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 – 원로 미술사학자 항산 안휘준

월간<민화>가 창간5주년을 기념해 원로 미술사학자 항산 안휘준 교수와 대담을 나눴다. ‘항산恒山’ 이라는 호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한국미술사를 지켜온 그에게 민화가 가진 미술사적 의미와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어보았다.


한국미술사의 적토성산 이루다

원로 미술사학자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79)는 한국회화사의 개척자이다. 안 교수가 연구에 주력했던 1960년대 말은 광복 이후 미술사학의 기틀을 잡아가는 시기이긴 했지만, 회화 부문은 여전히 척박한 상황이었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1기생으로 입학해 인류학자나 고고학자를 꿈꿨던 안휘준 교수 역시 처음엔 한국회화사 부문이 엄두가 나질 않았지만, 지도교수였던 삼불 김원룡 교수와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여당 김재원 선생의 권유로 한국회화사 연구에 발을 내딛었다. 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수학했으며, 1974년 귀국해 그가 익힌 학문적 체계나 방법론을 전파함으로써 한국회화사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는 그 공을 겸허히 스승에게 돌렸다.
“저는 은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미술사가예요. 김원룡 교수와 김재원 선생님이야말로 미술사의 선구자입니다. 최고의 은사들을 만난 덕분에 작은 학자가 될 수 있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공부한 모든 학생들이 은사들의 학은學恩을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 미술사학 교수로서 30여년의 강단 생활을 마치고 2006년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명지대 석좌교수,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초대 이사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바쁜 행보를 이어갔으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40여권의 서적 및 100여편의 학술논문을 선보였다. 일생을 미술사에 바친 투혼의 대학자, 황무지나 다름없던 한국회화사 영역을 종래 푸르른 산으로 가꿔낸 안휘준 교수를 만났다.

창간호 인터뷰 이후 본지 단독 인터뷰는 5년만입니다. 최근의 근황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저는 요즘 여러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회화의 4대가》라는 책인데 역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화가 4명인 통일신라의 ‘솔거’, 고려의 ‘이녕’, 조선초기의 ‘안견’, 조선후기의 ‘겸재정선’에 대한 이야기로 그간 관련해 쓴 글들을 전부 모아 출판할 예정입니다. 또 하나는 어느 미술사가의 연구사라고나 할까, 책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연구하면서 쓴 글들을 모아보려 합니다. 1장은 ‘제 학문적 발자취’로 연구사 중심에 대한 내용, 2장은 ‘제가 어떤 책들을 왜 냈는가’에 대한 것으로 저서 40여권의 서문들을 모을 거에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는 서문을 아주 중요하게 여겨요. 책을 낼 때마다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여건 등을 언급하면서 책의 핵심적 내용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3장은 ‘나의 학문적 봉사’에 대한 글로 구성하려고 해요. 그간 이학보국以學報國의 마음으로 학문을 했습니다. 홍익대, 서울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지대 등 여러 미술사학과를 거치면서 학문적인 봉사를 한 내용으로 3장을 형성할 겁니다. 4장은 제 은사들인 김원룡 교수와 김재원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하려고 해요. 그 외 《한국의 소상팔경도 연구》, 《한국 회화사》 개정판, 《미대생을 위한 한국미술사》, 우리 문화를 외국에 알리기 위한 한국미술사 개설서 영문판이나 한국회화사 영문판 논문 모음집 등이 늘 생각하는 책들입니다.

미술사학의 원로로서 현재 미술사학의 흐름은 어떻게 보시는지, 또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제일 기분 좋은 점은 미술사를 전공하는 후배들이 많이 생겼다는 거예요.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74년, 그때 간절한 소망이 한 가지 있었어요. ‘미술사를 제대로 공부한 박사가 10명만 있어도 좋겠다.’ 그만큼 국내 미술사 환경이 열악해 신뢰할 수 있는 학자가 드물었지요. 지금은 젊은 박사들이 수백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제가 후배들한테 이야기하는 세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연구의 다양성이에요. 제가 여러 저서를 통해 한국미술사의 개설적인 내용을 다뤘다면 후배들은 기성학자들이 하지 못했던 새로운 주제와 영역을 개척하라는 것이죠. 다음으로 다변화 못지않게 연구의 심층화가 필요합니다. 기존의 연구 성과에 머무르지 말고 더 깊이 연구하라는 것이죠. 우리 세대는 수박 겉핥기 시작으로 연구한 것들이 꽤 있어요. 이제는 훨씬 더 깊이 연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든지 역량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세 번째는 연구의 국제화에요. 영문, 일문, 제2외국어 등을 통해 연구 성과가 외국에 많이 소개되고 그것을 통해 해외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3대 요망사항이 부분적으로는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은 충분하다고 볼 순 없어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보려 합니다. 민화가 미술사학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민화를 일반 회화와 별개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민화 속에 회화의 전통이 침잠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화로 그려진 금강산도와 겸재정선의 금강산도가 관계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전통이 민화에 전파돼 민화 형식의 금강산도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민화가들은 경제적 여건 등의 한계로 금강산을 가볼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진경산수화를 토대로 상상의 날개를 피는데 바로 이러한 점이 민화 작가들 고유의 영역이자 회화사에 기여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기상천외한 발상들이 많다는 거죠. 또 하나의 예로 소상팔경도는 한, 중, 일 삼국에 다 있지만 우리나라에 제일 많이 남아 있고 민화가들도 많이 그렸습니다. 소상팔경도가 소강과 상강이 만난 경치를 그려낸 것이라고 하지만 민화작가들은 실경산수화와 관계없이 상상의 날개를 펴서 기발한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이처럼 민화에는 잠재적인 상상력, 그들 나름의 창의력, 그런 것들이 반영돼 있습니다. 민화가들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경지이죠. 민화와 일반 회화의 관계는 밀접해서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민화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일반 회화도 아울러서 공부해야 하는 거죠. 그 부분을 강조한 것이 제가 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민화가 중요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민화연구를 하겠다는 후배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지원할 것입니다.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민화가 가진 한계가 있습니다

미술사에 민화가 편입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고도의 창의성과 예술성으로 최고의 경지에 올라서야 하는데 상당수의 민화가 전문가의 수준에 도달하진 못합니다. 두 번째로는 작가와 제작연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화의 경우 어림잡아서 연대가 18, 19세기라고 하지만 그 외의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요. 설령 이름이 적혀있다고 하더라도 이름뿐인 이름이 대부분이에요. 화가가 어떤 집안 출신인지, 누구와 교류했는지 등을 알 길이 없어요. 민화가 그런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 회화의 영역과 함께 다루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민화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민화는 일반 회화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한국의 미를 갖고 있어요. 비유를 들어 고고한 선비는 직설법을 거의 쓰지 않는 반면, 민화가들은 거침없이 직설법을 구사합니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뛰어난 채색 방법이나 기발한 표현방법으로 진솔하게 그린다는 거죠. 민화를 일반 회화와 더불어 연구하되 민화는 민화대로 따로 떼어서 다뤄야 합니다.
18세기는 사람들이 민화를 선호하고 감상하던 시절로. 당시 민화가 미술 부문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화원들이 그린 값비싼 그림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의 예술적 욕구를 민화가 충족시켜줬거든요. 지금 21세기 현대인보다도 19세기를 산 우리 선조들이 훨씬 미술을 향유하고 사랑한 것 같아요. 현대인들은 고대광실에 살면서 그림 한 점 안 거는 사람이 많습니다. 18~19세기 민화가들이 활약했듯, 20세기 민화가들이 나서서 한층 더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오늘날의 민화가 후대에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민화의 이원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옛날 것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창작민화 부문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선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요새 미대를 나오고 민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반 회화에서 볼 수 없는 무언가가 민화에 있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그 특징을 잘 살려야 합니다. 자기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의성을 구현함으로써 새로운 민화의 세계를 개척하란 것이죠. 이를 위해선 민화가들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제 책 중에 권한다면 《한국의 현대미술》, 《한국 회화의 이해》로 그 두 권만이라도 읽으면 미술에 대한 눈이 뜨이고 생각을 다듬을 수 있을 거에요. 책 홍보가 아니라 공부를 안 하는 작가들이 너무 많아서 하는 얘기에요.
제가 미술사가로서 어떤 미술이 한국미술로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 기준이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앞서 말한 예술성과 창의성입니다. 두 번째로 많은 작가들이 소홀히 하는 한국성입니다. 국제화 시대에 세계 누가 보더라도 한국적 특징을 완연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 굉장히 중요한데 수많은 화가들이 이를 등한시합니다. 자존심이 있다면 어떻게 한국적인 요소를 외면하고 서양 것을 흉내 냅니까. 세 번째가 시대성이에요. 21세기 화가는 21세기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해야 합니다. 18세기의 그림을 암만 흉내 내도 그것을 미술사에 포함시킬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를 작품에 투영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그림에 구현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학자처럼 공부하라는 게 아니에요. 창작에 필요한 만큼만 공부하면 된다 이겁니다.

진솔한 조언을 통해 민화에 대한 교수님의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간 5주년을 맞이한 월간<민화>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월간<민화>가 5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제가 받아보는 잡지가 20가지 정도 되는데 그 잡지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잡지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내용이 실합니다. 학술적인 콘텐츠도 풍성하거든요. 그리고 이 잡지가 민화가들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고 교류를 활성화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월간<민화>가 아니면 어떤 민화전시가 열리는지 알 길이 없죠. 월간 <민화> 덕분에 각종 화단의 소식도 접하고, 공부도 할 수 있으며, 작품 감상도 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권하고 싶은 것은 일반 미술사학계의 소식이라든지, 민화 전문 서적이 아닌 일반 회화 서적이나 관련 연구 동향도 조금이나마 곁들이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민화가들이 공부하는 데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거예요. 월간<민화>는 앞으로도 잘 하겠지만, 더욱 분발하길 바랍니다. 월간<민화>가 장족의 발전을 이루길 응원하겠습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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