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묵향墨香이 일품 , 낭곡 최석환의 포도도 8폭병

포도도 8폭병

여름이 한 발짝 다가오니 포도나무마다 꽃이 한창이다. 청색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8월이면 그 특유의 달콤한 향이 적갈색과 어우러져 풍미를 더할 것이다. 포도는 열매의 풍성함과 덩굴이 길게 뻗어 나가는 성질 때문에 다산과 자손의 번창을 의미하여 민화에서도 많이 그려졌던 주제이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민화뮤지엄 소장품 중 낭곡 최석환의 《포도도 8폭병》을 소개하고자 한다.

검은 용처럼 귀한 과실, 포도

포도는 장과漿果 화초류 화목으로 원산지는 아시아 서부의 흑해연안과 카프카 지방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 포도가 전래한 것은 고려시대이며 중국의 한나라를 거쳐 유입되었고, 초기에는 사찰과 궁궐에서 식재되었던 귀한 과실이었다. 고려 말 이색李穡(1328~1396)은 『목은시고牧隱詩藁』에서 포도를 수정에 비유하는 칠언절구 시를 남기기도 했고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점필재집』에는 포도알을 검은 용草龍珠帳에 비유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유양잡조酉陽雜俎』를 인용한 것으로 이러한 표현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며 포도를 신성시하는 데 기여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 이성계가 수정 포도를 먹고 싶다고 하여 김정준이 이를 바치자 쌀 10석을 내려 주었다는 기록과 연산군이 마당에 있는 수정 포도를 먹고 시를 지어 내렸다는 기록 등이 등장하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포도가 왕실에서 사랑받아 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문인들도 정원에 포도를 심어 기르며 시와 그림의 주제로 애용하였고 특히 조선 후기에 널리 확대되어 재배되면서 제례에까지 포도가 사용된 기록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유행에는 포도 넝쿨의 차폐하는 성질과 과실의 뛰어난 맛, 그리고 다산과 번창을 상징하는 의미 등이 한몫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군자와 더불어 성행한 포도도

포도도는 중국과 일본에 비교해 볼 때 유독 우리나라에서 사군자와 더불어 성행하였는데 현존하는 작품은 없지만 고려시대부터 포도도가 그려졌음이 확인된다. 조선 초기에도 강희안姜希顔(1417~1464)이 포도도를 잘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포도도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의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과 황집중黃執中(1533~1593 이후)에 의해서이며 특히 황집중의 포도도는 주로 절지풍으로 탄은 이정灘隱 李霆(1554~1626)의 묵죽墨竹, 어몽룡魚夢龍(1566~?)의 묵매墨梅와 함께 삼절三絶로 일컬어질 만큼 유명세를 떨쳤다. 17세기 이후 이계호李繼祜(1574~1645)는 이전의 싱싱한 포도와는 다르게 상한 잎 등의 사실적인 묘사와 전수식 포도도를 그려 새로운 양식의 포도도를 완성하였다. 그 밖에도 홍수주洪受疇(1642~1704), 심정주(1678~1750), 권경權儆(?~?) 등의 전문 화가들에 의해서도 포도도가 제작되었으며 조선 후기 낭곡 최석환浪谷 崔奭煥(1808~?)은 포도도 연폭병풍을 정립하고 다양한 작품을 남긴 인물로 포도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세기 최석환을 끝으로 이후의 포도도는 주로 무명의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며 도식화되었는데 조선 말기 고동서화 수장가이자 역관 출신이었던 이상적李尙迪(1804~1865)이 쓴 『은송당집恩誦堂集』에도 포도도를 청하는 시가 남아있어 중인 계층의 성장이 조선 말기 민화 포도도의 수요 증가와 활발한 제작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낭곡 최석환이 남긴 포도도 8폭병
1+7폭, 2+5폭

▲1+7폭, 2+5폭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의 포도도 8폭병은 왼쪽 상단에 쓰인 화제시의 서체와 ‘최석환인崔奭煥印’의 주문방인朱文方印 및 하단에 찍힌 ‘낭곡浪谷’의 백문방인白文方印, 그리고 포도도의 필치를 보아 낭곡 최석환의 작품이다. 최석환은 조선 후기 산수도를 비롯한 매화도, 파초도 등의 문인화가 전하며 특히 포도도 중에서도 연폭 포도도를 많이 그렸던 화가로 알려졌으나, 오세창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기록된 ‘호가 낭곡이며 전북 옥구군 임피면에 살고 포도를 잘 그린다’는 내용을 제외하면 그에 관한 기록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또한, 학계에서 진행되어온 포도도나 최석환에 관한 연구도 다른 회화 작품이나 유존작이 많은 작가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한 상황이었으나, 2012년 이화여대에서 발표된 석사학위 논문인 정현희의 「朝鮮末期 崔奭煥(1808~1883)과 葡萄圖 連幅屛風」은 최석환이 강릉 최씨 江陵 崔氏 서얼 출신이며 전북 군산의 취성산 아래 거주했을 가능성, 그리고 현존작을 기준으로 그의 몰년을 1883년으로 제기하여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 최석환의 연폭병풍으로 제작된 포도도가 1870년대 이후에 정형화되었음을 밝혔고 이러한 연폭병풍이 제작될 수 있었던 요인들(길상성과 장식성의 추구로 인한 포도도의 수요 증가, 중앙화단에서의 연폭병풍 유행, 호남화단의 성장 및 시장의 발달, 그리고 치痴와 벽癖을 추구하여 나타난 전문화 경향)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최석환의 작품과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평가된다.

형식상 1865년 이전으로 편년

현재 표구된 상태로 보면 이 작품은 연폭이 아니라 축 형식의 절지풍 작품 8점이 따로 그려진 형태로 보인다. 그러나 작품의 순서를 바꿔보면 두 폭 또는 세 폭씩 연폭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현재 표구된 순서를 기준으로 편의상 왼쪽부터 폭의 순서를 매겼을 때 (1, 5), (2, 7), (3, 8), (4, 6)으로, 그리고 (1, 7), (2, 5), (8, 3), (4, 6) 순서로 나열하면 두 폭씩 연폭이 된다. 또한 (1,7), (2, 5, 4), (8, 6, 3) 조합도 약간 어색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연폭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전체적인 연폭으로 가는 과도기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최석환 작품이 1870년대 이후에 완전한 형태의 전수식 연폭 형식으로 무르익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1870년대 이전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전북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포도도 8폭병》의 경우 1865년에 제작된 기년작으로 두 폭씩 연폭 형태를 이루고 있고 작품 크기 면에서도 유존작 중에서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의 《포도도 8폭병》과 가장 가까운 형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전북대학교박물관 작품에서 그의 후대 연폭 작품에서 보이는 동글게 말리는 주가지 형태가 이미 등장하고 바람에 휘날리는 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한국민화뮤지엄 소장품이 1865년 이전에 그려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화제로 남은 포도의 고귀함

왼쪽에서 첫 번째 작품 상단에는 “自随博望仙槎后, 诏许甘泉别殿栽.(한 무제 때 포도를 궁의 사방에 심었고 감천 별관에도 심었다)”를 쓰고 주문방인으로 마무리하였는데 그가 제작한 서강대학교박물관 소장의 <포도도>에도 장자의 송사를 인용하고 있는 등을 통해 묵서까지 신경 써서 취했던 그의 작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화제시는 명대 시인 풍기琦의 시의 일부로 전체 시는 아래와 같다.

晻暧繁阴覆绿苔, 藤枝萝蔓共萦回.
自随博望仙槎后, 诏许甘泉别殿栽.
的的紫房含雨润, 疏疏翠幄向风开.
词臣消渴沾新酿, 不羡金茎露一杯.

시를 번역하면 “포도를 서역에서 가져와서 한 무제 때 궁의 사방에 심고 감천 별관에도 심었는데 포도가 매우 아름다웠고 포도 한 잔을 마시면 장생 구선도 부럽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시의 주제는 마지막 절에 나타난, 장생 구선도 부럽지 않다는 감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석환은 포도를 궁에 심었다는 구절만을 적어놓았는데 민간에서도 포도를 재배하였던 조선 후기 상황을 고려할 때 포도가 원래 얼마나 귀한 식물인지를 강조하는 내용을 적어 포도를 예찬하고 포도의 고귀함을 작품에 함께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난 결과로 보인다.

짙은 묵향墨香이 일품인 포도도
3+8폭, 4+6폭

▲3+8폭, 4+6폭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의 《포도도 8폭병》에는 최석환 특유의 작화 경향이 잘 드러나 있는데 전체적으로 굵고 빠른 필치로 주가지를 그리고 담묵으로 포도잎과 덩굴손, 덜 익은 포도알을 표현하였으며 포도잎 위의 대 부분은 중묵, 잘 익은 포도알은 농묵을 사용하여 처리하여 삼묵법을 잘 활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포도알은 아직 익지 않은 포도를 담묵으로 먼저 그린 후에 농묵으로 잘 익은 알갱이를 표현하였으며 선염법을 이용하여 번짐 효과를 충분히 살려냈다. 포도잎은 싱싱한 잎뿐 아니라 중간에 상한 잎도 함께 표현하여 이계호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왼쪽에서 7번째 작품을 보면 중앙에 있는 잎의 왼쪽 부분에 다수의 점을 찍어 벌레 먹은 잎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또한 한두 개의 포도를 클로즈업하여 그리는 정형화된 황집중식 포도도와 달리 위에서 아래로 가지가 휘몰아치며 축 형식을 이루는 점에서도 소극적으로나마 이계호의 영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래쪽을 향하는 덩굴손은 대부분 시작점에서 오른쪽으로 둥글게 말아 오른쪽 삐침선으로 마무리하는 형상인데 마치 서예의 비백체를 보는듯하며 도식적인 형태로 그려져 그가 얼마나 많은 포도도를 그렸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바람이 많이 불지 않은 상태로 그려진 이 포도도는 화제시의 내용처럼 궁궐에 심어져 고귀하게 자라고 있는 포도를 표현하고 있으며 알알이 탐스럽게 열린 포도알을 통해 다산과 다복이라는 기원을 함께 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건필을 자제하고 윤필을 통해 담백하게 표현하여 그림 전체가 가지는 다복한 이미지나 풍성함이 더욱 윤택해 보이는 효과를 노린 걸작으로 평가된다.
어릴 때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마당에 작은 포도나무가 있었다. 딱 한 그루였는데 할머니가 다른 농작물처럼 크게 신경을 쓰시지 않았는데도 어김없이 시기만 되면 성냥개비 같은 꽃이 피고 밑으로 녹색 동그라미들이 자라나서 탐스러운 자줏빛으로 익어 한여름 갈증을 해소해주곤 하였다. 발전하는 기술력만큼이나 사람들의 거리도 멀어진다는 현대 사회에 메르스가 휘저어 놓은 대한민국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피하는 현상까지 보여 사람들의 북적거림 속에서 행복을 찾았던 우리 선조들의 삶과 비교하면 어딘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다산과 자손의 번창이라는 기복 사상을 담은 포도도는 우리 선조들이 사람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며 복으로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민화뮤지엄 소장, 낭곡 최석환의 《포도도 8폭병》 감상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들이 사람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가슴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사람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달콤한 포도알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글 : 오슬기(한국민화뮤지엄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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