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화의 고장에서 느끼는 거장의 숨결 겸재정선미술관

겸재정선미술관
겸재정선미술관

우리가 매일 쓰는 천 원 권 지폐.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이 종이돈 한 장에 한국 전통회화를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이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굴곡진 산과 나무, 그리고 한 채의 집이 멋진 풍광을 만들어내는 이 그림이 바로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꼽히는 겸재 정선은 작품성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받고 있는 반면, 인물이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 이러한 겸재 정선을 널리 알리고 기리기 위해 설립된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우리 산수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술혼을 불살랐던 그의 뜨거운 숨결을 느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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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의 예술과 화혼이 깃든 공간

지난 2009년 4월 가양동 궁산 기슭에 정선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진경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세워진 겸재정선미술관(관장 이석우, 이하 미술관). 미술관이 자리한 가양동은 옛 양천현으로 겸재가 65세부터 70세까지 만 5년간 양천현령으로 지냈던 곳이다. 겸재는 양천현령으로 있으며 한강 주변을 비롯한 서울의 풍경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당시 이곳에서 ‘양천팔경첩’, ‘연강임술첩’, ‘경교명습첩’ 등 한국회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걸작들이 탄생했다. 미술관은 겸재의 예술과 화혼이 깃든 궁산 기슭에서 그의 작품들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여 소개하고 있다.

진경산수화풍의 창안자이자 완성자
정선, 박연폭, 개인 소장

▲정선, 박연폭, 개인 소장

겸재정선미술관을 말하기 전, 우선 ‘겸재 정선’이란 인물에 대해 짚고 갈 필요가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이 살던 시기는 조선 후기인 진경시대眞景時代로, 양란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조선의 고유문화인 진경문화가 꽃피운 시대다. 당시 조국 산천을 금수강산이라 일컬으며 산천을 따라 국토순례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여행할 처지가 안 되는 이들은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은 산수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 진경산수화풍을 창안하여 완성해 낸 인물이 겸재 정선이다. 진경산수화는 ‘진짜 경치를 그려낸 그림’을 뜻한다. 겸재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풍 관념산수화를 따라 그린 수준의 산수화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조선만의 화풍으로 금수강산을 표현해 낸 시초가 겸재였고, 그렇게 탄생한 진경산수화는 당대부터 지금까지도 한국회화사의 불후의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중국풍을 뛰어넘어 우리네 산천을 실재처럼 똑같이 그려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겸재는 조선의 산천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을 뿐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끄집어내 관념까지 화폭에 담아냈다. 사진을 찍어낸 듯한 실경에 상상력을 발휘해 주체적 인식까지 담아낸 산수화를 그려낸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겸재는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였다. 겸재가 회화로써 명성을 떨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린 ‘해악전신첩’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서울, 경기, 경상도, 충청도 지역까지 널리 여행하면서 우리나라 산수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화폭에 옮겨 담았다.
이석우 관장은 “겸재는 산수를 있는 그대로 베낀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유학 경전은 물론 주역까지 마스터했던 사람이었죠. 산천과 천기의 비밀을 누구보다 잘 꿰뚫어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창조적인 정신으로 새롭게 그려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겸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창조적 예술가인거죠”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겸재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는 곳

겸재는 옛 양천현에 자리한 궁산에 올라 한강 일대와 서울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겸재가 오르내렸던 바로 그 역사적 터전에 미술관이 자리 잡았다. 봄이 내려앉은 궁산 기슭에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흘러내린다. 실제로 찾은 미술관은 겸재의 작품을 보며 떠올렸던 고전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현대적인 외관에 각종 첨단시설까지 갖춘 3층 규모의 세련된 건물이었다. 고전을 어려워하는 일반인들도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느껴진다.
1층은 기획전시실과 양천현아실, 2층은 겸재기념실과 체험학습실, 3층은 다목적실과 까페테리아로 운영되고 있는데, 미술관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2층은 크게 겸재정선기념실과 원화전시실, 진경문화체험실, 영상실로 구분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닿는 곳은 겸재정선기념실. 겸재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시기별로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기념실을 한 바퀴 돌아보는 10분 남짓의 시간 동안 겸재의 초년기부터 만년기까지 84년의 삶과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겸재의 진경산수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대상 소재가 광범위하고 다양해졌으며, 자유로운 필묵법을 구사하며 파격적인 구도와 생략적 묘사를 선보이고 있다.
기념실을 한 바퀴 둘러보면 원화전시실에 도착한다. 현재 미술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진품으로는 ‘조어도’ ‘청하성읍도’ 등 겸재의 원화 8점과 겸재의 화풍을 따라한 다른 작가들의 진품 5점까지 총 13점을 소장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겸재 정선을 기념하고자 만들어진 미술관의 원화 보유량이 다소 적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겸재 작품의 경우 이미 많은 박물관 및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 6년 전 개관한 미술관에서 수집할 수 있는 수량이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과 주어진 시간이 짧았던 점을 감안했을 때 8점의 원화 또한 엄청난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민화강좌 등 배움과 소통의 장

미술관에서는 아쉬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운영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프로그램은 크게 ▲전시 분야 ▲겸재 연구 분야 ▲교육 강좌 분야 ▲체험 분야로 나뉜다. 전시 분야로는 겸재 작품 상설 전시 외에 내일의 작가 공모 전시, 겸재 사생대회 전시 등의 정기 전시와 겸재 맥잇기 중견작가 전시, 지역 작가 초대전 등의 기획 전시가 있다. 오는 5월 10일까지 열리는 기획전시 역시 2014년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허현숙 작가의 <都市計劃도시계획-기억 속 나의 유년기 도시를 짓다>展 이다. 미술관에서는 겸재의 정신과 예술혼을 기리며,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자 매년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미술관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교육 강좌 분야가 있다. 이 또한 미술 강습강좌와 미술 인문학 강좌로 나뉘는데, 민화 강습강좌도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민화 강좌는 현재 미술관에서 가장 반응이 뜨거운 강좌라고 한다. 그 외에도 한국화, 서예, 유아창작미술 강좌 등이 성인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와서 익히고 나눌 수 있는 배움과 소통의 장이자 문화 예술의 향연장인 셈이다.

겸재 정선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자 탄생한 미술관이지만, 이제는 시민과 소통하는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는 겸재정선미술관. 이를 통해 겸재 정선의 창의적 예술 정신을 이어받은 제2, 제3의 작가가 탄생하고 시대정신을 담은 예술작품이 끊임없이 창작되기를 기대해본다.

mini interview. 겸재정선미술관 이석우 관장

이석우 관장이석우 관장은 서양사를 전공한 문학박사로,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면 평생을 보냈다. 이 관장은 역사 속에 예술, 문학이 유기적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림을 보면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평생 역사와 그림을 공부하고 본인의 개인전을 열었을 만큼 미적 감각과 열정이 넘치는 이 관장은 요즘 겸재 정선에 푹 빠져있다.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가장 작가다운 사람이 겸재 정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재는 실경을 토대로 자신의 것을 만들어 낸 진정한 창조적 예술가이기 때문이죠. 민화를 하시는 분들도 겸재정선미술관을 찾으면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민화를 보면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마음이 샘솟지 않습니까. 겸재의 자유로운 정신과 예술적 감각은 민화와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겸재정선미술관이 자리한 강서구에는 미술관 외에도 궁산, 허준박물관 등 볼거리가 참 많으니 오셔서 다양하게 즐기다 가실 수 있을 겁니다.”

  • 위치 : 서울시 강서구 양천로 47길 36
  •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동절기 및 토·일-오전 10시~오후 5시)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신정, 설날/추석 연휴
  • 관람요금 : 대인 1,000원 / 청소년 및 군인 500원 / 7세 이하 및 65세 이상 무료관람
  • 무료관람일 : 매월 둘째·넷째 토요일, 설·추석의 전·후일, 어린이날,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 문의 : 02-2659-2206

 

글 : 최민지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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