작가를 알 수 없는 그림’, ‘그려진 연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그림’. 바로 민화의 대표적인 특징을 설명한 것이다. 민화초본도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 ‘과감하게’ 일반적인 특징에서 벗어난 민화초본이 있다. 오늘은 이 특별한 민화초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무엇을 그린 그림인가

왼편의 그림은 거문고를 연주하는 여인을 화면에 가득 차게 그린 그림이다. 왼쪽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쓰여있다.
‘甲申二月二十三日草 仙女獨琴(갑신이월이십삼일초 선녀독금)’
다소 보기 드문, 선녀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그림인데, 표현형태로 보아 무신도로 추정된다. 그림의 용도는 ‘선녀독금’이라는 제목으로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자세히 보면 선녀님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몇 해 전엔 드라마에도 선녀님이 나와 인기를 끌었다. 왕꽃선녀님. 모르는 분들이라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아! 이거~’ 라고 하시리라 믿는다. 바로 그 선녀님이 이 그림의 주제인 것이다.

연도가 기록된 그림

우리는 이제 이 그림에 쓰인 연도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초본에 쓰인 갑신년 이월은 1884년 또는 1944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민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 초본의 사진과 연도만 보고 2004년에 그려진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으나, 요즘 작가들은 이 초본제작에 사용된 크라프트지보다 훨씬 좋은 종이를 쓰고 있음을 알린다. 이런 주장이 나온다면 그 주장 자체가 초본의 보존상태가 그만큼 좋다는 방증일 게다.
이제 연도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재질을 살펴보도록 하자. 얇은 갈색 크라프트지에 한지가 덧대어져 있다. 우리나라에 양지洋紙가 처음 수입된 시기는 1884년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수입된 양지는 매우 고급종이로 인식되었으며, 수입량이 적어 서민들이 민화를 그릴 수 있을 만큼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 초본이 제작된 것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양지가 널리 보급된 1944년도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종이 앞뒤에 그림이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1944년도는 태평양 전쟁에 필요한 물자공급을 위해 일본의 수탈이 극단적으로 심하던 시기였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 작가가 그림을 그리다 실수를 하자 뒷면에 새로 그려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초본 뒤에 붙어있는 두꺼운 한지는 내구성 보강을 위해 나중에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이 초본을 통해 일제강점기 무단통치와 문화통치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전통신앙의 예맥이 조용히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일제의 탄압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무사히 전해져 온 무신도 초본처럼, 삶에 지칠 때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우리민족 고유의 생명력이 흐르고 있음을 기억하고 씩씩하게 올 한해를 맞이하시길 바란다.

 

글 :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