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최유현 – 오색실 세월을 수놓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최유현
오색실 세월을 수놓다

인생의 전부를 자수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최유현 자수장은 수를 놓는 마음가짐을 ‘심선신침心線神針’이라고 표현한다. 마음으로 선을 이어 신의 경지에 도달하듯 손끝에 정성을 담아 한 땀 한 땀 세월을 수놓아온 60년 자수인생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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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현 자수장은 지난 5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랜 세월의 노력이 담긴 자수 작품들을 모은 <심선신침心線神針>전을 열어 시기별로 변화해온 그의 작품세계를 정리해 선보였다. 민화와 불화를 자수로 재탄생시킨 대표작 중에는 한 점을 완성하는 데만 해도 수년씩 걸리는 대작이 많다. 최 자수장의 자수 작품을 정성의 예술이라 칭할 수 있는 이유다.

끈기로 이어온 60년 자수 인생

10대에 처음 자수를 접했던 최유현 자수장은 자수 대가 권수산 선생을 사사했으며 한평생 자수와 함께 해왔다. 최 자수장은 한국 전통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연화장세계도>를 비롯한 불화자수로 대통령상·국무총리상·문화부장관상·문화재위원장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96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으로 지정되며 진정한 자수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팔순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하면서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최 자수장의 작품세계는 시기별로 변화를 거듭한다. 10대 소녀시절에는 베갯잇과 옷고름에 등에 수를 놓으며 기초적인 기능을 익혔고, 20~30대에는 생활소품에 자수를 적용하는 것과 더불어 수묵화와 서양화 등을 수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도자기 같은 문화재를 밑그림 삼으며 본격적으로 수를 놓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이후 문자도, 책가도 등의 전통민화와 불화를 자수로 재해석한 고차원의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중국 자수가 무작위로 국내로 들어오던 시절 한국전통의 요소가 배제된 자수들이 한국의 자수인양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까워 우리 민족만의 정서를 담은 자수를 위한 소재 연구에 끊임없이 고민하던 중 떠올린 것이 바로 전통민화와 불화다. 특히 ‘자수만다라刺繡曼陀羅’와 ‘삼세불三世佛’, ‘팔상도八相圖’ 등의 불화 자수의 경우 짧게는 3, 4년 길게는 10여 년에 걸쳐서 완성되는 대작이 대부분이다. 팔상도의 경우 2m가 넘는 작품 8점을 완성하는 데까지 12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어느 날 통도사에서 처음 팔상도를 접하고 언젠가 이 작품을 내 자수로 짓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린 기간만 10년이니 팔상도 재현에 2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 것이다.
불교미술이 우리 전통미술의 뿌리라고 믿는 그는 40대 이후에는 불화자수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지금까지 100여 점이 넘는 불화를 자수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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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자수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

자수는 한 땀 한 땀의 정성이 모여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다양한 자수분야 중 전통자수는 수많은 종류의 실과 천, 그리고 세밀하고도 정교한 기법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고난도의 예술이다. 최 자수장은 재현을 위한 그림을 선택하고 수를 놓기 위해 수실을 꼬는 준비과정부터 조화로운 색의 배합으로 완성된 작품을 온전하게 보관하는 단계까지 모든 과정에서 완벽함을 기한다. 특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위해 좋은 그림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느 곳이라도 바로 찾아 나설정도로 동분서주하며 노력을 아끼기 않았다.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 제 마음에 드는 쏙 그림을 찾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본을 찾는 일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본을 찾고 나면 그 때부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첫 바늘을 심는 순간부터 완성에 이르는 때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해야 해요.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정성을 쏟은 작품일수록 만족감이 큽니다.”
작품 과정 중 그가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은 수를 놓기 위한 본을 만드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그 자체를 수의 본으로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수를 놓는 본용 그림을 작가의 눈과 손에 맞게 새로 만드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수 작업을 위한 좋은 그림을 발견했다면 그 그림을 수에 맞게 변형하거나 디자인하는 재편집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찰나에 마주치는 좋은 무늬나 문양 혹은 작품을 수와 접목시킬 수 있는 번뜩이는 센스가 필요해요. 종이가 아닌 천에 수로서 그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구성력 또한 자수를 하는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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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이어갈 후학 양성에 최선 다할 것

결과물은 화려하지만 자수의 과정은 더디고 고단하다.
수개월에서 길면 수년이 걸리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작품 하나가 완성되는 것은 물론, 실을 고르는 과정에서부터 수를 놓고 그 후의 관리 과정까지 무엇 하나 쉬운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전통자수는 오랜 경력자라 하더라도 빠르게 작품을 완성하기 어렵다.
최 자수장은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고 과정보다 결과가 우선시 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젊은이들이 전통자수의 문을 쉬이 두드리지 않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토로한다.
“아름답고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통자수가 너무 힘드니까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간혹 공방에서 자수를 가르치는 경우를 봤는데 전통 자수를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 짧게 배운 사람들이 남을 가르친다고 하니 이 또한 문제이지요. 그래서 요즘 제 마음이 너무 급합니다. 후학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후배들이 자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열어갈 생각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현재 부산대학교 복식문화연구소에 석좌교수로 출강하고 있으며, 서울시립대도 다음 학기부터 출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중수원에서의 실습 교육도 정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최 자수장은 제대로 된 교육용 자료 편찬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한평생 수를 놓으며 개발해 낸 독특한 기법들을 정리해, 전통자수의 명맥을 잇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어 전통 자수가 오랫동안 보존되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기획하게 되었다.
최 자수장은 어느 순간부터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본인의 자수는 물론 우리 자수의 맥을 잇고 싶은 염원 때문이다. 작품을 잘 보존해서 자주 전시를 하는 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수록 전통자수의 아름다움을 이어가겠다는 후학이 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수백점에 이르는 그의 자수 작품 대부분은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전주에 위치한 문화유산원 수장고에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최유현 자수장은 최근 신중탱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60년을 오롯이 자수에 매달려 왔지만 자수에 임하는 자세는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하는 초심 그대로다. ‘느림’ 속에서 진정한 삶의 미학과 철학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수 백 년, 수 천 년이 지나도 살아 숨 쉴 우리 전통 자수의 아름다움을 위해 오늘도 최
자수장의 수틀은 쉬지 않는다.

글 : 김정민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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