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중미술, 민간연화民間年畵 ⑥ – 민간연화에서 찾아보는 책거리의 원류

중국의 대중미술, 민간연화民間年畵 ⑥
민간연화에서 찾아보는 책거리의 원류

박고도博古圖와 세조도歲朝圖(세조가절도歲朝佳節圖)는 전통회화에서 출발하 였지만, 회화의 대중화에 기여한 민간연화에서도 즐겨 그려진 제재이다. 이러한 작품은 문인사대부의 고아한 생활을 닮고 싶어 하는 민간의 요구에 의해 그려지 거나 공방에서 인쇄한 생활미술품이지만, 신년에 실내를 장식하며 길상을 기원 하는 세화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박고도와 세조도 형식의 민간연화는 청동 기, 향로, 화로, 서적, 벼루 같은 문방구와 화병, 과일 등을 같이 그려 넣은 조선시 대의 책거리와 유사한 형식과 내용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의 궁중회화 와 민간연화의 상호관련성 이외에도, 한국과 중국의 문화교류를 짐작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기명器皿 및 박고博古(골동품)에 대한 중국인들의 가치관


박고도는 전통적인 정물화의 일종이다. 다양한 기명과 공 예품은 학문하는 상류계층의 집안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 되던 미술품이다. 이러한 미술품은 대부분 유교를 숭상하 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상징한다. 거슬러 올 라가보면 이미 중국에서는 1107년-1123년 전후에 왕실에서 소장한 다양한 고기물古器物을 그려서,『선화박고도宣和 博古圖』30권을 편찬하였다. 이 때 그려진 기물은 고대부 터 전해온 도자기, 청동기, 옥조각품, 암석조각품 등이다. 이러한 전통은 오랜 기간 그대로 이어지는데, 청동기와 기 명을 완상하는 작품에 사대부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이 등 장하는 것은 품격 있는 생활을 즐기는 상류층을 은유적으 로 표현한 것이다. 인물과 함께 많은 기명들이 그려진 작품 은 문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화보 중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 재였다.(도 1) 송대부터 회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청동기와 도자기 및 다양한 길상물은 명대를 거쳐 청대에 이르면 기 물만으로도 회화화되었다. 청대 양시정梁詩正(1697-1763)이 중심이 되어 제작한 『흠 정서청고감소 』는 궁중에서 소장한 청동 기에 대한 기록물이다. 고금의 도서를 모아서 새로이 편찬 하는 궁중의 작업에도 제기와 예기禮器의 역할을 한 청동 기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항목으로 취급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과 기록으로 볼 때 ‘박고도’는 유구한 전통을 가진 회화의 소재였다. 궁중에서부터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청동기와 도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기물을 완상하고 회화화 하는 것은 품격 있는 생활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민간에서 는 청동기와 도자기를 벽사와 길상을 우의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물로 변화시켰다. 명대 민간에서는 부조형태로 목조각한 박고도 장식품을 사 용하였으며, 청대에 이르면 다양한 형태로 제작된 박고도는 중국 민간에서 사용하던 보편적인 생활장식용품이었다.(도 2) 민간연화 박고도는 기명에 상징적인 과일이나 화훼를 더 하여 ‘화훼박고’의 형식으로 제작된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종류의 연화는 전통회화의 소재인 박고도를 발전시켜, 사대 부들의 문화를 동경하는 대중들에게 판매한 작품이다.

강희연간(1662년-1772년) 제작된 <화훼박고도花卉博古圖>연화는 선명 한 색채와 뛰어난 조각기술을 보여주는 채색판화작품이다(도 3). 민간 의 연화작가 정응종丁應宗(생몰년미상)이 제작한 <화훼박고도>의 조 형과 기법, 구도는 중국회화의 사실적인 공필기법을 보여준다. 정응종 의 <화훼박고도>는 신년을 축하하고 더욱 즐겁게 한 해를 시작하기 위 하여 집안을 장식하는 민간미술품의 특색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작 품에 등장하는 기명器皿은 고대에 제사용으로 사용하던 청동기이다. 청동기의 표면에 새겨진 도철문양은 벽사의 기능을 가진 다양한 천지 간의 신들과 서수瑞獸들이 상징화된 것이다. 박고도 중의 청동기는 농 경사회의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매년 행복과 풍요로움을 기원 하기 위해 집 안팎을 장식하던 민간연화의 소재로는 아주 적합한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색채의 사용은 세화용 민간연 화에서 보여주는 공통적인 미감이다. 이 작품은 길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모란, 국화, 사과, 불수감佛手柑 등의 꽃과 과일, 평안함과 장수를 기원하는 장식문양이 가득한 화병과 기물을 더하여 아름다움과 기원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편 이성미는 “대영박물관의 ‘Kempfer series’라는 채색판화도는 독일인 의사인 캠퍼(Engelbert Kaempfer, 1651-1716)가 1692년 나가사키에서 구 입한 중국판화들이다. 이 가운데 몇 장에서 책가도의 시원적 구성요소 들을 찾을 수 있으며, 그 한 예로 <세화>를 들 수 있다.”라고 하며, 중국 의 다보격과 <화훼박고도>가 조선시대 책가도의 기원요소를 지니고 있 음을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민간의 <화훼박고도>는 상징적인 요소를 가진 꽃 과 과일, 족자나 두루마리 형태의 그림, 장식적이고 화려한 기명과 서적 등의 소재를 취하여 세화로 제작한 것이다. 명·청시기를 거치며 형성되는 사대부 문화와 시민계급의 수요를 연화제작 자들은 작품에 반영하였으며, 길상적인 요소를 첨 가하여 상징적인 표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 한 채색판화들은 전통회화의 화풍을 모방하여 화 첩으로도 제작되었다. 문인 사대부들의 신년풍속 을 모방하여 선물로 주고받으며, 신년의 행복을 기 원하는 용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 공방에서 판화로 제작된 민간의 세화용 연화는 경 제력 있는 시민계급, 일반대중의 문화적인 향유에 이바지하였으며, 미술품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 였다.

중국의 다보격과 조선의 책가도

다보격多寶格은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이지만, 문 인들의 고아한 문화를 상징하는 표지로써 박고격 博古格이라고도 불린다. 중국인들의 골동품, 문 방구, 화훼에 대한 사랑과 애호는 오랜 기간 서화 書畵의 중요한 소재였다. 학자들은 중국의 다보격 에서 조선시대 책가도(책거리)의 원류를 찾고 있 다.(도 4) 명대 가구에 대하여 분석한 서적에는 다 보격을 찾을 수 없고, 서적을 보관하고 정리하던 서격書格이나 란가격欄架格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다보격은 청대부터 사용하던 가구종류임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출신의 궁정화가였던 낭세녕(GiuseppeCastiglione, 1688-1766)은 중국화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중국에서는 서양투시법을 선법線法이라 하고, 투시법으 로 그린 그림을 선법화線法畵라고 하여 서양화 전래 초기부터 인기를 얻고 있었으며, 이 선법화를 일반 서양화인 유화와 구 별 짓고 있었다. 중국회화 전체를 살펴보면 서양화법이 두드러 지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청대 초중기 궁정에서는 회화와 판화제작에 서양의 기법을 받아들인다. 낭세녕의 <다보각경> 은 서양의 투시법과 명암법을 적용하여 사실적인 표현을 하였 으되, 중국인의 완상(玩賞)문화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양식을 보여준다. 그가 그린 <다 보각경多寶閣景>은 다양한 청동기, 도자기, 서적, 기물 등을 장 식장에 배치한 그림이다. 가구와 기명의 사실적인 표현은 당시 의 상류층문화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청대 그려진 다른 작품 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도 5) 한편, 문인과 상류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문화향유 현상은 경제 력을 가진 시민계급이 증가하면서 대중들에게 확산되었다. 청 대 북경에서 제작된 <다보격경>연화는 목판으로 인쇄한 후에 육필로 채색을 더하여 당시 민간의 심미관을 드러낸다. 선명한 청색과 흰색, 먹으로 표현한 투시법, 각각의 칸마다 그려진 장 식 문양, 다양한 화훼와 기명, 서적 등은 민간에서 추구하던 길 상적인 의미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여진다.(도 6)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산동지역에서 제작된 <가당배 축家堂配軸>은 두 장이 대련처럼 제작되어 다보격의 형태를 만들어낸 목판연화이다. 화면에 보이는 서적에 건륭 55년(1790 년)으로 기재된 것으로 볼 때, 18세기 말 작품인 것으로 여겨진다. 상단의 초서草書를 제외하면, 이 목판연화가 보여주는 도자기, 청동기, 화훼, 기명 및 서적의 배치와 표현은 조선에 서 유행한 책가도와 유사하다.(도 7) 시기적으로 조선시대 민화 책거리보다 먼저 제작된 것을 참고하면, 산동지역의 연화가 조선시대 민화에 끼친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조선의 책거리는 18세기 말 정조대(1776-1800)에 궁중에서 처음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비교적 외국문물에 개방 적이었던 정조대의 사회분위기는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 고 흡수하는데 일조하였을 것이다. 또한 왕실과 상류계층 이 먼저 흡수한 청대의 완상 문화를 표현한 책가도는 근대 기를 향해가는 대중에게도 점차 확산되어나갔을 것이다. 서책이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 조선의 책거리는 유교문화가 지배한 조선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어 중국의 다보격과는 차 이점을 보여준다.

중국의 세조도를 닮은 민화 책거리


신년을 축하하는 그림인 세조도는 송대 황실에서 시작한 회화 소재의 하나이다. 송 휘종徽宗(1082-1135)때부터 특 별히 유행하였는데, 주로 겨울에 보기 힘든 화훼, 수목을 사 생화법寫生畵法으로 그렸다. ‘세조도’에는 주로 매화, 산 차山茶, 수선, 장미 등을 주로 그렸는데, 곧 새해와 봄이 다 가오니 즐거운 기분을 고취하기 위하여 선물로 주고받거 나 직접 사용하기 위한 용도였다. 당시에는 사물을 분석하 고 연구해서 그 사물의 구성하는 이치를 깨우치고자 하는 유가의 ‘격물格物’사상을 중요시하여, 회화에도 그것이 적용되었다. 그 결과 기명과 화조를 그린 세조도의 채색은 주사, 백분, 연지, 석록 등의 안료를 이용하여 화려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명·청 시기에는 화훼 위주로 그리되 불교의 제단에서 사용하는 좌 우의 화병과 촛대, 향로 등 다섯 가지 기명器皿은 무엇이든 함께 그 리는 것이 가능했다. 청대 황실의 세조도중에 화병과 화훼가 그려진 형식이 있다. 강남 출 신으로 인물, 누각, 화훼 등을 잘 그렸으며, 옹정-건륭연간 화원이었 던 장위방張爲邦(생몰년미상)은 낭세녕으로부터 서양화법을 배워 많은 길상화를 그렸다. 그가 그린 여러 작품은 당시 왕실에서 추구 하던 화풍이었다.(도 8) 청말에 이르면 세조도가 대중화되면서 화면 에 길상물이 추가되어 폭죽, 차호茶壺같은 기물이 등장한다. 기명과 화훼를 소재로 그린 세조도는 민간에서도 즐겨 그려졌으며, 목판으 로 인쇄한 연화로도 제작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건륭10년역서병화 도曆書甁花圖>와 <건륭시헌서병화도時憲書甁花圖>는 청대 민간 에서 박고도와 기명절지도가 결합한 형식으로 제작한 길상연화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즐거움과 경사로움을 기원하는 의미로 제작된 민간 의 세조도는 그림 안에 역서曆書를 넣거나, 화병에 봄의 시작을 알리 는 동백꽃을 꽂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길상물로는 화병, 백합, 감, 여의 등을 그려 넣어 ‘평안平安’과 ‘백사여의百事如意’를 의미하는 표 현을 강조한다. 신년을 축하하며 거실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 제 작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사대부들이 즐겨 사용하던 기명과 서 적이 주요 소재인 듯 보이나, 가정의 평안을 빌며 재물이 넘쳐나기 를 기원하는 길상적인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였다. <건륭10년역서병화도>에는 화병받침대와 화병 오른쪽의 연력年 歷이 말려들어간 모습 및 부귀다산富貴多産을 상징하는 다람쥐 를 길상물로 채택하였으며, 작품 안에 그려진 연력으로 건륭10년 에 제작된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검정색으로 인쇄되었지만 문 양과 형태로 볼 때 청화백자인 듯 보이는 화병에는 매화가지와 동 백꽃을 꽂아 평안함과 즐거운 신춘을 기원하는 길상적의미를 상 징적으로 나타내었다. 대문 손잡이처럼 매달린 사자머리모양의 화병장식은 벽사의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네 모서리마다 재물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기물이나 돈을 배치하여 재물이 넘치기를 바라는 세속적인 기원을 담고 있다. 이는 민간연화가 일반적으로 지닌 꽉 찬 구도 안에 길상적인 의미를 강하게 표현한 세조도이지만 사대부들의 문방용품과 기명들을 소재로 택하여, 민간에서 추구하던 심미관을 십분 드러내었다. <건륭시헌서병화도>는 <건륭10년역서병화도>와 유사한 구도의 세조도이다. 만사여의萬事如意를 기 원하며 화병과 여의를 그리고, 여의 끝에는 동전을 줄줄이 매달아 놓았다. 두 작 품은 새해를 맞으며 재물이 넘쳐나기를 기원하는 직접적인 표현을 아끼지 않는 민간연화의 세속적인 표현방법을 여지없이 드러낸 작품이다.(도 9, 10) 이와 같은 기명절지도와 박고도를 혼합한 형식의 세조도는 19세기 후반 조선에 서 많이 그려진 민화 <책거리>와 공통점을 보여준다(도 11). 선비들이 좋아하는 책과 기물을 그리고, 상징적인 과일이나 꽃을 조화롭게 그린 조선의 책거리는 붓으로 채색하여 섬세하고 화려한 색채를 보여준다. <책거리>에는 주요한 소재 로 책을 그려 넣은 표현이 두드러진다. 그렇지만 화훼와 다양한 중국식 기명들 을 배치하는 방법으로 원초적인 소망을 드러내는 ‘화훼박고도’와 ‘세조도’의 형식 을 표방한 민간연화 세화와 형식과 내용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적인 조형미를 자랑하는 조선시대 책거리의 원류를 중국의 다보격을 비롯 한 여러 작품에서 찾아보았다. ‘세조도, 기명도, 화훼박고도, 다보격’의 형식을 띤 민간연화는 전통회화에서 변화하여 형성된 다양한 민간의 길상화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전통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반 영하였기 때문에, 동일한 문화권에서 생활 한 우리민족의 정서와 유사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조선시대 책거리는 민간연화를 뛰 어넘어 당당하게 전통미와 현대적인 미감 을 자랑한다. 그 동안 간단하게 중국의 민 간연화를 소개하고, 조선민화와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과거 한국과 중국은 서로 영 향을 주고받으며, 자국의 정서와 풍토에 적합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 중에서도 민간회화에서 찾아본 문화교류는 정통회 화의 영향관계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는 것 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민간연화를 통 해 반추해 본 우리의 생활양식과 회화사적 인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우리의 전통문화 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발전시켜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여겨진다.

글 우영숙(미술사 박사, 민화작가)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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