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활동을 위한 전략 모색하기 ② 창의와 상상력을 위한 이론과 실제Ⅱ

아티스트로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창의와 상상력. 이 단어들은 추상적인 단어이지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위를 통해 발현할 수 있고 또한 기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미술이 정신과 상호작용하는 그 지점을 잃지 않는 것이며 동시에 예술로서의 매력적인 시각 경험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달에 이어 상상력을 기르고 이를 조형으로 완성해 내기 위한 기술적 방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글 박옥생(미술평론가)


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도구

① 생각의 탄생
오버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쓴 《생각의 탄생》은 상상력의 도구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문학, 음악, 미술을 망라한 방대한 작품들을 예로 들며 그 속에 구현된 상상력의 단계를 말한다. 《생각의 탄생》에는 생각의 도구로 관찰하기, 형상화하기, 추상화하기, 패턴인식하기, 패턴형성하기, 유추하기,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하기,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총 13가지 상상력 도구에 대해 말한다. 이것들은 창의력의 도구이자 상호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상상력의 단계이다.
이를 다시 한국 전통 회화의 새로운 모색 방안으로 본다면 관찰하기, 유추하기, 구조화하기, 패턴화하기, 의인화하기로 정리될 수 있다. 이 마지막 단계의 의인화는 대상물에 감정이입하기, 망아忘我와 같은 주객의 일체, 은유와 상징, 미적 관조의 단계로 나뉘어 볼 수 있다. 작가는 나의 작품이 관찰하기의 단계인지 유추, 추상, 놀이의 어느 단계에서 작업이 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실 《생각의 탄생》에 들어있는 13가지의 도구가 조형으로 가시화될 때에는 두세 가지의 단계들이 혼용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민화 그 자체를 보고 상상의 단계에 대해 말한다면 궁중장식화처럼 구체성이 뛰어난 작품들은 관찰하기에 들어갈 것이다. 생략을 과감히 했거나 도형화된 작품들은 추상화와 패턴화로 볼 수 있다. 관찰하기와 추상화, 패턴화와 같은 몇 가지의 생각 단계가 전통민화에 적용됐음을 볼 수 있다.


도2 김홍주, < Untitle >, 1994-1995, Acrylic on canvas, 226×145㎝, 국제갤러리 제공



도3 김홍주, < Untitle >, 2013, Acrylic on canvas, 91×91㎝, 국제갤러리 제공



② 관찰하기, 추상화 패턴화, 몸으로 생각하기
몇 가지 상상력의 도구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예로 김홍주 작가의 작품을 들 수 있다. 김홍주는 1970년대의 실제 거울이나 창틀 속에 인물이나 풍경을 접목한 실험적인 작품을 구현함로써 실제에 관한 관찰하기, 인식하기를 시작했다(도1). 90년대의 문자 시리즈들에서는 문자인 듯 아닌듯한 형태의 추상화와 반복적인 패턴들을 등장시킨다(도2). 2000년대에는 화면을 압도하는 거대한 캔버스에 섬세한 꽃을 닮은 형상들을 그림으로써 대상의 형상을 잊어버리고 작가의 몸이 꽃으로 변환되는, 몸으로 생각한 꽃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도3). 몸으로 체득한 형상의 세계는 꽃이면서 산수이고 꽃이면서 과일이 되거나 그리기 자체로 변형되고 있다. 이렇듯 작가의 작품에는 오랜 시간 활동을 통해 의미와 형태에 관한 관찰하기, 추상화하기, 패턴화하기, 몸으로 생각하기 그리고 변형하기와 같은 생각의 도구들이 작동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③ 포정庖丁이 소를 잡다
상상력의 첫 번째 도구인 관찰하기와 관련해 장자莊子의 포정해우庖丁解牛는 함축적이고 문학적인 지혜를 준다. 포정이 소를 잡는데 소 잡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게 온통 소뿐이었지만, 3년 후에는 소 전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후 소를 잡는데 칼을 놀리는 소리가 상나라 당나라의 음악과 같았다고 한다. 이는 동양예술철학에서 기술의 습득과 연마, 예술활동의 정신적인 경지를 논하는 것이다. 소의 형태를 관찰하기, 소 잡기의 기술 연마하기, 소의 구조적 대상을 인식하기 그리고 대상을 초월해 소와 내가 하나의 일체가 되는 자유의 경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포정해우는 관찰하기와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하기, 차원적 사고하기에 관한 통찰이라 하겠다.
자유로운 화면을 구현할 때 중요한 것은 붓의 움직임과 형태를 운용하는 기술일 것이다. 전통회화의 기술을 연마할 때 《개자원화전芥子園畫傳》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개자원화전》은 나무, 꽃, 인물, 집과 같은 전통 회화의 모범이 되는 화보인데, 그리기의 기법에서부터 형태의 본질을 이상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형상들의 교본이다. 《개자원화전》을 통한 반복적이고 충분한 학습과 이해의 과정은 훗날 전통도상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실력에 대한 기초가 된다. 민화교육이 창의로 나아가는데 있어 전통을 선행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도4 김신혜, <연화도>, 2013, 장지에 채색, 130×162㎝



도5 김신혜, <페리에산수>, 2013, 장지에 채색, 45.5×112㎝



도6 김신혜, < Hibiscus and two blue birds >, 2012, 장지에 채색, 80×80㎝


매력적인 비주얼은 어떻게 만들까

① 이미지가 살아 있다
현대는 이미지 사회이다.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에 노출된 우리는 자아를 SNS에 잘 꾸며진 사진들로 대체시키고 있다. 인위적으로 가공된 미디어 속의 현실을 실제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현대미술에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고 이미지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가상현실의 모습들이 들어 있다. 이처럼 가상현실이 지배하는 사회를 보드리야르는(Jean Baudrillard)는 시뮬라크르의 사회하고 명명했다. 보드리야르의 가상현실은 우리가 배우를 좋아할 때 그의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에 열광하는 현상을 말한다. 마를린 먼로의 실제 인물이 사진을 통해 복제되고 이 사진은 앤디워홀에 의해 복제의 복제가 되어 영원히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의 마를린 먼로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둥둥 떠다니는 무한 복제된 가상의 먼로에 열광하는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에서 주인공은 아바타의 세계가 실제 세계이고 현실이 꿈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동시대 예술에서 보드리야르와 매트릭스, 아바타 등 현대문화 전반에 걸친 저서와 작품들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현대예술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
이미지의 무한 반복, 복제, 디지털화된 색의 강한 변주, 우리의 일상을 고전이나 가상의 일상으로 대체하는 보드리야르의 개념은 많은 작가들에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김신혜 작가의 <생수 시리즈>는 상품 이미지가 살아 움직이는 가상현실을 대변한다(도4, 도5, 도6). 우리는 겨울의 매화를 본 적이 없다. 사실 여름날의 연꽃을 본 기억도 별도 없다. 상품 안에 그려진 매화나 연꽃을 보면서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즉 실제의 산수와 자연이 상품 속의 이미지로 대체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아리조나 음료나 패리에쥬에, 후지 음료를 들이키며 그 단어와 이미지가 명명한 세계를 실제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김신혜의 작품은 전통회화가 동시대미술로의 시각적 매력을 확보하는 흥미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문자가 이미지로 변환되거나 이미지가 살아서 풍경을 이루거나 동화나 신화의 스토리가 일상이 되는 모습일 것이다.


도7 고은주, < Pray for a child_점지 >, 2018, 비단위 채색, 103×153㎝



(위)도8 고은주, <숨은꽃찾기>, 2019, 90×230㎝×3pc, 종이컷팅
(아래)도9 도8의 부분



② 화조도에 꽃이 없다
데리다(Jacques Derrida)는 현대사회를 해체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그는 ‘해체’라는 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을 제시했다.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은 균형 잡히고 안전하고 견고한 의미들을 분리하고 떼어내어 불완전한 상태로 변환시켰다. 데리다의 해체는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정착했고 패션, 미술, 건축 등 문화전반에 자리함으로써 해체의 시대를 정립했다.
전통의 꽃은 더 이상 부귀와 영화, 영성의 상징으로서의 꽃이 아니다. 이제 꽃은 일상적이거나 전혀 다른 의미이거나 또는 의미가 없이 의미 주위를 맴돈다. 꽃의 형태 자체가 놀이나 유희로서 그 형상만을 유지·해체되거나 꽃이 있었다는 흔적만 남기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따라서 동시대 작가들에게서 발견되는 도상의 차용은 그 전통성의 의미와 상징과는 무관하게 시각적 유희만을 내포하는 경우가 흔하다.
고은주가 최근 보여주는 설치와 평면 작품들은 꽃의 해체에 관한 시각을 보여준다(도7, 도8). 신성시 여겨졌던 꽃은 잘리고 오려짐으로써 흔적만을 남기고, 작가의 사적 염원을 기도하는 부적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적 염원은 설치작품으로 재탄생하며 집단적인 제의로서의 상징체계로 재조합 되고 있다. 조환의 스틸, 우레탄으로 벽면에 부착된 <사군자 시리즈>들(도10, 도11)은 ‘동시대미술로서의 전통’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작가는 종이와 먹의 재료와 사군자의 도상에서 오는 전통의 정신성을 반질거리는 물성으로 대체시키고 있다. 전통의 정신을 물질로, 깊이를 표면으로 시각적 경험을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12 정해윤, < Relation >, 2011,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130×162㎝, 가나아트 갤러리 서울 제공 ©정해윤



도13 정해윤, < Memory on the way home >, 2010, 130×162㎝, 가나아트 갤러리 서울 제공 ©정해윤



(왼쪽) 도10 조환, < Untitled >, 2016, Steel polyurethane, 98×60㎝
(오른쪽) 도11 조환, < Untitle >, 2013, Steel polyurethane, 236×112×10㎝


창의력의 관문으로 나아가기 위해

상상력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지각의 고립이 필요하다. 어느 미학자의 말에 의하면 지각은 고립화하고 집중화의 과정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상상력이 뛰어난 이들은 특정 대상을 바라볼 때 결코 대상의 표면 위에 머무르지 않고, 대상의 내부까지 통찰하여 그 본질을 직관한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원초적인 마음으로 가닿는 것이다. 지각의 고립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예술적 영감을 얻게 되는 순간이다.
창의력의 관문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앨리스가 토끼 굴에 빠지면서 갖가지 상상과 모험을 시작하듯 몇 가지의 매개체를 신나는 모험 삼아 활용할 수 있다. 바슐라르는 물질적 상상력에서 물, 불, 공기, 흙(대지)이 인간의 창조성을 이끌어낸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모네의 작품에서 여름날의 물위에 핀 수련이나 저 먼 곳의 지평선(대지)은 인간의 상상력을 무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는 집, 조개, 내밀한 다락방, 서랍, 옷장, 안과 밖과 같은 공간이 어떻게 인간을 시적 상상의 세계로 끌고 가는지 설명한다.
창의력을 위한 직접적인 기술을 얻고 싶다면 물, 대지, 집, 서랍, 옷장과 같은 모티프를 사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정해윤의 < Relation >, < Memory on the way home > 작품을 보자(도13). 우리는 작품을 통해 작가만의 내밀한 공간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 서랍장엔 하늘도 있고 나무도 있고 우리의 잃어버린 유년기도 있다. 가상 속의 기계적인 반복과 닮은 서랍 속에는 회복해야 할 그리움, 추억과 같은 문학적 상상력이 가득하다.
창의와 상상력은 추상적인 단어이지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위를 통해 발현할 수 있고 또한 기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미술이 정신과 상호작용하는 그 지점을 잃지 않는 것이며 동시에 예술로서의 매력적인 시각 경험을 제시해야 한다. 앞으로 작가들이 구현할 의미 있는 창작 활동들을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가스통 바슐라르 Gaston Bachelard, 곽광수 옮김, 《공간의 시학》, 동문선, 2003
조민환, 《중국철학과 예술정신》, 예문서원, 1997
박정자, 《마이클 잭슨에서 데리다까지》, 기파랑, 2009

박옥생ㅣ미술평론가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한원미술관 학예사를 역임했으
며 <신동아>, <월간조선>에서 미술평론을 연재했다.
현재 예술 플랫폼 서울스톡코퍼레이션 USA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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