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장 유영기, ‘화살’에 대한 집념으로 ‘화살의 영혼’을 좇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

궁시장은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통칭한다. 영집 유영기 선생은 그중에서도 화살을 만든다. 전국에서 화살이 가장 유명했던 장단지역에서 대대로 화살을 만들어온 가문 출생으로. 자연스레 화살을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왔다. 부족한 기록과 사료를 찾아 전국을 헤맸고, 그렇게 조선시대 화살복원에 성공했다. 국내 최초로 활과 화살을 전문으로 하는 박물관도 세웠으며, 아들과 손자마저 그의 길을 잇겠다고 나섰다. 화살의 뿌리와 영혼을 찾는 여정은 대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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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열정으로 이룬 복원의 꿈

통아와 편전의 복원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청하자 유영기 씨는 마치 어제 일을 회상하듯 생생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속칭 애기살로 부르는 매우 짧은 화살 편전. 일반 화살보다 길이는 절반 정도밖에 안되지만, 사정거리도 훨씬 길고 속도가 빠르며, 파괴력은 더욱 가공할만하다고 전해온다. 덧살이라고도 하는 통아에 작은 화살을 메겨 시위를 겨눈다. 따라서 통아가 없이는 적군이 주워 다시 쓸 수 없는 기특한 화살이기도 하다. 멀리에서 숨어 적에게 작고 빠른 화살을 날리는 모습이 영화 <최종병기 활>이나 드라마 <추노> 등에 노출되며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사실 적에게 제작과 사용법이 알려지지 않도록 어명에 의해 비밀리에 관리되었고, 점차 통아와 편전 제작의 맥이 끊겼었다.
“글쎄, 우리 아버님도 직접 보지는 못하고 그런 화살이 있다더라 말만 전해 들으셨던가 봐요. 어떻게 생겼는지 전해지지도 않았고…. 그래서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통아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고, 국립중앙박물관에 편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상할 수 있으니 함부로 보여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아무도 볼 수 없게 싸매놓는 게 정말 후손을 위한 전승 방법이 맞느냐고 되묻고 설득하길 수차례 끝에 여러 장의 서류에 서명하고 나서야 통아와 편전을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장이’잖아요.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인데, 우리가 복원하지 않으면 진짜 말 그대로 죽은 유물이 되고 마는 거잖아요. 문헌자료도 많이 연구하고 참고한다고 해도 실제로 보지 않고는 어려움이 있어요. 그렇게 복원했다고 해도 이게 그 시절에 쓰인 그대로가 맞는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고. 그런 부분에서 협조가 원활하지 못할 때가 더 어렵죠.”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복원의 꿈을 놓지 않았다. 가업을 잇겠다는 아들(전수조교 유세현 씨)과 전국의 박물관을 돌며 학예사들의 협조로 발굴조사 보고서를 얻어 복원에 성공한 것도 여럿이다. 임금의 징표인 신전, 소리가 나는 신호용 화살인 효시, 방아쇠를 사용하는 쇠뇌, 로켓형 화약 무기 신기전 등이 그렇다. 복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육군사관학교와 함께 시연하는 행사도 치렀던 그 시절이 그립다며 잠시 말을 멈췄다.

화살의 영혼을 찾는 일에 가문이 총출동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현재는 북한에 속하는 장단은 예로부터 화살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전국 팔도에서 활 좀 쏜다는 활량들의 주문이 쇄도했고, 유영기 씨 역시 어깨너머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활을 만드는 것을 보며 심부름을 하곤 했었다. 그러다 전쟁이 발발하고 우여곡절 끝에 고향과 가까운 파주에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착하는 생활은 아니었다. 화살의 재료, 특히 대나무를 얻기 위해 전국을 훑었고, 간첩으로 몰리기도 했다. 시대가 지나고 화살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줄었지만, 그때만 해도 잘 만들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오로지 대나무 하나 찾겠다고 안 다닌 데가 없죠. 외진 곳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간첩으로 몰리기도 하고 섬에 들어가려다 물고기 밥이 될 뻔도 있고 그랬어요. 저야 이거 해서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하니까 고생인 줄 모르고 했는데, 아들과 손주가 이어받겠다고 하니까 저도 모르게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말리게 되더라고요.”
한편, 한 사람의 장인으로서는 이렇게 대를 잇는 환경이 아니면 어느 한 분야를 온전히 알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모양만 흉내 내는 거는 누구라도 할 수 있어요. 모양 만드는 거야 뭐 어렵습니까. 중요한 것은 혼을 담는 일이죠. 특히 화살은 예민해요. 재료도 특성이 저마다 다르고, 쓰는 사람의 신체 조건에 따라, 환경에 따라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오니까요. 그런데도 똑같은 화살을 만들어낼 줄 알고, 이왕이면 더 정확한 결과를 내는 화살을 만들어야 잘 만든다고 하는 거죠. 그러려면 활과 화살을 친숙하게 보고 자라야 하고, 활량들을 스승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해요.”
전통 화살은 맞춤제작 방식으로, 개인의 신체조건에 맞춰야 해서 천편일률적으로 만들 수 없다. 화살의 거리, 방향, 속도 등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무엇인지 직접 활을 쏘아 본 활량의 이야기를 듣고 개선해줘야 하는 데, 몇 년 만들어본 경력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우리 활과 화살

후대에 우리에 활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고심하던 그는 활과 화살을 주제로 한 전문박물관을 국내 최초로 설립했다. 2000년에 등록을 마친 박물관에는 직접 제작하거나 복원한 작품, 수집한 유물, 기증받은 세계의 활과 화살을 전시하고 있다. 야외에는 직접 활을 쏠 수 있는 활터를 갖추고 있으며, 예약을 통해 방태기활과 대나무 화살을 만들어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앞뜰에서는 궁술시연뿐만 아니라 전통 무술 시연이 벌어진다. 잊혀가는 우리 궁술이 단순히 살생을 위한 것이 아닌, 정신수양의 건강한 스포츠였음을 다시금 일깨우기 위한 방책이다.
“해보니까 홍보라는 것도 억지로는 안 돼요. 박물관이 파주에 지어졌는데, 주변에 볼거리가 많아서 그런지 많이들 옵니다. 단체로 견학 오는 학생들도 많고. 직접 활을 쏘아볼 수 있으니까 더욱 좋아하는 거 같아요.”
박물관 옆에 전수회관을 짓고 본격적으로 전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어 계획 중에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꼭 만들고 싶은 화살이 있느냐고 물었다.
“진짜 아름다운 화살을 만들고 싶어요. 실용적인 목적이 아닌 의례용 화살들이 그런 편인데, 오늘날 공예분야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미적으로도 아름다워야 하잖아요. 소장 욕구가 드는 화살을 만드는 게 마지막 이루고 싶은 꿈이에요. 활 쏠 일이 자주 없는 현대인들이지만, 그래도 가까이 두고 볼 수 있게 말이죠.”

 

글 : 윤나래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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