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刺繡匠) 한상수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刺繡匠) 한상수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刺繡匠) 한상수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한상수 씨는 자수 분야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주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우뚝한 장인이다. 60여 년을 세월을 우리 전통 자수의 독특한 기법과 아름다움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온전히 바쳐 온 그는 한평생 수를 놓고 연구해왔음에도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수틀을 놓지 않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농익는 노익장의 향기가 곱고도 짙다.

만족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장인정신

한상수 장인자수는 몇 번이고 거듭 수정할 수 있는 예술이다. 성에 찰 때까지 수를 놓고 실을 뜯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한 땀 한 땀이 모여 모든 것이 가지런히 제자리에 놓였을 때, 비로소 거슬리는 구석이 없는 좋은 작품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자수는 기술보다는 더 나은 작품을 향한 고집과 욕심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내의 예술’이기도 하다. 자수장 중에 특히 완벽주의자가 많은 것도 이런 까닭인지도 모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기능보유자 한상수 씨도 적당함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는 그런 완벽주의자 중의 한 사람이다. 거기에 타고난 실력과 성실함을 갖췄으니 그녀의 삶은 천생 흐트러짐 없는 장인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만 49세,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받기에는 많이 젊은 나이다. 지난 1984년 자수분야 최초의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을 때의 한상수 씨의 나이가 그러했다. 다소 파격적인 선정이었음에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무렵 이미 그녀가 이룩한 자수세계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수준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자수 솜씨는 일찍부터 두드러졌다. 제2회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입선한 것이 고작 열여덟 살 때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솜씨 뛰어난 기능인의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단순히 수만 놓는 것이 아니라 잊혀가고 유실된 우리 전통자수의 기법을 찾고 연구하고 재현했고, 다시 이를 정리해 책으로 펴냈다. 이를테면 장인으로서의 뛰어난 기능과 연구자로서의 이론적 소양이 균형을 이룬, 양수겸장의 보기 드문 인재인 셈이다.
그의 저서는 자수의 기본을 다룬 이론서에서 , 과 같이 세분된 영역의 텍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특히 수불(繡佛) 분야에서 그가 이룬 업적은 단연 돋보인다. 실제로 영산회상도 괘불(1981년), 아탄다삼존도(1983년)과 같이 조선불화의 정수를 그대로 담은 수불이 그녀의 손끝에서 재현되었다.
잊혀져간 수법을 복원하는 일에도 열성이었다. 우리 자수는 수법(繡法, 수놓는 방법)도 다양하다. 한상수 씨가 긴 세월 조사하고 정리해 놓은 우리의 수법이 무려 8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작은 실과 바늘의 세계가 이토록 넓고 깊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 내친김에 스스로

그렇게 우리 수의 우수함에 새삼 눈 뜨고 나니, 무엇보다도 비할 수 없이 뛰어난 우리의 수가 나라 안팎으로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누군가 나서서 우리 수의 우수함과 전승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는 고민이 이어졌다. 결국 예까지 온 김에 내가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한상수’ 자체가 한국의 수, 더 나아가 수 자체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건 결심만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었다. 실은 자수장으로서의 길은 그런 결심 이후, 곱절은 가파르고 힘들어졌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쉬지 않고 해야 했고, 수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제자들을 모두 거둬들여 혼신을 다해 가르쳤다. 연구와 저술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자수박물관과 연구소도 설립해 운영해왔다. 그런 생활은 팔순의 문턱에 이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왕성한 작품 활동이 아직도 멈출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늘 작품이 쌓이고 있다. 오는 3월 20일부터는 서울중요무형문화재 전승회관에서 두 번째 ‘한 평생 전’을 연다. 오색실로 고운 그림을 그리는 바늘처럼, 쉼 없이 살아온 발자취가 모여 그녀의 인생을 수놓고 있다.

 
천사백 년을 넘나드는 광활한 작품세계

문화재 전수회관에 있는 한상수 씨의 연구소를 찾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키만 한 수틀 앞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고려 14세기)를 본으로 삼아 수를 놓는 중이었다. ‘고려 미술의 백미’라는 찬사를 받는 작품이 장인의 솜씨를 만나자 반짝이는 광택과 오묘한 색감, 은은한 입체감이 살아 숨 쉬는 자수로 거듭났다.
고려 불화를 자세히 본 사람은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림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놀라운 점은 투명한 사라(紗羅)의 표현이다. 섬세하게 직조된 비단 위로 투명한 사라가 흐르듯 걸쳐있고, 그 사라에는 원형 당초문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도대체 이것을 자수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일까? 해법은 배색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사라 아래의 비단은 조금 더 연한 색으로 표현하여 투명한 천이 드리워져 있음을 나타냈다. 아직 완성된 작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불화의 화려하고 섬세한 채색과 고아한 정신세계를 잘 구현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수불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아주 일찍부터 싹터 있었다. 1981년 제6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조선 시대 괘불(대형 걸개 불화)을 표현한 ‘자수괘불’로 대통령상을 받은 이력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걸작은 매우 많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지난 2007년, 장녀 김영란 박사가 직조한 천에 완벽하게 복원한 ‘천수국만다라수장’이다. 이 작품은 7세기 일본 아스카시대 쇼토쿠태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한 불화자수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장인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제작을 지도·감독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할 만큼 귀한 작품이지만, 유구한 세월을 견디며 많은 부분 손실이 있었던 것이 그녀의 손을 거쳐 1천 사백여 년 만에 완벽한 형태로 재현된 것이다. 작품을 처음 접한 지 25년 만에 제자들과 함께 이뤄낸 성과였다.

자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체계를 세우는 꿈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刺繡匠) 한상수자수는 우리 생활 속에서 아주 가까이 접해왔으면서도 생각만큼 누구에게나 친근한 분야는 아니다. 실제로 현대에 들어와서는 십자수 같은 외국의 자수나 컴퓨터 자수 등에 밀려 외면당하고 움츠러드는 느낌마저 강했다. 아주 근래에 와서야 우리 자수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에 눈뜨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요새 자수 붐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기쁘고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마냥 낙관적인 전망만을 할 수는 없어요. 본래 붐이라는 게 어떤 계기로 금방 식을 수도 있고, 사실 붐 자체도 이미 많이 늦은 감이 있어요. 우리 자수에 진작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았더라면 더 많은 작품을 보전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 각광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거든요. 학교에서도 자수를 가르치고 학자들도 더 많이 연구해서 우리 자수의 우수성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
자수 외길 한평생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과제는 매우 많다.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아요. 우리나라 자수의 역사(刺繡史)를 정리해 책으로 내는 일도 시급하고 자수의 모든 기법을 망라한 종합적인 텍스트를 만드는 일도 중요합니다. 갈 길은 먼데, 제가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어요…. 제가 다 못한 것은 후배들이 하겠지요. 그들이 조금 더 수월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남은 삶에도 우리 자수를 위해 일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월간 가 창간한 것처럼 월간 「자수」와 같은 잡지가 나오는 날도 오겠지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미소가 자수의 빛깔처럼 곱고 온화하다.

 

글 : 윤나래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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