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채연구소 – 과감한 실험 통해 진채를 변주하다

정해진 대표가 운영하는 진채연구소는 전통 채색화인 진채를 심도있게 공부하는 곳이다.
탄탄한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회원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오늘날의 진채를 탄생시키는 진채랩(LAB),
진채연구소를 방문했다.


“적지 않은 분들께서 ‘진채는 석채를 쓰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배우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석채는 10년 전 구입한 것이라도 요령껏 활용하면 계속 쓸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인 재료고 오늘날 진채에서는 석채 뿐 아니라 분채든 다른 무엇이든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지요. 다만 어떻게 쓸 줄 아느냐가 중요합니다.”
진채연구소 정해진 대표가 말하는 ‘진채眞彩’란 채색화를 이야기하는 고유한 우리말로, 1783년 정조 임금이 자비대령화원을 선발할 때 출제한 시험에서 ‘담채 2장, 진채 2장을 그려내라’고 했다는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진채는 비단에 광물질 물감, 즉 보석가루를 주재료로 사용해 우아하면서도 화사한 색감이 특징이며, 재료의 특성상 예부터 왕가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요즘에는 비단과 석채 등의 재료를 구하기 쉬워졌지만, 진채를 익히기까지 상당한 수련 기간이 필요하기에 정해진 대표가 ‘진채연구소’란 이름을 내걸고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정 대표는 2003년부터 한국전통문화대학교를 포함해 한성대학교 등 다수의 대학교 회화과부터 (사)한국민화협회 부설 평생교육원 석채활용반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강의한 베테랑 강사이며 7회의 개인전을 개최한 실력파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석채로 서양 명화를 재해석한 개인전 를 통해 석채의 무한한 가능성을 몸소 선보인 바 있다. 사실 그가 아카데미를 연 것도 전시가 계기가 됐다. 2005년 정 대표의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 ‘비단 위에 석채로 채색한 이 작품들을 어떻게 그린 것인지’, ‘작업실에 구경하러 가도 되는지’ 물어물어 그의 작업실로 찾아와 배움을 청했기 때문. “제 작품을 연구하며 알게 된 것부터 이론, 창작, 작품론까지 그림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려드렸어요. 대학교 강사로서 학생들과 실험하고, 졸업전시를 했던 경험 덕에 학교가 아닌 사적인 공간에서도 자연스레 교육을 시작한 것 같아요.” 이후 정 대표는 2016년 신사동에 진채연구소를 설립하고, 보다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체계적이면서도 자율적, 실험적인 커리큘럼

정해진 대표가 교육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개인의 성향과 재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것으로, 우선 기본기를 철저히 트레이닝한다. 이를 위해 커리큘럼 과정은 교반수 만들기, 종이 위에 선, 색 등을 연습하는 기초 단계, 본격적으로 석채를 공부하는 중급 단계,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고급 단계로 분류했으며 일련의 과정들을 지도할 땐 회원들이 단순히 따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둔다. 일례로 회원들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있을 경우 단순히 외곽선을 따서 그리도록 하지 않고, 생태적 특성 등 관련 정보를 숙지하도록 하며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계량화, 데이터화하여 공유한다. 이를 위해 교반수를 만들 때의 비율부터 각종 색상에 대한 조색 비율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파일링했다. “사람마다 붓에 묻히는 물감이나 물의 양이 다릅니다. 이 때문에 ‘무엇과 무엇을 조금씩 섞어라’는 막연한 설명으로는 소통이 어렵지요. 체계화한 자료가 있어야 회원들이 작업상의 오류를 바로잡고, 집에서도 작업을 원활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이 마냥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도 데이터를 통해 칠하는 방법이나 테크닉을 이해하게 되면 작업은 한결 수월해져요.” 정해진 대표는 정기적으로 연구원들과 실험을 거듭하며 결과를 정리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또한 회원들이 어떤 재료든 잘 다룰 수 있도록 석채 뿐 아니라 분채, 튜브물감 등 재료의 특성부터 재료 간 궁합까지도 상세히 알려준다. 이같은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회원들은 그림을 그릴 때의 잘못된 습관은 무엇인지, 어떤 과정에서 주의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정 대표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회원들이 자료를 토대로 각 단계를 복기하며 고민의 실타래를 풀어낸 경우, 관련 질문을 쏟아내면서 실력도 일취월장 한다고. 정 대표는 그림을 지도하며 가장 보람된 순간으로 “회원들이 과감하게 실험할 때” 를 꼽았다. 교육 철학에 있어 틀에 박히지 않은 열린 도전
을 추구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각자의 역량은 물론, 마음까지 화폭으로 끌어내다

탄탄한 커리큘럼을 통해 기본 과정을 충분히 교육한 다음에는 회원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도록 주력하며, 이를 위해 평소 회원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개인코칭을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각자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40명의 회원 가운데 같은 그림은 단 하나도 없지요.” 실제 진채연구소 회원들의 그림은 붓을 쥔 이들의 개성을 담아내 ‘그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례로 지난해 정학진 작가가 개인전에서 선보인 괴석 시리즈, 지난 10월 갤러리한옥에서 공동 개인전을 개최한 김숙경 작가가 ‘아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 및 김애숙 작가의 ‘겸재 정선’ 시리즈 역시 정 대표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회원들은 그의 제안에 ‘그거 참 좋겠다!’며 무릎을 치기도, ‘그렇게 어려운 것을 할 수나 있을지’ 걱정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리는 이를 쏙 빼닮은 작품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정해진 대표의 남다른 통찰력과 회원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회원들의 작품은 현대적인 감성으로 완성한 오늘날의 진채라는 점에서 뜻깊다.
진채연구소의 회원들은 20대에서 70대까지 연령층이 폭넓으며 주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퇴직 후 취미 삼아 다니는 이들까지 배경도 그림을 배우려는 목적도 천차만별이지만 이들이 공통된 주제로 집결할 때는 해마다 개최하는 세화전 작품을 그릴 때다. “이때의 작품 컨셉은 ‘선물’이에요. 사람들은 평소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데 익숙하지만 세화전을 준비할 때만큼은 다른 이를 위한 그림을 그려보자는 마음에서 기획한 행사입니다.” 3회를 맞이하는 2019년 진채연구소 세화전은 내년 1월 2일부터 7일까지 갤러리이즈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정 대표는 회원 뿐 아니라 진채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지인들을 총동원해 다채로운 그림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보다 수월하게, 한 걸음씩 내딛길

향후 진채연구소의 목표에 대해 정해진 대표는 ‘배워서 남주자’는 마음,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라 답했다. “진채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고, 쉽게 그릴 수 있게끔 도와드리고 싶어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말이죠. 제가 배울 때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여기서만큼은 보다 쉽게 그리셨으면 해요. 또 하나, 진채가 우리 고유의 채색화이지만 다른 장르와의 결합도 서슴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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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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