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화양연화>, 순지에 혼합재료, 90×90㎝


종소리

시. 박철
그림. 조여영


제주에서 종식이가 귤 따주고 받은 파치 한상자를 보내며 굳이 우리 같은 인생이잖아요 해서 웃었다

남들이 예쁘게 화장할 시간에 해찰 부리며 더 느리게 익었을까 싶어 웃었다

빗길 정류장으로 가던 수림이가 발끈하더니 다시 중심을 잡고 미끈하게 걸어가 웃었다

빙어축제에 넋이 나간 구름 둘이 서로 봄이라 밀며 가는 꼴에 웃었다

때때로 뭔 일로 분하다가도 화가여생(禍家餘生)이라 믿으니 욕심이 잠시 기우뚱거려 웃었다

이 나이 되면 인생은 종 친 거다 싶다가도 폐차장서 날아온 파지(破紙) 같은 주홍빛 종소리에 웃었다

눈은 오는데, 덩그렁덩그렁 늦은 밤 눈이 와야 더 멀리 간다는 종소리 사연을 듣고 웃었다

얼굴 예쁘기로는 계양산만 한 이 없겠으나 그 마음 훔쳐 사모하느라 웃었다

그리고 조각난 겨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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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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